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에선 그대가 꽃이다 - 시들한 내 삶에 선사하는 찬란하고 짜릿한 축제
손미나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3년 7월
평점 :
품절



 내가 제일 좋아하는 작가 중 한 명 손미나 작가님이 프랑스에서 지내며 파리지엥으로 그들의 삶을 이해하고 친구가 되며, 프랑스 전역을 여행하고, 힘들게 소설을 쓰는 과정의 3년을 담은 책이다.

 

책의 첫 부분에서 저자는 에펠탑이 보이는 곳에서 살게 되는데 파리지엥으로 사는 것이 생각만큼 낭만적이지 않다는 것을 철저히 경험하신다. 집 빌리는 과정부터가 난관이다. 집 주인이 집안 사진을 300장 가까이 찍어서 전달해주지 않나, 나중에 집을 비울 때는 각 공공기관에 일일이 다 편지를 보내야 한다. 21세기에 편지라니 어이없다. 심지어 이렇게 힘들게 빌려야 하는 집인데도 속을 들여다보면 형편 없다.

 

 파리의 건물들은 겉으로 보기에 고풍스러운 옛 건물이지만 실상은 너무 오래된 건축물들이다. 한 예로 저자의 집도 전기 회로 상태가 엉망이라 갑자기 전기가 나가버렸다. 결국 작가님은 크리스마스 이브에 비싼 호텔에서 하루 묵어야 했다. 게다가 프랑스답게(?) 고치는 사람도 얼른 오지 않았다. 우아해 보이는 파리지엥의 처참한 속살을 목격하고 나니 파리에서 절대 살고 싶지 않다고 절로 다짐하게 만든다.

 

 

하지만 손미나 작가님이 들려주는 프랑스 사람들의 삶은 자유로운 사고 방식과 남과 다름을 인정하는 관용이 넘쳐났으며, 누구나 자유롭게 예술을 즐기는 진정한 낭만이 가득 차 있었다. 손미나 작가님은 프랑스에서 사는 동안 머릿속에서 ‘혁명이 일어났다.’고 쓰셨다. 그도 그럴 것이 프랑스 사람들의 가치관은 우리와 달라도 너무 다르다.

 

그들에게 ‘결혼’은 제도일 뿐이며 동거는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다. 낭만적인 도시이지만 환상 같은 영원한 사랑을 믿지 않는 그들의 현실적인 삶에 대한 태도의 반영으로 보인다. 반면 우리는 어떤가? 높은 이혼률을 보이면서도 동거란 문화가 여전히 보편적으로 자리 잡지 못한채 환상에 젖어있는 사회가 안타깝다.

 

 교육 분야에서 보면, 프랑스의 학교에서는 등수가 아예 없다. 대입시험에서는 사지선다형 문제 대신 ‘과거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 우리는 자유로운 존재인가?’ 이런 종류의 철학적인 사고를 요구하는 질문이 나온다. 

 

오로지 지식의 습득만 추구하는 우리와 어린 시절부터 생각할 힘을 기르는 프랑스인들 중 누가 더 성숙한 사고를 할지는 뻔한 일이며 그들의 교육방식이 부러워서 미칠 지경이었다.

 

남을 인정하는 그들의 태도 덕분에서 동성 커플에 대한 열린 사회와 카페에서 토론 뒤에 남의 다른 의견을 고치려 들지 않고 넘어가는 모습이 목격된다. ‘다름’을 ‘틀림’으로 단정지어버리는 것은 얼마나 위험한 생각이었는가. 게다가 그들은 남의 시선을 의식하지도 않는다. 프랑스의 멋쟁이들은 누가 나와 똑같은 옷을 갖고 있으면 자존심 상해서 그 옷을 옷장에 넣어버린다고 한다. 남의 시선 때문에 너도 나도 똑같은 옷이나 가방을 사는 한국과 정반대의 성향이다. 나는 진짜 멋은 복제판이 아닌 자신만의 멋이란 그들의 생각에 동의한다.

 

책 곳곳에서 작가님의 국제적 친화력은 또 한 번 발휘된다. 동네 식당의 노부부부터 세계적인 작가 베르베르까지, 힘들게 배운 프랑스어를 통해 작가님은 또 한 번 타지인들과 친구가 되면서 그들과 함께 한 순간을 기록하셨다. 작가님도 이제 젊은 나이가 아니시지만 그녀를 통해서 나이에 상관없이 온 세계 사람들과 교류하며 사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배웠고 이는 내가 꿈꾸는 삶이다.

 

 

작가님이 파리에서 겪은 고충을 읽으며 겉은 아름답지만 그 속에서 사는 것이 만만치 않은 것을 느꼈다. 확실히 서울이 파리보다 깨끗하고 편리하며, 살기 좋다. 그러나 우리의 사고방식은 도시의 쾌적함과 발전 속도를 못 따라간다는 생각이 들었다.

 단지 물질적으로 잘 사는 것이 다가 아니다. 사는 태도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손미나 작가님의 책을 읽으면서 깨달았다. 작가님이 들려주는 프랑스 이야기 덕분에 내 머릿속에서도 ‘혁명’이 일어났다. 나도 프랑스인들처럼 자유롭게 살고, 나와 다른 타인을 인정하며, 깊게 사고하고, 예술을 즐기며 살고 싶다. 

 

 

 




- 본문 중 -


 

결혼식을 안 하고 같이 사는 사람들에게는 ‘왜?’라는 질문은 하지 않지만 동거를 하지 않고 바로 결혼하는 것은 오히려 이상하게 본다. ‘누군가와 살아보지도 않고, 그 사람의 24시간을 눈으로 확인해보지도 않고, 어떻게 평생 함게 먹고 자고 여행하겠다는 약속을 하지?’ 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물론 그만큼 동거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사회 분위기, 동거 커플에게 부부와 크게 다를 바 없는 권리를 인정해주는 제도적인 뒷받침, 내 연인의 동거 경력을 수치스럽거나 역겨운 것이 아니라 참사랑을 찾기 위한 과정에서 발생한 자연스러운 선택으로 품어주는 개개인의 가치관이 존재하는 덕분이다. 

 

 남자친구가 많았던 여자는 정숙하지 못한 사람 취급을 받고, 동거나 결혼 경력이 있으면 복구 불가능한 흠집이 난 그릇처럼 여기는 우리와는 달라도 너무 다르다. (p51)

 

 

사실 한국과 프랑스는 ‘사랑의 본질’을 바라보는 시선 자체에 큰 차이가 있다. 간단히 말해 ‘영원한 사랑이란 존재하는가’에 대한 두 사회의 보편적 답이 완전히 다르다. 영원한 사랑이란 없다고 말하는 프랑스인들 VS 영원한 사랑에 대한 일종의 의무감이나 환상을 갖고 있는 우리. 프랑스, 특히 파리는 낭만이란 단어와 늘 관련 지어 생각하지만 그곳에 살고 있는 프랑스인들은 오히려 매우 현실적이고 이성적이다. 

 

 반대로 우리야말로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사랑을 꿈꾸는 낭만주의자들, 아니 낭만주의자인 척하거나 낭만주의자가 되고 싶은 소망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인지도 모른다. (p53)

 

 

그들이 멋스러운 진짜 이유는 너도 나도 유행을 따르지 않고 자기만의 스타일을 찾을 줄 알기 때문이다. 프랑스 여자들은 하필 자기가 좋아하는 스타일의 옷이나 스카프가 유행 중이면, 그것을 샀더라도 옷장 안에 몇 년 묵혀둔단다.

 왜? 남들과 똑같은 것을 걸치는 건 자존심 상하니까. 길에 한 번만 나가봐도 뭐가 유행인지 바로 알 수 있는, 옆집 순이 엄마가 샀으면 나도 무조건 사야 하는 우리 사회의 정서와는 반대이다. (p71)

 

 

아무리 낯선 곳일지라도 잊지 못할 기억이 덧입혀지면 그곳은 여행자에게 더없이 소중한 장소가 된다. (p75)

 

남을 따라 하거나 자신의 단점을 감추려 하지 말고 외모든 내면이든 숨겨진 아름다움을 찾아낼 줄 알아야 인생도 아름답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거야. (p102)

 

 

프랑스 여자들이 가진 미의 철학

아무리 예뻐보인다 해도 판에 박은 듯 똑같은 아름다움이나 인위적으로 꾸민 듯한 모습은 우리 프랑스 여성들에게 전혀 매력적으로 보이지 않거든요. (p109)

 

 

평생 일에만 매달리며 성공을 향해 질주하는 우리의 삶과, 직업에 상관없이 에술적 창작 활동을 하고 가족과의 사랑, 여가를 즐기는 일에 초점을 맞추는 그들의 삶이 어떻게 다른지 파리에 사는 동안 확실하게 피부로 느꼈기 때문이다. (p115)

 

" 정말 이해가 안 되네. 사람마다 잘하는 과목이 다르고 관심사도 다르고 각각 다른 재능을 가지고 있는데 어떻게 그걸 평가한다는 거야? 진짜 신기하네. 도대체 무슨 기준으로 인간에게 등수를 매기느냐는 말이야. 그게 가능한 거니?"

“ ..그럼 너희는 등수가 없어?”

“ 없지.”

(p 118)

 

 

교육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우리의 또 한 가지 문제점은 ‘철학의 부재’다. 우리의 교육은 너무나 일관되게 ‘당신은 무엇을 알고 있는가?’를 물으며 지식 쌓기를 강요한다. 그것도 주입식으로. 그러나 프랑스의 고등학교에서는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는가?’를 중요시하는 교육을 해왔다. 

 국어, 영어, 수학 등의 과목에서 사지선다 형으로 주어진 문제의 답을 맞혀 대학에 가는 우리와 달리, 프랑스의 대입 시험인 바칼로레아는 어떤 사고와 철학을 갖고 사는 사람인지를 파악하기 위한 주관식 문제로 이루어져 있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과거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 우리는 자유로운 존재인가?’. ‘ 사랑이 의무일 수 있는가?’. ‘철학자는 과학자에게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는가?’.

(p119)

 

 

실제로 프랑스 젊은이들과 사귀다 보면 열 살쯤 어린 사람과 대화를 나누어도 사고의 성숙함에 있어서 오히려 내가 뒤진다는 느낌을 지우기 힘들다. 수학의 미적분과 영어 단어는 내가 더 많이 알지만, 삶을 대하는 태도와 인간으로서 가슴에 품을 수 밖에 없는 질문들에 대해서는 그들이 훨씬 더 먼저 눈을 뜨고 훨씬 더 많이 생각해보았기 때문이다. (p122)

 

 

프랑스에서 동성애 커플은 남녀 커플과 똑같이, 결혼하고 아이를 입양하고 세금 혜택을 받는 등 모든 권리를 누린다. 어디까지나 인간 대 인간으로서 사랑을 하고 있는 ‘보통’ 사람들로 존중받기 때문에 당신의 그런 표정을 반가워하지 않을 것이다.

 프랑스에서 ‘다름’은 결코 ‘틀림’이 아니며, 프랑스 사람들은 자신의 기준으로 섣불리 남을 ‘판단’하거나 ‘비난’하지 않는다. (p350)

 

 

프랑스 철학카페에서 그들이 토론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은 매우 흥미로웠다. 일단 나이나 직업에 상관없이, 남을 멸시하거나 기죽는 일 없이 어쩌면 그렇게 당당히 자기 의견을 펼칠 수 있을까 감탄스러웠고, 위험 수위까지 가는 듯 팽팽한 토론을 벌인 뒤에도 곧 웃으면서 ‘당신의 의견은 그렇고 내 의견은 이렇지요’라고 마무리한 뒤 함께 차를 마시는 모습도 놀라웠다.

 

나는 살면서 타인의 ‘다름’에 대해 얼마나 관용을 베풀고 살아왔는가. 앞으로는 얼마나 그럴 수 있을까. 

 ‘다르다’는 것은 ‘틀리다’를 의미하지 않을뿐더러 ‘내가 남보다 우월하거나 열등하다’라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p356)

 

 

인간이라면 누구나 사랑할 권리가 있듯 창작에 대한 열정을 불태울 권리가 있다고 생각하는 프랑스인들에게 예술은 지극히 당연하게, 또 자유롭게 누려야 하는 일이며 삶의 일부이고, 형식 따위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 (p3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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