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어타운 베어타운 3부작 1
프레드릭 배크만 지음, 이은선 옮김 / 다산책방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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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에는 눈, 이에는 이

함무라비 법전의 유명한 경구이다. 이것은 싸움이든 범죄든 민사상 손해든, 자기가 받은 피해 범위를 넘어서 복수를 할 수 없도록 하는 한계규정이다. 사적 복수를 하는 자는 어떤 식으로 보복을 가해도 모자라다고 느낄 것이고, 복수를 당하는 원래의 가해자는 너무 한 것 아니냐고 생각하기에 복수의 되물림은 계속 된다. 근대 국가에 들어서서 사적복수는 민사상으로도, 형사상으로도 금지된다. 대신 국가가 이 기능을 재판이라는 방식으로 대행한다.

 

<베어타운>을 끝까지 읽고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이 저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경구였다. 케빈이 죄값을 안 받았기 때문이 아니었다. 마야의 어머니인 미라가 수사 중단 결과에 최고의 성범죄 변호사를 데려오겠다고 울분을 터뜨린 것 때문도 아니었다.

 

이제 너도 어둠을 무서워하게 될 거야. 죽을 때까지.”

 

이 현명한 아이의 복수의 방식은, 어른들도 제대로 해결 못한(해결할 마음이 없는 것에 가깝지만) 죗값을 아주 깔끔하고도 동등한 가치만큼 치르게 해주었다. 이것은 동네 아이들이 벽돌을 마야의 방에 던진 아이를 쫓아 골프채를 들고 때리려 한 마야 어머니 미라의 방식과도 비슷하고도 다르다. 꿀먹은 벙어리처럼 있던 아버지 페테르와 침묵을 종용한 베어타운의 어떤 남자들과는 달랐다. 반면, 케빈이 불을 켜고 자는 사실을 케빈의 아버지는 영원히 모를 것이며, 그의 어머니는 아들이 어둠을 무서워하기 시작한 것을 앎에도 내색하지 못할 것이다. 이렇게 케빈 역시 영원한 어둠 속에 남겨지는 형에 처했다.

 

마야에게는 비극인 사건이었지만, 가부장적이고 남성 중심의 사회인 베어타운에서 어쩌면 이 사건과 해결과정은 베어타운에 균열을 일으키고 정화를 촉발하는 사건이다. 그리고 그 정화에 앞장서는 것은 선한인물이기 보다도 산전수전 다 겪은 사람들의 내면의 강함이다.

 

모든 조직이 다들 자기들은 문화를 창조하고 있다고 자랑하지만 따지고 보면 모두가 진심으로 원하는 건 오직 하나, 승리하는 문화뿐이다. 그래도 우리는 그들을 용서한다. 이기기만 하면 그들을 좋아한다.

 

사실 베어타운의 주민들은 벼랑 끝에 몰린 사람들이다. 궁지에 내몰린 사람은 극단적인 성향을 가지기 마련이다. 실업률이 갈수록 높아지는 이 마을 사람들이 종교처럼 하키에 온 관심을 쏟는 것도 사실 알고 보면 경제, 좀 더 축약해서 말하면 이 원인이다. 그 돈이 아이들을 괴물로 만들었고, 한 여자아이의 상처에는 눈을 감게 만들었다.

 

결론에서 돈의 위력은 더 뚜렷하게 나타난다. 페테르가 구단에서 끝내 추방되지 않자, ‘우리 안에 곰이 살고 있다고 운운하던 사람들은 경쟁자였던 옆 동네 구단의 스폰서가 되었다. 아이들 역시 베어타운을 버리고 헤드의 하키팀으로 이적한다. 진정한 곰들은 미련하고도 우직하게, 그러나 이번에는 정말 바르도록 베어타운에 남아 재건에 앞장선다.

 

<베어타운>을 읽으면서 선함이란 어떤 것일까를 내내 생각했다. 선함이란 뒷사람을 위해 문을 잡아주는 찰나에 스쳐지나가는 것이라기보다는, 아이러니하게도 오랜 시간 고통을 겪은 자의 공감에서 나오는 강함의 두께에서 나오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좀 더 나은 환경에서 살아갈 수 있었던 아맛이나, 의리를 지킬 수 있었던 보보, 더 많은 부를 축적 할 수 있었던 프락 등. 그들의 강함, 그들이 견딜 후폭풍에도 불구하고 선한 길을 가도록 이끌었다고 생각한다.

 

그리하여 이 이야기는 벚나무 향기를 남기며 끝이 난다. 하키타운에서 벚꽃 피는 계절은 별로 달갑지 않겠지만, 그들은 벚꽃의 계절을 거쳐 더 단단해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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