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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딩드레스
피에르 르메트르 지음, 임호경 옮김 / 다산책방 / 2012년 7월
평점 :
품절



    대단히 새로운 형태의 소설을 만났습니다. 그런데 솔직히 어떤 점이 그렇게 새로운 것인가에 대해 묻는다면 무어라고 대답하기가 참으로 애매합니다. 지난번에 피에르 르메트르의 『알렉스』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프랑스 추리소설에서 느낄 수 있는 특유의 냄새에 대한 이야기를 했는데, 이 소설 역시 그런 느낌입니다. 깊고 어둡고 습하고 칙칙한 느낌. 그런데 너무 프랑스식의 예술을 추구하려던 느낌은 아니었고, 어느 정도 헐리우드의 대중적인 느낌을 고려한 스릴러였다고 생각합니다.

 


    『그 남자의 웨딩드레스』를 영화로 비유하자면 <킬빌>, <데쓰 프루프>, <미저리>, <사이코>, <새>, <현기증>,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정도로 볼 수 있습니다. 소재 면에서 이 같은 영화들과 크게 닮았던 것은 아니지만, 공포와 긴장을 서술하는 형태가 닮아 보입니다. 불길함을 만들어 내는 방식, 혼돈과 죽음을 예고하는 형태, 그 안에서 아름다움을 만드는 서술이 닮았습니다. 영화와 소설을 두고서 그런 비교를 한다는 게 조금 억지스러워 보일지 모릅니다만, 글로 이 같은 영상을 볼 수 있었다는 것은 실로 놀랍고 새로운 경험이었습니다.

 


    피에르 르메트르의 글은 추리소설치곤 꽤 여성적입니다. 이런 여성적인 느낌이 비슷한 형태의 다른 영화와 소설들 간의 미묘한 차이를 만드는 것 같습니다. 끔찍함을 경험하고 공포가 피어나며 복수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여성에게 조금 더 힘을 내고 용기를 내라고 응원하도록 유도하는 장치가 있는데, 그러한 것들이 소설의 여성성을 만들어 냅니다. 단, 너무 미묘한 차이라 그저 제 개인적인 생각일 수 있습니다.

 


    가끔은 수많은 범죄들 중에서 어떤 범죄가 더 흉악한 것인가를 생각해봅니다. 가령 요즘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고 있는 소아성애자를 예로 들자면, 그들을 처단하기 위해 비슷한 방식으로 고통을 주고 끔찍한 방식으로 살해해서 어떤 복수에 성공했다는 기사를 접한다면 우리는 짧은 순간 놀라운 통쾌함을 느낄 것입니다. 어쩌면 그런 복수를 감행한 자의 범죄를 조용히 응원하고 있을 지도 모릅니다. <덱스터>에서 연쇄살인마의 완전범죄를 보고 응원하듯 말입니다. 이런 미묘한 심리를 피에르 르메트르의 소설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것이 하나의 큰 이야기가 끝날 때마다 반전의 형태로 우리에게 불쑥불쑥 나타나는데, 이 부분이 꽤 큰 혼란을 만들어 냅니다.

 


    『알렉스』에서 반전을 반전했다고 한다면, 『그 남자의 웨딩드레스』은 복수를 복수했다고 봅니다. 그리고 그러한 과정들이 굉장히 조심스럽습니다. 목차에서도 볼 수 있듯이 소설은 소피와 프란츠라는 인물이 교차로 서술하는 방식을 보입니다. 그런데 프란츠라는 이름은 소설 내도록 등장했던 횟수를 손으로 셀 수 있을 만큼 매우 조심스럽게 숨어있습니다. 소설은 하찮은 것부터 관찰하고 조심스럽게 준비하며 소설을 읽는 우리들의 반응을 살핍니다. 그런 조심스러움이 일종의 행위하는 예술이란 느낌의 좋은 소설을 만들어 냈다고 봅니다.

 




 

 

    외부세계와의 관계를 최소한으로 축소한 그녀로서는 이 여자들이 자신을 알아보듯 슬며시 인사를 던지고, 서로 알아가기 시작하는 한 동네 주민으로서 그 인사에 화답할 때마다 뭔가 따스한 위로 같은 것을 느꼈던 것이다. 더구나 이들도 그녀처럼, 내가 과연 이 지옥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라고 자문하는 사람들이 아니겠는가. (90쪽)

 


    은밀하고도 점진적인 작은 접근들이다. 점진적인 접근…… 매우 한심한 짓거리지만, 이게 바로 핵심이다. (175쪽)

 


    그녀는 자신에 대해 순진하면서도 냉철한 태도를 지닌, 한마디로 지극히 자학적인 감수성의 소유자로 보인다. 그녀의 유년기를 지배한 신경증에는 두 개의 모순적인 감정이 결합되어 있는데, 하나는 생존자의 죄책감, 다른 하나는 자신이 관심받을 만한 아이가 아니었기 때문에 부모에게 버림받았다고 무의식적으로 생각하는 많은 고아들에게서 발견되는 모욕감이다. (345쪽)

 


    기묘한 분위기였다. 그녀는 밤에서 빠져나오고 있는데, 그는 거기로 들어가는 것 같았다. (347쪽)

 


    …의기소침, 고정된 시선, 슬픔과 근심, 때때로 나타나는 공포가 짙게 드리운 표정, 끊임없는 정신적 가공, 죽음에 대한 숙명적 태도, 뚜렷한 죄의식, 기묘한 사고, 징벌을 받고자 하는 욕구…… (361쪽)

 


    그건 완전히 제멋대로 쓴 글이에요. 하지만 그 분야를 잘 모르는 사람에게는 그럴듯하게 보일 수도 있겠죠. (369쪽)




 

크롱의 혼자놀기 : http://ionsupply.blog.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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