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만히 귀 기울여 보기

달팽이도 달린다 ㅣ 사계절 중학년문고 39
황지영 지음, 최민지 그림 / 사계절 / 2023년 5월

평소에 아동문학을 즐겨 읽는 편이 아니지만 이 책에 실린 다섯 편의 단편은 저마다 이야깃거리가 풍부하고 우리의 일상과도 가까워서 마법처럼 끌리듯 빠져들어 읽었다.

「달팽이도 달린다」의 진형이는 집에 달팽이가 있지만 그 느낌이 징그럽고 무서워서 관심을 기울여보지 않는다. 그러다가 키우던 달팽이 달이를 달팽이 별로 떠나보낸 다민이와 이야기를 하게 되면서 그들의 이름을 지어 불러주고 생태를 알아보고 먹이 먹는 모습을 바라보는 일의 소중함을 깨닫는다. 밤새 탈출한 달팽이를 찾느라고 베란다를 샅샅이 뒤졌던 내 경험이 생각나서 재미있기도 했지만, 번데기에서 성충까지 우화하는 시기에 좀 더 기다리지 못한 내 실수 때문에 수명이 짧아진 사슴벌레가 생각나서 미안했다.

「땡땡 님을 초대합니다」에서 희석이는 <괴물 잡는 아이>를 쓴 작가와의 만남을 기다린다. 자기 집에도 괴물이 있고 그 괴물을 유리구슬 안에 가둬야하기 때문에 결코 완결되어서는 안 된다는 희석이의 속사정이 무엇인지 걱정이 된다. 아동 학대와 가정 폭력에 고통 받고 있었던 것일까 희석이를 도와줄 작가님은 왜 희석이의 메일을 보지 않는 것일까 마음이 조급해 지려는데 기적처럼 땡땡 작가님이 등장한다. 희석이를 염려하는 주완이도 있고 희석이의 이야기를 들어줄 땡땡 작가님도 오시고 이제 희석이는 <괴물 잡는 아이>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 같다.

「잠바를 입고」에는 아파트 같은 동에 살면서도 서로 다른 입구와 엘리베이터를 이용하는 하리와 지현이가 나온다. 하리는 공익광고 촬영을 앞두고 있는데 감정이입을 도와주려는 지현이의 이야기가 들은 것이 아닌 지현이 본인의 것이라는 사실을 독자는 알게 된다. 촬영을 위해 ‘싸 보이고, 낡고, 때타고, 물려 입은 듯 커 보이는 것’(65쪽)을 위해 가장 낮은 가격 순의 가장 위에 있는 점퍼를 골랐던 엄마는 그 점퍼를 지현이에게 전해주라고 하지만 하리는 그럴 마음이 들지 않는다. 가끔 뉴스에서 어린이 놀이터를 이웃 아이들과 공유하지 않겠다는 어른들의 이기적인 결정이 고스란히 아이들의 상처로 이어지는 것은 아닌지 생각했다. 나이보다 빨리 마음이 먼저 성장한 지현이에게 하리라는 친구가 생겨서 감사했다.

「복어의 집」은 생명이 있는 모든 것들의 숭고함이라는 의미에서 「달팽이도 달린다」와 비슷한 맥락에서 읽었다. 복어를 바다로 보내주고 싶은 승재와 자기가 만들어 놓은 웅덩이에 복어를 가두어두려는 아이가 갈등을 일으킨다. 때마침 물때가 바뀌어서 밀물이 들어오고 승재는 ‘바닷물이 용왕님을 구하러 오고 있는’(110쪽)거라고 생각하며 마음을 놓는다. 호기심은 자칫 장난에 그치기 쉽고 아무리 좋은 환경도 본래의 자연과는 같을 수 없으니 이기적인 마음보다는 각자의 방식을 존중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최고의 좀비」의 미주는 동생 동주의 핼러윈 행사를 돕게 되면서 좀비 분장을 하게 된다. 다리가 불편한 미주는 자신의 장애보다 뭐든지 앞서 도와주려고 나서는 친구 유진이 때문에 마음이 불편하다. 미주에게 도움이 되고 싶은 유진이의 마음은 진심이었을 테지만, 차별이 아닌 차이를 존중하라고 배우면서도 우리는 여전히 서투를지도 모른다. 다른 사람들이 자신에게 적응하기를 기다리는 미주에게서 자신을 긍정하는 씩씩한 모습을 볼 수 있어서 좋았다.

작은 플라스틱 통 안에서 3대째 족보를 이어가고 있는 사슴벌레를 보면서 동물이든 식물이든 사람과 함께 생활을 공유하는 모든 것을 향해 ‘가만히 그 소리에 귀를 기울여’(29쪽) 보는 일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생각했다. 땡땡 작가님을 기다리는 희석이도, 어려운 환경을 탓하지 않는 지현이도, 자신을 긍정하는 미주도 우리 가까이에 있다. 각자의 방식으로 건강한 하루를 꿈꾸는 모두를 위해 ‘가만히 귀를 기울여’ 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