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땅 문학과지성 소설 명작선 9
임철우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97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 시작하기에 앞서

언젠가부터 책을 다 읽고 난 후의 내 행동에 변화가 생겼다. 마지막 책장을 덮었을 때 가끔씩 나도 모르게 박수를 치는 게 그것이다. 미처 내가 알지 못했던 바를 일깨워주는 책, 글의 구성이 새로운 책, 그리고 내용이 깊어 다시금 음미하게 하는 책 등 이른바 나에게 '감동적'으로 다가온 책을 읽고 난 후에 나도 모르게 박수를 치는 것이다. 오늘 임철우의 <아버지의 땅>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었을 때 내 손은 아주 자연스럽게 서로 맞부딪치고 있었다. 이 책은 충분히 박수 받을만하다. 그의 작품 <봄날>이 작가 자신이 그토록 소망했던 것을 표현한 것이라면 이 책은 작가 임철우가 어떤 인물인가를 보여주는 것이다.

● 아름다운 불협화음

작가의 초기 단편들을 수록한 <아버지의 땅>은 모두가 암울한 상처를 가지고 있는 이야기들이다. 밝은 빛 혹은 내일로 열려진 희망들은 존재하지 않는 오직 어둠뿐이다. 아주 잠깐 여명이 등장하기도 하지만 금새 먹구름에 가리워진다. 그런데도 아름다운 이유는 무엇 때문인가? 그것은 사실적이라는 것 그리고 그 사실을 바탕으로 희망은 조직될 수 있다는 신뢰의 감정이다.

11개의 작품들 모두는 사회적 역사적 환경과 깊은 연관을 맺고 있다. 「곡두 운동회」, 「아버지의 땅」, 「뒤안에는 바람 소리」, 「그 밤 호롱불을 밝히고」는 1950년 한국전쟁이 만들어낸 사람들의 질서와 아픔을 그려내고 있는 것이다. 그 밖의 작품들 또한 개인과 주변 상황과의 긴장관계를 그려내고 있다. 이 들 작품 모두는 섣부른 희망이나 모순극복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그것들은 작가 혹은 우리들의 희망사항일 따름이지 객관에 존재하는 실재의 모습은 아니다. 전쟁을 겪고 80년 광주를 겪은 상황에서 어떻게 희망을 이야기할 수 있겠는가. 희망을 노래는 가해자의 은폐기도 혹은 우리들의 용기 없음의 표현일 뿐이다.

작가는 희망을 이야기하지 않는 대신 아픔과 어둠을 말하고 있다. 결코 조화롭게 융화될 수 없는 개인과 사회를 이야기하고 있다. 상처와 아픔은 현재진행형이 될 수도 있으나 대부분 과거의 문제이다. 그것들을 치유할 수 있는 길은 바로 기억의 형상화와 실재화이다. 작가는 근본적 문제해결을 위해 희망 대신 어둠과 아픔을 말했던 것이다. 그래서 임철우의 불협화음은 아름답다. 가슴이 쓰리고 아프지만 읽는 이들이 문제해결 가능성의 중심에 서 있다는 느낌을 받기에 아름답게 느껴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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