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 밑에 구매평도 '속 시원한 책'이라는 댓글을 보고 바로 구입했다. 이 책 제목의 또라이는 우리가 만나는 직장에서의 또라이들을 말한다. 원제는 더 심한 단어를 쓰고 있다. ( The No Asshole Rule ) 제목으로 이런 강력한 단어를 채택하다니! 그러나 한국 정서상 우리는 그런 악인들을 '또라이' 라고 부르기 때문에 번역 제목도 적절해 보인다. 그래도 경영 컨설턴트라는 고상하고 품위 있는 직업을 가진 저자가 이런 욕을 제목으로 택했다니 놀랍다. 하지만 그는 그런 못된 인간들을 향해 Ass**** 란 단어를 부여하는데 일말의 망설임도 없다.
책에서 소개하는 직장 내 또라이들에 대한 연구에 보면 아마 나를 비롯한 많은 독자들의 예상 대로 그런 또라이 짓은 전부 윗사람이 아랫사람을 괴롭히는 양상으로 나타난다.
물론 또라이들은 자신과 동등한 직책을 가진 사람들이나 처음 본 사람들한테까지 민폐를 끼치고 무시하며 악행을 저지르지만 대부분의 예시는 위,아래 관계 우리정서로 하면 갑을 관계에서 비롯된다. 첫 장에서 그런 또라이들의 만행에 관한 수 많은 사례들이 소개된다. 즉 직장 내의 성격 이상자들을 또라이라고 부르는 게 아니라 책에서 소개된 그들은 자신들의 지위를 이용해 아랫사람을 괴롭히는, 우리식으로 표현하면 갑질하는 또라이 상사들에 관한 보고서다.
또라이 상사들은 자신의 권위와 직위를 이용해 아랫사람들을 괴롭힌다. 협박, 욕설, 신체적 폭력, 성회롱처럼 대놓고 괴롭히는 방법 뿐 아니라 공포 분위기 조성, 시도 때도 없이 인신공격성 메일 보내기 고함치기, 거짓말로 골탕 먹이기, 투명인간 취급 등 엄청나게 다양한 방법으로 사람들을 못살게 군다.
이런 무시무시한 분위기는 우울한 결과만 초래할 뿐이다. 또라이가 있는 조직에서는 밑에 사람들이 견디다 못해 이직해버리기 때문에 새로 사람을 채용하는데 많은 시간과 돈이 낭비된다. 남아 있는 사람들 역시 정신적 스트레스에 시달리며 일을 잘하기 보다는 또라이를 피하는데 더 많은 노력을 쏟아 붓느라 결국 그 팀 전체가 좋은 실적을 낼 수 없는 환경이 되어버린다.
이 모든 일의 원인이 또라이들은 자신들 때문에 그런 일이 벌어졌다던가, 부하직원들이 괴로워한다는 사실을 눈치채지 못할 뿐더러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책에서 또라이들은 회사를 떠나던가 아님 스스로 바뀌던가 하는 방법 밖에 없다고 나온다. 난 이 부분을 읽을 때 세상 모든 범죄는 상대방의 고통에 관심 없기 때문에 생긴다는 시의 한 구절이 생각났다. 이들 갑질 또라이의 심리상태는 정말 범죄자와 다를 바 없으며 실제로 '땅콩회항' 같은 범죄로 이어지기도 한다.
이런 갑질 또라이상사들이 가져오는 파급효과는 엄청나게 파괴적이다. 책에 나온 연구 중에 온화한 성품을 가진 의사가 이끄는 병동과 성질머리가 고약한 의사가 이끄는 병동을 비교해보니 오히려 못된 의사가 이끄는 팀의 실수보고가 훨씬 적었다. 이는 간호사들이 그의 더러운 성질머리가 무서워서 실수가 생겨도 보고하지 않았던 것이다.
아마 시간이 지나면 이런 잘못들이 곪아터져 나중에 더 큰 문제가 발생할 것이다. 결국 또라이들의 이 더러운 성격은 회사에도 악영향을 끼친다.
또 하나 예로 나온 실리콘 밸리의 한 회사는 책의 표현을 빌리자면 '공인된 또라이' 라는 직원 때문에 엄청난 손해를 보았다. 그는 에단(가명)이란 판매원으로 항상 상위 5%에 드는 직원이었는데 막되 먹은 성격 때문에 비서들이 1년을 채우지 못하고 떠나버렸다. 당연히 계속 새로 비서를 구하는데 많은 돈이 들었을 것이다. 동료들 역시 에단을 회사 분위기를 망치는 사람이라고 진정서를 무려 5년이나 냈다. 회사는 그의 성격을 개조하기 위해 심리 상담도 보내고 수를 썼으나 결국 그는 변하지 않았으며 그를 내쫓을 수 밖에 없었다.
문제는 이런 못된 인간의 행보를 5년이나 참았던 것이며 이로 인해 회사가 손해 본 비용은 한 해 16만 달러라고 계산되었다. 금전적인 측면 뿐 아니라 주변 사람들이 얼마나 괴로워했겠는가?
또라이들의 행동도 언젠간 스스로의 파멸을 불러온다. 책 뒷편에 나온 것처럼 많은 사람들은 또라이의 악행을 참고 참다가 틈을 보이는 한 순간에 무너뜨리기 위해 벌떼처럼 달려들기도 한다.
직장 내 또라이 상사들의 존재는 결국 도덕성의 부재다. 직위가 높다고 해서 그것을 사용해서 남을 무시하고 욕설을 퍼부을 자격이 생긴다는 것이 아니다. 아무리 뛰어난 능력을 갖추거나 어려운 시험에 통과해서 자격을 갖추게 되었을지라도 주변 사람들에게 고통을 주는 악행을 용서받을 수 없다.
모든 직업들은 결국 사람과 유대관계와 동료 혹은 고객의 협조를 요구하기 때문에 아무리 능력자라 할지라도 그런 못된 심보를 가지고 절대 성공할 수 없다. 남을 존중하지 않는 자는 능력과 지위에 상관 없이 퇴출되어야 한다.
[ 책 본문에 실린 문장]
신약성서 마태복음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놀랍게도 책은 미국 내에서 또라이 금지 규칙을 진짜 실행하고 있는 회사들도 소개한다. 직원들을 존중하며 성질 내지 않고, 회의를 할 때도 감정적 싸움이 아니라 그 문제 자체에 초점을 맞춘 회의를 진행한다. 당연한 얘기지만 이렇게 직원들이 존중 받는 곳의 명성과 실적도 드높았으며 하다 못해 회사 제품을 훔쳐가는 일까지 줄어들게 만들었다. 공익광고에서나 볼 수 있던 '애사심'을 만드는데 성공한 회사들이 드물지만 존재하고 있다.
책에 나온 이야기들에 강하게 공감할 수 밖에 없었던 건 훌륭한 리더나 천재는 책이나 영화에서나 나오고 실제 직장에서 만나기 힘들다. 현실의 직장에서는 마주치는 건 또라이들이며 그들의 행동을 견뎌야 하는 것이 일상이기 때문이다.
이런 권력의 잘못된 길로 빠지지 않도록 책 뒤편에는 또라이 자가 진단과 또라이가 되지 않는 법까지 실려 있다. 정말로 직장인들을 위한 보고서이자 참고서인 책이다.
이 지구의 수많은 직장인들의 우울한 현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책이라 할지라도 책은 전반적으로 유쾌했다. 많은 사람들의 가려운 곳을 긁어주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갑질을 용납하고 아랫사람을 하대하는 걸 당연하게 여기는 한국 사회에서 그런 금지 규칙이 생겨나는 날이 올 것인가? 만약 저자가 같은 주제로 한국을 조사했다면 '갑질 금지 규칙' 이라는 제목으로 책이 출간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직원 ( 아랫사람 ) 을 존중하고 또라이를 추방하는 캠페인이 한국 땅에서 벌어지는 걸 내 이번 생에 과연 볼 수 있을까 라는 의문이 든다.
=== 본문 중 ===
직원들을 옹졸하고 엄격하게 대하는 조직은 창의성을 말살시켜 멍청한 얼간이만 우글거리는 따분한 곳이 된다. p28
우리의 사회적 기준이란 이런 게 아닐까? '당신이 정말로 큰 승리자라면, 정말로 엄청난 또라이 짓을 해도 참을 수 있다.'
하지만 꼭 그런 것은 아니다.
내가 아는 대단히 효율적이고 양심 있는 몇몇 회사는 웬만한 꼴통이라도 철저히 무시하고 벌을 줘서 쫓아내 버리지, 절대 참지 않는다. p 84
우리 회사를 위해 일하는 사람들은 모욕을 받아서는 안 됩니다. p85 ( 또라이 금지 규칙을 잘 싱행하고 있는 사우스웨스트 항공의 CEO가 한 말 )
열정, 헌신, 조직과의 일체감에 대한 이러한 모든 이야기는, 좋은 직장에서 존중받고 품위를 유지하면서 일할 때라면 단연코 옳은 말이다. 하지만 업무 스트레스에 눌리고 자존심에 상처받으며 직장과 회사에 얽매여 있는 수백만 명의 사람들에게 그것은 위선이요 헛소리에 불과하다.
그들의 목표는 몸 건강하고, 자존심 지키면서 버티다가 가족들에게 돈을 가져다 주는 것이지, 자신을 하찮게 여기는 회사를 위해 뭐 대단한 일을 하겠다는 것이 아니다.
회사는 또 나름대로 업무에 관심도 없는 직원들밖에 없어서 성과도 나쁘고 힘들다고 하겠지만, 이 책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일상적으로 직원들을 무시하는 회사라면 그것은 자업자득일 것이다. p200
악당이 거만하게 굴 수 있는 이유 중의 하나는, 우리가 그렇게 내버려두었기 때문이다. p2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