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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세주 ㅣ 사계절 아동문고 107
이인호 지음, 메 그림 / 사계절 / 2023년 3월
평점 :
아주 어릴 적에, 늘 지나다니는 교차로 부근에 불을 환히 밝혀둔 전자상가가 있었다. 저녁 어스름에 도로는 점점 어두워져가고 조명이 밝은 가게 안에서 어른과 아이가 함께 까불까불 움직여대는 작은 몸짓을 바라본 적이 있다. 아마도 나는 그 모습을 자주 바라봤던 것 같다. 그때는 그저 바라보았다고 생각했는데 이제 생각해보니 나는 적절한 표현을 몰랐을 뿐 그 풍경은 어느 것보다 ‘안온했’다. 그 시절의 내 안에도 ‘어떤 세주’가 있었을까?
오직 하나뿐인 세상의 주인공이라는 의미로 탄생한 오세주는 그리 안온해 보이지 않는다. 부모님은 곳곳에서 불화의 낌새를 풍기느라 세주에게 관심을 쏟을 여지를 보이지 않는다. 세주와 함께 사춘기를 지나고 있을 언니는 뭐든 제멋대로 행동해서 세주의 기분을 망가뜨리기 일쑤다. 학교도 다를 바 없다.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 못해서 말을 주고받거나 함께 웃는 친구도 없다. 어쩌다 1+1 아이스크림을 전해준 재혁이에게 금방 마음을 빼앗기고, 언제나 웃는 얼굴의 채아가 부러우면서도 예의 바른 척하는 것 같아 못마땅하다.
그러다 우연히 편의점에서 같은 반 친구인 수용이를 만나고, 체험학습에서 수용이의 점심 도시락을 얼떨결에 먹어버리게 되면서 모든 일들이 얽히게 된다. 이런 세주 앞에 ‘어떤 세주’가 등장한다. 어떤 세주는 세주가 망설이고 있는 말을 당당히 할 수 있도록 의지를 북돋우고, 위험 앞에서 망설이는 순간에는 주저하기를 허용한다. 관계를 형성하는데 있어서 속에 있는 말을 참아내는 것이 미덕이고 불의 앞에 달려드는 것을 의롭게 생각하니 우리는 늘 선택의 순간에 놓이고 갈등하는 것이 아닐까.
남에게 쉽게 말하기 힘든 아픔을 갖고 있는 수용과 세주는 집에서도 학교에서도 외롭고 쓸쓸하기는 마찬가지이지만 이를 묵묵히 받아들인다. 자신이 처한 현실을 받아들인 아이는 속상해서 울먹이는 아이보다 안타깝다.
사실 내면의 어떤 세주는 채아와 친구가 되고 싶은 마음을 숨기고 있었던 것 같다. 그렇지 않고서야 채아의 말과 행동, 웃음 하나까지 매일을 관심 있게 바라보고 있었을 리가 없다. 오직 하나뿐인 세상의 주인공 오세주는 이제 수용이와 채아와 친구가 되었고 더 많은 친구를 사귀게 될 것이다. 학교에서의 관계 맺기가 성공한 것처럼 집에서도 다 채워지지 않은 서류가 언제 그랬나는 듯이 되돌려지기를 바래본다. 그리하여 누구보다 안온한 오세주가 되기를. 우리 모두가 오직 하나뿐인 세상의 주인공임을 느낄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