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자들
김려령 지음 / 창비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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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는 나의 일부가 때로는 나의 전부가 문장 안에 사람들 사이에 있었다. 문장의 길이가 비교적 짧아서 빠른 호흡으로 어렵지 않게 읽힌다고 생각했는데, 마지막 책장을 덮으며 되돌아보니 그것은 공감대와 친숙함에서 비롯됐다.

김려령의 소설집 『기술자들』에 실린 7편의 단편들은 ‘황금 꽃다발’을 품에 안는 것과 같은 진귀한 태몽을 갖고 태어난 이들이 ‘이것저것’을 하며 살아가는 이야기다. 갑자기, 라고 반문할지 모르겠지만 말 그대로 갑자기 톨스토이가 떠올랐다. 행복한 가정은 모두 모습이 비슷하고, 불행한 가정은 모두 제각각의 불행을 안고 있다는 『안나 카레니나』의 첫 문장은 보편적이기도 하고 특수하기도 하니 애매하다. 다만 우리의 삶에서 기대했던 순서가 어긋나고 평범한 일상이 깨지는 것은 역설적이게도 평범한 일상의 일들 때문이다.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엄마가 보관해 둔 자신의 어릴 적 물건들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포용할 수 있는지 없는지’(상자, 38쪽) 저울질 된 후 이별을 통보받는 황당함을 겪는다. 또한 학창 시절에 있었던 오해 때문에 ‘싫음의 감정은 노력으로 벗어날 일이 아니’(오해의 숲, 197쪽)라고 생각하며 인간 관계 속에서 미리 담을 쌓고 경계한다. ‘어릴 적에는 괜한 엄살로, 이번에는 잔꾀로 수술을 밀어붙여’(뼛조각, 101쪽) 모든 것을 아버지에게 의존하는 아들이 있는가 하면, 자신의 성공을 위해 유년 시절을 왜곡하는 이기적인 아들도 있다.

하지만 작가는 의지대로 통제할 수 없는 삶에 순응하며 삶을 이끌어가고 비뚤어진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새로운 선택으로 나아가는 주인공들을 응원한다.

‘부지런히 살았다고 해서 돈도 부지런히 모인 것은 아니나, 어미가 자식놈 산 세월을 알아주지 않으면 누가 알아주겠나’(황금 꽃다발, 78쪽) 인정받으며 욕심 없이 일상을 꾸려가는 착한 아들이 있다. ‘불량 가족사는 내 가족만으로도 충분한(세입자, 165쪽)’데 가족의 굴레에서 벗어나려고 월세로 들어간 아파트에서 자신이 세입자임과 동시에 감시자 역할을 하고 있음을 알고 차라리 행불자를 선택한 딸이 있다. 우연한 계기로 멀어졌던 친구를 다시 만나 ‘착각과 오해로 인한 창살’(오해의 숲, 201쪽)에서 벗어나 비로소 홀가분해진다. 엄마는 ‘곁에만 있어도 좋은 사람이 아니라 그저 필요해서 있어야 하는 사람’(청소, 228쪽)과 같았기에 다 닦고 다 버리고 남길 것은 남기고 긴 시간이 지나도록 집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그중에서 단연코 표제작이 마음에 와 닿았던 까닭은 어떤 이유로든 해야 했던 일들이 ‘무용지물 같으면서도 동시에 잡스러운 든든함’(기술자들, 35쪽)이 된다는 토닥임 덕분이었다. 내가 무엇이 아니어도 된다는 포용과 이것저것이어도 좋다는 다정함이 좋았다.

** 내가 책을 고르는 몇 가지 기준에는 디자인도 포함된다. 동명이인인 배우에 관한 글이 끝없이 연결되는지라 검색창에 정확히 ‘창비 디자인 박정민’이라고 썼다. 나는 책에 관해서는 무엇도 아니고 이것저것조차 될 수 없지만 책날개에서 박정민님의 이름을 발견할 때마다 늘 감탄한다. 자신의 분야에서 빛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는 뜬금없고 부담스러울테니 응원합니다, 로 하겠다.

출판사 서평 이벤트를 통해 받은 도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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