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문 날의 삽화 문학과지성 소설 명작선 18
박완서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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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줌마. 이 말을 혼자 조용히 되뇌어 보거나, 크게 외쳐보면 마음 속 깊은 곳에서 뭔가 울컥 치밀어 오르는 느낌이 들고는 한다. 대한민국 사회에서 아줌마는 아주 독특한 인간군상으로 취급한다. 전철에서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육중한 몸을 기꺼이 내던지고, 공공장소에서 우렁찬 목소리를 뽐내며, 종종 아무것도 아닌 일에 쉽게 토라지거나 흥분하는 우리네 아줌마. 오죽하면 세상에는 남자, 여자, 그리고 아줌마가 있다는 말도 있겠는가. 물론, 우스게 소리로 하는 말이지만 그 안에는 아줌마에 대한 비하가 담겨있는 것도 사실이다.

'아줌마'라는 말에는 살갑기는 하지만 애잔한 느낌이 내포되어 있다. 그 단어는 가난과 온갖 역경을 꿋꿋이 이겨낸 대한민국 여성, 그리고 언제나 낮은 곳에서 아니 낮은 곳을 찾아다니며 다른 가족을 위해 희생만을 했던 우리네 엄마를 떠올리게 한다.

상처받은 모든 사람을 보듬어 주는 사람. 배고프다고 하면 대접에 고봉처럼 쌓은 흰쌀밥을 내오고, 피곤하면 뜨신 아랫목을 양보하며 자신의 담요를 깔아주는 사람. 잠을 험하게라도 자면 이불 여미어 주고 베개 고쳐주는 사람. 떠나는 사람 뜨신 밥 한끼 꼭 배불리 먹여 보내고, 돌아오면 따뜻하게 맞이해 주는 사람. 알뜰살뜰한 가정 경제를 위해 단 돈 100원 때문에 상인과 싸우고, 숱한 고생으로 인한 관절염 때문에 다리가 아파 오래 서 있을 수가 없어 전철에서 점프하는 사람. 그러나 정작 집에 돌아오면 앉을 새도 없고, 앉을 만한 자리도 없는 사람. 제일 일찍 일어나고, 제일 늦게 잠드는 사람. 이렇게 살고도 언제나 무시당하는 사람.

그 사람 아줌마. 우리 아줌마 무시하지 말자! 아줌마도 여자다! 아줌마한테 자리 양보하자! ps) 『저문 날의 삽화』는 인생을 하루로 따진다면 저무는 때에 해당하는 아줌마, 아저씨들의 삶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책이다. 수년 전 사회적 논쟁에서 이문열을 옹호했던 박완서에게 크게 실망했다. 당시 이청준도 이문열을 옹호했다. 두 老작가의 심중을 이해 못할 바 아니지만, 아직 '저문 날'로 접어들지 않은 '햇살 찬란한' 나는 이해하고 싶지 않다. 머리로는 이해하겠지만 마음은 여전히 거북스럽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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