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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소녀 은퇴합니다 (리커버) ㅣ 소설Q
박서련 지음 / 창비 / 2022년 4월
평점 :
결말 스포없음
📌들어가며
9n년생이라면 어릴 적 만화 주인공으로 나오는 수많은 마법소녀 언니들(세일러문st)을 보며 마음속에 '혹시 나도 마법소녀..?'라는 꿈 한 번쯤은 품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나의 유년기 최고의 마법소녀는 <꼬마 마법사 레미>였다. 극 중 레미의 나이는 무려 초등학교 5학년(!!)이다. 레미보다 더 어린 나이에 나도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면 혹시 마법소녀로 간택이 되어서 마녀 개구리와 함께 마녀가 되기 위한 수련을 하지 않을까,라는 막연한 기대가 있었다. 집 책꽂이에 레미 피규어를 올려놓고 매일 쳐다봤다. 나도 세상에 그런 몇 없는 특별한 존재가 되기를 바라며.
지금은 꿈꾸는 마법이라고는 사지도 않는 로또 당첨인, 언제나 대체될 수 있는 사회의 부품으로 팍팍한 현생을 살아가고 있는 직장인이다. 처음 책을 읽기 시작했을 때는 잠시 아련한 마음으로 나의 과거를 회상했다. 그런데 잠깐. <마법소녀 은퇴합니다>의 마법소녀, 우리가 알던 마법소녀와는 너무나도 다른 것 같다?
📌 줄거리 소개
등장인물은 주인공 '나', 예언의 마법소녀 아로아, '전국마법소녀협동조합'의 의장님 연리지와 다른 몇몇 마법소녀들이다. 시점은 1인칭 주인공 시점이다.
유일한 보호자였던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최선을 다해 노력해온 '나'. 처음으로 은행에 가 신용카드를 만들었던 날이 생생하다. 생활에 꼭 필요한 물건들을 살며 결코 사치하지 않았다. 전염병으로 일자리를 잃고, 직장 구하기에 실패하고 빚이 생겼다. 어렵게 구한 단기 알바로는 리볼빙 최저한도 빚을 갚기도 급했다. 그렇게 '나'는 마포대교에서 오늘 생을 마치기로 결심했다.
사람이 살아 있는데에는 돈이 들어...... 그 단순한 사실을 깨닫는 데 너무 오래 걸린 것 같아.
고작 삼백만원을 갚을 능력이 없어서 죽을 생각을 한다고 하면 다들 한심하게 생각하겠지. 그런데 나는 이게 시작이라고 생각해. 처음 신용카드를 만들 때 내 카드 사용한도는 오백만원이었고 여전히 오백만원이야. 그런데 한달을, 두달을 더 산다고 하면 무슨 의미가 있을까?
16,17쪽 마법소녀가 되는 운명.
그렇지만 실행하지 못하고 망설이던 그때, 누군가 다가와 말을 걸었다. 내가 지금 죽을 운명이 아니라며...
"당신은 마법소녀가 될 운명이에요."
말을 건넨 사람은 전국마법소녀협동조합(전마협) 간사 아로아. 예언의 마법소녀였다. 내가 바로 지구의 운명을 돌릴 최강의 마법소녀라고 예언을 보았다고 말한다. 알고 보니 마법소녀는 만화의 마법소녀라기 보다는.. 직업박람회에 참여할 정도로 사회의 하나의 직업에 가깝다. 심지어 마법소녀로 각성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학원까지 있다.
그렇게 얼떨결에 마법소녀 연습생이 된 그녀. 전마협에서 세계 최강의 마법소녀, '시간의 마법소녀'를 기다리는 이유는 바로 종말을 막기 위해서이다.
"지구는 대마왕 때문에, 외계인 때문에 끝나지 않아요. 적어도 당장은. 하지만 기후 위기는 실제로 지구에 닥친 최대의 재앙입니다. "
68쪽, 마법소녀의 소중한 것.
그렇게 자신이 그 시간의 마법소녀임이라는 예언을 굳게 믿고, 전마협 회장님이 만들어주신 자신의 검은색 신용카드 모양의 마구를 손에 쥔 채, 아로아와 함께 한강 유수지에서 각성을 위해 노력한다. 열심히 주문을 외우며 마구의 반응을 보며 될 것 같은 느낌을 마주한 순간...
"시간의 마법소녀가 방금 각성했어요."
불규칙적으로 세차게 뛰던 가슴이 쿵, 하고 내려앉는 듯했다. 아로아는 얼굴을 감싼 채로 다시 제자리에 주저앉았다.
"그리고 그게 ...... 당신이 아니었어요."
86쪽, 시간의 마법소녀 변신.
개인적인 슬픔과 좌절도 잠시. 각성한 시간의 마법소녀가, 우리 편이 아닌 것 같다. 지구를 통으로 날려버리려는 최강의 마법소녀 이미래. 과연 마법소녀로 각성을 실패한 '나'와 전마협의 마법소녀들은 이미래로부터 지구의 미래를 지켜낼 수 있을까?
📌후기
박서련 작가님의 여성 서사에 또 한 획을 긋는 소설이라고 생각한다. 난 작가님이 A부터 Z까지 여성을 바라보고 소설 속에서 풀어내는 방식이 너무 좋다. (팬심 고백)
마법소녀라는 특별하게 여겨지는 존재를 비틀어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직장인의 하나로 만든다. 그래서 더 마법소녀가 겪는 일과 고통에 더 공감이 된다. 마치 나 같아서 더 응원하고 싶다. 읽으면서 주인공인 '나'가 느껴봤을 법한 절망을 느꼈을 존재들에게 위로가 된다.
이 세계에 존재하는 마법소녀들은 무조건 착할 수 없고 착할 필요도 없다. 이건 만화가 아니니까. 사랑과 희망, 선의 같은 것을 사람들에게 나눠주면서 우주에서 온 외계인이나 어떤 마법세계에서 온 존재들과 맞서는 게 아니라, 먹고사는 일에 몸과 마음을 다쳐가면서 보통 사람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방식으로 살아가고 있으니까.
118,119쪽 마법소녀도 곤란한 것.
주인공 '나'의 능력이 다른 마법소녀의 마법과 달리 대가를 치러야 실행이 된다는 점이 현대의 자본주의에서 간신히 생존하고 있는 주인공에게 가혹하지 않은가..라는 씁쓸한 미소가 떠오른다. 그런데 나도 그 세상에 발 딛고 살고 있는 평범한 시민 1이라 더 마음이 아프다. 마법소녀의 상징이기도 한 마구가 검은색 신용카드인 것부터 너무 현실적이라 웃음이 나온다.
기후 위기에 대한 언급 또한 인상적이었다. 특히 2024년 올해 여름은 녹을 듯이 더웠고, 꾸준히 시청하는 'KBS 세계는 지금'에는 상상을 초월한 폭우, 홍수, 태풍, 허리케인, 폭염, 가뭄에 대한 소식이 끊이지 않았다. 우리가 두려워할 것은 외계의 생명체가 아니라 결국 우리 손으로 불러온, 지구 최강의 마법소녀의 도움 없이는 멈출 수 없는 재앙이라는 경고 메시지가 전달되었다.
이미래를 대하는 <전마협>의 모습도 인상 깊었다. 세상 구석에 놓여있던 약자에게 보내는 어른의 적합한 태도라고 생각한다.
가장 약한 존재들에게 가장 필요한 힘이 부여되기 때문에 소녀들에게만 마법의 힘이 부여되는 것처럼 보이는 게 아닐까. 그게 내 생각이에요."
120쪽, 마법소녀도 곤란한 것, 아로아
아로아와 '나'의 은은한 관계도 소설의 흥미를 높이는 요소이다. 자신을 지탱해 주던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처음 만난 위로가 되는 다정한 존재의 힘이 텍스트를 통해 전달된다.
📌마무리하며
소설을 읽는 내내 처음부터 끝까지 성공적인 물수제비뜨기를 보는 느낌이었달까. 혹시 중간에 돌멩이가 가라앉지 않을까 조마조마한데 또 통통통하고 끝까지 튀어 오르는 그 모습을 보며 짜릿함과 희열을 느끼는...
스토리가 매끄럽게 진행되면서 재미를 주는 지점과 고찰할 거리를 주는 부분이 적절하게 배합되어 있어 결말까지 만족스럽게 읽었다.
- 박서련 작가님의 기존 소설을 읽고 만족했던 독자
- 언젠가 마법소녀를 꿈꿨던 당신
- 지루할 틈이 없는 재미있는 소설을 읽고 싶은 독자에게 추천하고 싶다.
<본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