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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방거리 수사대 : 한양풍문기의 진실 ㅣ 사계절 아동문고 110
고재현 지음, 인디고 그림 / 사계절 / 2023년 11월
평점 :
광통 지전의 연이 아씨와 몸종 동지는 신분은 서로 다르지만 태어나서부터 지금까지 자매처럼 지내왔다. 둘은 세책점에서 빌린 책에서 한양풍문기 쪽지를 발견하고 거기에 적힌 말과 댓글을 통해 전에 만난 적이 있는 최씨 일가족이 어느날 밤 순식간에 사라져버렸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누가 어떤 이유로 풍문기를 붙인 것인지 실마리를 찾아나선 두 사람 앞에 등장한 것은 양반가 자제 윤휘였다. 사건의 진상을 알리기 위해 소문을 퍼트린 그와 억울하게 죽은 이들이 없게 하려고 의심스러운 사건 현장을 홀로 추적하는 포졸 두태가 더해져 네 명의 친구가 책방거리 수사대가 된다.
‘누구도 이유 없이 죽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이유를 모른다면, 더욱이 억울한 죽음이라면 남겨진 사람의 마음은 단 하루도 편할 수가 없다. 그 괴로움을 잘 알기 때문에 어떤 죽음도 억울함이 없게 하겠다고 결심했다.’(54쪽)
한양 운종가 책방거리를 배경으로 신분과 성별을 뛰어넘는 어린이들의 활약상을 보여주는 동화이지만, 작가가 그려내는 이야기는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 사회의 단면을 조명하고 있다.
‘사람들은 똑같은 소문도 자신의 신념에 맞으면 진짜라 믿고, 안 맞으면 가짜라 믿는다. 무엇보다 사람들은 진실보다 거짓을 더 믿고 싶어 하지.(135쪽)
개인의 사사로운 이익을 위해 누군가를 함정에 빠뜨리고 모략하는 사람들, 익명성에 기대어 진실과 거짓을 구별하지 않은채 무차별적으로 쏟아내는 악성 댓글들, 일의 추이를 알면서도 입을 닫고 방관하는 사람들, 자신이 저지른 잘못을 알면서도 갖가지 핑계와 지위에 기대어 숨는 사람들.... 그 모든 사람들이 쫓는 자들을 피하려다 물에 빠져 죽게 된 최씨 가족과 선한 의지로 사회와 일상을 건실하게 꾸려가는 사람들의 가해자이다.
땔감나무를 서로 나눠 썼기 때문에 시종일관 모르쇠로 일관한 마을 사람들을 보면저 ‘궁극적인 비극은 악한 사람의 억압과 잔인함이 아니라 그에 대한 선한 사람의 침묵에서 온다. 결국 우리는 적들의 말이 아니라 벗들의 침묵을 기억할 것이다. 우리가 중요한 문제에 대해 침묵하기로 마음먹을 때 우리의 생명은 끝나기 시작한다.’는 마틴 루터 킹의 말을 다시 한 번 새겨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