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계속된다 - 어느 유대인 소녀의 홀로코스트 기억
루트 클뤼거 지음, 최성만 옮김 / 문학동네 / 2018년 10월
평점 :
절판


아우슈비츠를 경험한 소녀의 회고록
‘페미니즘’ 시각에서 아우슈비츠 경험을 알고 싶은 사람을 위한 책

 

 

삶은 계속 된다. 루트 클뤼거. 문학동네.

 2018년에 의도한 건 아니지만 나치에 대한 책을 여럿 읽었다. 한나 아보트의 책에도 흥미가 있었다. 그런 상황이었기에, 문학동네의 이 책에 흥미가 생겼다.
 사실 당첨되고 한참 뒤에 당첨 안내 글을 본 터라 별 기대 없이 주소 등록을 했는데, 의외로 책을 보내 주었다.

 이 책, 정말 오래 읽었다. 가방에 넣고 다니며 며칠에 걸쳐 읽었다. 편한 책이리라 생각하지는 않았다. 아우슈비츠에 대해 다룬 만화 ‘쥐’를 읽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힘겨웠으니까. 하물며 그녀는, 10대 초반의 소녀였다. 성인이 겪는 아우슈비츠와, 소녀가 겪는 아우슈비츠는 분명 다를 터였다. 하지만 여러 의미에서, 상상 이상으로 힘겨웠다.

 중학생 때일까 고등학생 때일까. 아버지 책장에서 731부대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다. 사람을 삽으로 찍고, 삽으로 때려 죽이고, 차에 매단 채 차를 달리게 하는 등의 묘사가 적나라하게 책 곳곳에서 펼쳐졌다. 개 먹이를 먹이고, 개의 뒤에서 달리게 하는 모습이 가장 경한 묘사였다고 하면, 이 책에 나오는 참상이 어땠는지 조금은 실감이 날까.
 처음에는 그 모든 일들이 충격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책을 읽어 나가면서, 나는 그 책에 나오는 묘사에만 집중했다. 인간의 존엄성조차 유지되지 않는 살벌한 공간. 하지만 그 이야기는 어느새 흥미본위로 흘러가버렸다. 요네자와 호노부의 ‘왕과 서커스’에 나오는 이야기처럼, 타인의 슬픔은, 타인의 불행은, 그걸 바라보는 내 입장에서는 어느새 흥밋거리로 변질되어 버렸다.
 그 이야기를, 루트 클뤼거도 하고 있었다.

 어떨까. 나는 정말로 아우슈비츠를 겪은 유대인의 고통을 이해하기 위해 이 책을 집었을까. 아니면 그녀의 불행을, ‘즐기기 위해’ 이 책을 집었을까. 이 책이 읽기 불편했던 건, 그녀가 겪은 불행이 고통스러웠기 때문일까. 아니면 이 책 곳곳에 나오는, 타인의 불행을 함부로 재단하고, 타인의 불행을 함부로 평가하며, 나와 타인을 분리한 채 타인의 불행을 ‘즐길 수 있는’ 사람에 대한 분노에 나조차도 자유롭지 않았기 때문일까.
 어느 쪽일까. 이 책을 덮은 지금, 이 글을 쓰면서도 나는 대답을 하지 못하고 있다.

오스트리아에서 태어나, 유대인에 대한 차별을 겪고, 그도 모자라 아우슈비츠까지 끌려간 소녀. 운이 좋아 아우슈비츠에서 다른 수용소로 이송되어 다행히 탈출에 성공했다. 미군정 하에서 그럭저럭 인간답게 살다가, 미국으로 이민한 뒤, 교육을 받아 교수까지 된 루트 클뤼거.
 10대 소녀의 아우슈비츠 경험이라니. 이런 기분으로 읽는다면 아마 실망할지도 모르겠다. 그녀는 ‘현상’에 대한 이야기는 거의 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표피만 건드릴 뿐 깊숙한 이야기는 거의 하지 않는다. 타인의 불행을 즐기고 싶다면 실망스러울 책.
  대신 그녀가 당시 겪었던 일들에 대해 썼던 시. 그리고 그 일들을 대하는 타인의 태도. 유대인. 여자, 이민자라는 소수자의 입장에서 하는 이야기에 관심이 있다면 읽는 보람은 있을지도.
 이 책이 당신의 시야를 넓히는데 기여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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