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리 - 2010 제34회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 청춘 3부작
김혜나 지음 / 민음사 / 2010년 6월
평점 :
절판


이 책을 처음 접한 것은 신문에서다.

젊은 여자의 사진과 함께 신인상이라는 타이틀로 소개된 이 책은,

충격적이고 굉장히 대담하고 읽는 이를 불편하게 한다고 적혀있었다.

그래서 예쁜 분홍색류의 표지를 처음 넘기면서 마음을 다 잡았다.

20대 초반때 류의 소설을 내동댕이 쳐본적 있는 나는 충격적인 소설엔 좀 너그럽지 못한 편이므로.

하지만 10년이란 세월이 흘러서였을까.

분명 내용은 충격적일 수 있었다.

가벼운 만남, 가벼운 관계, 섹스. 무상한 상념들..

하지만 그들의 내면 깊숙한 외침이 들리는 듯한 느낌은 그저 나만의 착각이었던걸까.

 

지금 그들의 모습은 허무하다.

자신의 내용은 없고 불투명한 미래에 대한, 또 비루한 현실의 모습에 대한 탄식으로 잿빛 세상을 그려내고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들은 갈구하고 있었다,

보다 나은 오늘을, 그리고 내일을.

처절하게 외치고 있든, 온 몸으로 그것들을 받아내려 애쓰고 있는 그 안쓰러운 모습이 내게 들어왔다.

내 아이가 나중에 저런 공허하고 슬픈 시기를 겪게 된다면, 나는 그를 어떻게 도울 수 있을까.

그 지경에 이르르면 스스로의 도움외엔 어떠한 것도 그 쳇바퀴속에서 자신을 빼내주지 못하리라는 것을 어렴풋 느낀다.

이미 그들은 상처받은 결과로 우리 앞에 서있는 것이다.

그들은 그저 그들의 잘못으로 인해 그러한 삶을 영위하는 것이 아니다.

무의식, 그 잃어버린 듯 착각하고 사는 생명의 탄생에서부터 36개월까지의 그 결정적 시기에 부모로 부터 받은 양육의 결과로 형성되는 그 무의식이 그들을 그렇게 만들어버렸다.

어떠한 것도 자제하지 못하고, 거부하지 못한 채 그저 현실의 암담한 챗바퀴 속에 자신을 끼워놓고 자신의 진짜 가치를 찾지 못하는 불쌍한 청춘들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그것은 그들의 잘못이 아니다.

모든 것을 서열로 정하고 물질 만능주의를 외치는 우리네 천민자본주의와 그 속에서 순응하며 살았던 그 부모세대, 또 그 부모세대의 되물림되는 죄악과도 같은 행위의 결과이다.

미안하지만 그들이 우리네의 거울인 것이다.

누군가 그들에게 어떻게 그렇게 아무렇게나 살 수 있냐며 손가락질 한다면, 나 되묻고 싶다.

당신의 무의식과 그들의 무의식은 어떻게 다른 것인지 아느냐고.

 

문제 부모는 있어도 문제 자식은 없다.

문제 부모에게서 자란 아이들은 이미 성인이 되었어도 아이다.

몸은 자라나서 자유를 누리고 담배와 술이라는 기회식품을 마음껏 누릴 수 있어도 본질은 아기다.

그들이 느끼는 지독한 외로움.

또, 당당하지 못한 직업 속에서 느끼는 박탈감과 그 속에서마저 순위로 매겨지는 잣대들..

그것은 모두 기성세대들이 그들에게 남겨준 유물과도 같다.

슬프지만 지금의 우리네들 역시 그렇게 자신을 찾지 못하고 방황할 청춘을 길러내고 있는 부모들이 많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그들은 결과다.

이것은 철저히 반성하고 되짚어야 할 문제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것을 이유로 그들이 정당화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바꿀 수 없는 과거에 집착하고 그 원인에 대해서 비난만 해대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기 때문이다.

 

고리를 끊어야 한다.

잘못된 그 더러운 바닥의 남루한 개체로 살아가게 만드는 그 고리를 끊어내야 한다.

소설 속 그들이 고리를 끊어내기 위해 발버둥치는 모습이 보였다고 한다면 의아해할 사람이 많으려나.

의식을 하든, 하지 않든 그들은 여러가지 고민들을 하며 지금의 고리들을 한탄하며 살아간다.

그 고민들이 모여 나중엔 결국 그 고리를 끊어낼 힘을 만들어낼 수도 있다는 희망찬 메세지가 내 눈엔 너무나 선명하게 보였다.

주인공들처럼 그런 생활을 하며 고민하지 않더라도 누구나 청년기에는 자신의 인생에 대한 진지한 성찰의 시간을 갖는다.

보잘 것 없는 스스로에 대한 생각과 미래의 암담함으로 괴로워하고 방향을 몰라 갈팡질팡하다가

결국 자기 자리를 잘 잡아 새로운 하루하루를 살아가기도 하고,

또 그저 그렇게 살다가 가기도 한다.

청소년기에 할 고민이 입시지옥을 치루며 하루하루를 그저 생존해야 하는 우리 자화상들에겐 청년기에로 그 고뇌들이 넘어가고 있는 것이다.

 

제리는 톰에게 늘 당하는 약자이다.

하지만 당하기만 하진 않는다.

톰을 골탕먹이고 통쾌하게 복수하기도 하는 약하지만 영리한 쥐다.

쥐는 음습한 곳을 찾아다니며 사람들에게 괄시받지만 생태계의 먹이사슬을 하나 차지하고 있는 당당한 개체다.

결국 햄스터같이 약간 모습을 달리하여 우리와 함께 더불어 양지에서 살아가기도 하고,

누군가를 위해서는 영양 간식으로 쓰이며, 각종 실험들에 참가함으로써 숭고히 남을 위해 희생하기도 한다.

누가 쥐를 감히 더럽고 귀찮은 존재라고만 말할 수 있는가.

 

강력해보이는 고리도 사실 알고보면 약간 비틀린 생각의 차이로 쉽게 붕괴될 수 있다.

오히려 하고픈대로 마구 살아보지 못한 이들이 그러면 안되는 때에 쉽게 유혹되어 인생을 망쳐버리기도 한다.

그렇게 따진다면 오히려 그들은 선택받은 이들일 지 모른다.

평범하고 약간 지루한듯한 행복도 감사히 받아들일 수 있는 겸허한 마음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을테니 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