철학 수학
야무챠 지음, 김은진 옮김 / Gbrain(지브레인) / 2010년 11월
평점 :
품절


학창시절 난 수학을 참 못했다.

중학교때까지는 뭐 괜찮았는데, 고등학교 2학년부터 나의 수학 실력은 정신을 못차리기 시작하더니 대입때는 내 인생을 갉아먹는 존재가 되어 있었다.

경제학에서 수학이 나와도, 물리에서 수학이 나와도 괜찮았다.(물론 산수였으니 그러했을거다)

그러나 수학 자체만은 너무 진덜머리가 나서 지금도 수학이라고 하면 사실 좀 치가 떨린다.

대학가서 가장 좋은 것 중에 하나가 수학을 안해도 되는 것이었을 정도니까.

 

필자도 학창시절 수학을 싫어한다는 소개를 보고 이 책을 선택했다.

나처럼 수학을 싫어했던 사람이 쓴 수학에 관한 책이라면 그닥 나쁘지 않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모든 영역을 두루 섭렵하겠다는 욕심으로 대순진리교책과 불교책까지 손에 잡는데,

까짓 수학쯤이야.

 

첫 장을 넘겨 저자 소개를 보고 픽, 웃음이 났다.

사는 게 무료해서 재산의 상당 부분을 주식에 투자하고 엄청난 손해 본 후 안정된 직장을 그만두고 사업을 시작했으나 계속 적자.

흑자로 돌아섰으나 계획없이 직원을 늘리는 바람에 회사가 지금 또 적자로 돌아섰다고.

이게 수학책을 쓰는 사람의 이력이라니.

대단하다, 싶었다.

지나치게 만화같지 않은가.

회계 분기나  손익계산 그런 거 할 줄 모르나? 이 사람 경영은 제대로 공부하고 회사 운영하고 있는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헐렁한 사람이 쓴 책이 뭐 얼마나 대단하겠냐 싶어서 별 생각없이 읽어내려갔다.

 

파르마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한다.

사실 파르마에 대한 이야기이므로 각 장의 마지막 번외편을 제외하고는 계속 파르마 관련 이야기가 나온다.

아마추어 수학자였으면서도 프로 수학자를 놀려먹는 재미에 푹 빠진 수학 천재인 파르마는

어떠한 수학 이론을 증명하고 나면 증명을 위해 쓴 메모들을 다 없애버린다.

수학은 그에게 그저 카타르시스를 주는 취미였기에 가능했을 일이다.

남들은 직업 삼아 목숨걸어도 밝히지 못하는 것들을 파르마는 놀이삼아 즐기며 밝혀낸다.

파르마 사후 그 아들이 메모들을 모아 책을 쓰지 않았더라면 그의 이름은 그냥 묻히고 말았을 거라 한다.

파르마가 증명했다고 하지만 흔적이 남아있지 않은 경우가 48가지였던가?

그러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파르마가 남긴 간단한 수학 정리를 증명하기 위한 수학자의 몸부림이 악마의 속삭임에 홀린 그 무엇이 되고 마는 것이다.

일생을 털어넣어도 간단해 보이는 그 식 하나를 증명하지 못하는 수학자가 넘쳐나게 되는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며, 내가 수학책에 이렇게 몰입할 수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수학 관련 책을 읽으며 이렇게 가슴이 뛰고 설레다니.

지금 내가 느끼는 이 육체에 스민 자아가 진정 내가 맞나, 싶은 생각마저 들었다.

고등학교때까지 배운 수학적 지식들이 총 동원되며 필자가 적어놓은 이론들을 이해하기 위해 뇌가 열심히 반응하는 것을 느꼈다. 이 책을 손에 잡고는 다 읽을 때까지 놓을 수가 없었다.

아이 엄마인지라 중간 중간 아이 밥을 챙겨준다던가, 화장실 일을 봐준다던가 쏟은 우유를 처리한다던가 하는 일을 하면서도 보살핌이 끝나면 이내 몸과 마음은 책에게 돌아와 있었다.(그러면서도 불과 몇 시간만에 다 읽었다)

책을 읽으며 내내 이 책을 내 아이에게 언제쯤 권하는 게 좋을 지를 생각해보았다.

파르마의 정리나 2,3,4,5차 방정식에 관한 부분을 좀 더 깊이 이해하려면 수학을 좀 배우고 난 고등학교 1학년쯤이 유리하긴 할테지만, 수학자들의 열성을 느끼는 것에 목적을 둔다면 좀 더 어린 나이에도 충분히 가능하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수학 이론들에 대한 부가설명은 따로 해주는 것이 좋을테지만.

정말 좋은 책이 나에게 와 준 것 같은 느낌에 너무 기분이 좋았다.

내 아이에게 물려줄 좋은 자산들이 늘어나고 있다.

 

회사가 어려운 사정일텐데도 이런 책을 써준 작가에게 고마움을 느꼈다.

이 책이 회사내 자금 사정을 해결하기 위한 임시 방편이면 어떠한가.

그것으로 인해 수학에 관한 내 마음이 바뀌는 기적을 경험했고, 그 기적은 내 아들에게 전달될텐데

그가 어떤 마인드를 가진 사람이라는 것이 무슨 대수랴.

주식 투자로 엄청난 돈을 날렸든, 계획없이 사원을 늘려 회사 흑자가 적자로 돌아섰든,

이제 그런 것따위는 내게 중요하지 않다.

오히려 그러한 역경이 필자에게 이런 수학 세계를 안내해 주었다면 나로서는 고마운 일이다.

그가 썼다는 [ 철학적이거나 혹은 과학적이거나] 도 읽어봐야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현실의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파르마에 관한 이 이야기는 해피엔딩으로 끝난다.

결국 파르마의 정리가 앤드루 와일즈에 의해 증명된 것이다.

그 증명을 위해 걸린 시간은 350년이다.

프르마가 죽은 후 350년의 시간이 흘러 정리가 완성된 것이다.

뉴턴 탄생 350주년 기념 행사장에서 앤드류는 멋지게 파르마의 정리를 증명해낸다.

증명 심사 과정에서 보인 이론의 구멍으로 인해 약간의 수정 작업을 거쳐야 했긴 했지만,

결국 그는 해낸다.

 

작은 구멍을 메우기 위해 눈에 불을 켜고 이론을 찾아 헤맬때는 보이지 않던 것이

마음을 비우고 문제를 대하기 시작하자, 객관적인 눈으로 그것을 볼 수 있게 되고 결국

앤드루는 자신의 서랍 속 이론으로 그것을 해결한다.

 

많은 일들이 그러하다고 생각한다.

머리 싸매고 무언가를 해결하기 위해 고심할 때는 보이지 않는 것이 조금 떨어져서 마음을 비우고

그 문제를 대하면 때로 너무도 간단히 해결책이 눈에 들어온다.

결국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문제와 나의 거리.

객관적 시각일 것이다.

그래서 힘든 일은 겪을 당시엔 죽을 것만 같은데,

지나고 나서는 이렇게 저렇게 했더라면 좋았을텐데 하는 후회가 남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철학이 아닐까.

세상 모든 일에는 철학이 있다.

또 모든 대상에도 철학이 있다.

철학은 나에게도 있고, 너에게도 있고, 그에게도 있다.

어렵게만 대하면 한 없이 어려울 것 같은 철학이 마음의 경계만 허물면 이렇듯 편하게 다가올 수 있는 것 또한

앤드루가 마지막 파르마의 정리 헛 점을 매울 때와 같은 것이란 생각이 든다.

 

우리 생각의 본질이 바로 철학이라는 생각을 하며 이 책이 내게 준 감동을 가만히 마음에 새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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