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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든 리트리버 코난, 미국에 다녀왔어요 - 미국의 개 친구들을 찾아 떠난 모험 이야기
김새별 지음 / 이봄 / 2018년 9월
평점 :
골든 리트리버 코난과 함께하는 미국 생활 1년. 타국의 반려견 문화 기록기.
목줄, 입마개 등, 인간과 반려동물이 함께하는 삶을 꿈꾸는 당신을 위한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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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든 리트리버 코난, 미국에 다녀왔어요. 김새별. 이봄.
이 책은 서평단 이벤트로 받은 책입니다. 평소와 논조, 어조 등이 다를 수 있습니다.
사실 이 책, 개의 여행기인지 알았다. 와아. 코난이 미국에 다녀와서 친구들 많이 만났대. 어떤 느낌이었을까. 신기해하며 신청했는데. 여행기라기보다는 미국에서는 어떻게 반려견을 키우고 있는가, 이 점에 대해 중점적으로 설명하고 있었다.
목줄을 풀어 놓을 수 있는 공원. 개도 수영할 수 있는 해수욕장. 사람을 문 개를 위한 변호사. 개만을 위한 놀이공원. 안락사가 없는 보호 시설. 동물만을 위한 간식 가게. 우리나라에는 없는 시설 혹은 문화에 대해 생각해보고, 어떤 식으로 도입할 수 있을지 고민해 볼 수 있다.
내 개가 자유롭게 다니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한둘이 아닐 테니 애견인이라면 개를 자유롭게 풀어놓아도 되는 시설이 가장 흥미 있지 않을까.
안락사. 목줄과 입마개. 견종에 대한 차별. 과연 개의 수명을 인간이 정하는 것이 옳은지. 아무리 같이 살기 위해서라지만 개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은 옳은지. 단순히 개의 품종만 놓고 개를 차별하는 건 옳은지. 애견인이라면 이 역시 흥미 있어 할 주제. 저자의 생각과 자신의 생각을 같이 비교해봐도 좋을 터다.
애견인이라면 읽어볼 만한 책. 다만 극성 애견인은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사나, 이런 호기심이 있는 것 아니라면, 비애견인은 덮는 쪽이 좋다. 개는 싫지만 귀여운 개 사진 많이 보고 싶어, 그런 마음가짐이면, 인스타를 추천한다. 귀엽고 사랑스러운 개 사진의 홍수에서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다.
이하는 책에 대한, 혹은 극성 애견인인 저자에 대한 비판이니, 더 이상 읽고 싶지 않은 사람은 뒤로가기를 누르는 걸 추천한다.
내 개가 사랑스러워서 어쩔 줄 몰라하는 건 상관없다. 내가 책에 파묻혀 사는 걸 좋아하는 것과 별반 차이도 없고. 본인이 행복하다는데 무슨 말을 더 할까.
문제는. 이 책 쓸데없는 한 마디가 많다. 책 곳곳마다 개를 싫어하는 사람들이 배려가 없다는 투의 말이 반복된다, 이때마다, 이 말이 꼭 하고 싶어진다.
진짜 개가 싫어서 개가 싫다고 하겠나. 개에 푹 빠져서 주변 사람은 아랑곳하지 않는 당신이 싫은데, 차마 대놓고 당신이이 싫다는 말은 할 수 없으니, 애꿎은 개한테 책임 뒤집어씌우는 거지.
하지만 이번만큼은 대놓고 말하겠다. 난 개를 무서워하지만 싫어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비애견인에 대한 배려가 없는 저자는, 정말 싫었다.
의사도 묻지 않은 채 가족에게서 떨어뜨려 데려온 뒤, 먹을 것 챙겨주고, 평소에는 가둬두다 가끔 운동 시켜주고, 어쩌다 특식 챙겨주고, 아프면 치료해주고, 내키면 놀아주고.
인간에게도 위와 같은 서비스가 있다. 교도소. 덧붙여서 교도소는 가족에게 편지도 쓸 수 있고, 가족이 면회도 온다. 전화통화도 가능하다.
반려견. 애견인들이 원하니 쓰고는 있지만, 이 이상 기만적인 용어는 없지 않을까. 저자는 책에서 몇 번이고 말한다. 발달장애 아동들에게 도움이 되니, 노인에게 도움이 되니, 개를 길러야 한다고. 즉, 인간에게 필요하니 길러야 한다는 논조다.
가족은, 도움이 되니 같이 있는 게 아니다. 그 자체로 충분하다. 필요해서 들이는 개가, 인간의 필요에 맞추기 위해 본성에 어긋나는 각종 훈련을 받는 개를 어떻게 감히 가족이라고 칭할 수 있나. 그런 식으로 취급할 거면, 그냥 애완견이라고 해라.
목줄과 입마개가 개의 자유를 침해하니 반대한다는데. 그렇게 개의 자유를 소중히 여기는 분들이 어떻게 개를 기르는지 이해를 못하겠다. 동물원에 동물을 가둬두는 건 동물복지에 위반된다고 한다. 개는 왜 예외인가.
다른 개와 어울리며, 자연 속에서 뛰어다니며, 자기 먹을 건 자기가 챙겨가며, 그렇게 사는 게 개로서도 훨씬 행복하겠지. 인간밖에 없는 집에서, 먹는 것 하나 자기 마음대로 못하면서, 기껏 나갈 때조차도 개의 속도가 아닌 인간의 속도에 맞추어 끌려가면서. 그래도 내 개는 내 사랑을 받으니 행복하겠지. 진심으로 그리 믿는 건가.
목줄이 풀린 채 바다에 뛰어들어, 부르는 것조차 무시하며 헤엄치는 코난을 보면서도, 평소 갇혀 있던 코난이 얼마나 괴로웠을지, 그 생각 하나 못하는 저자를 보며, 어이가 없었다.
입장 바꾸어서, 자신이 같은 처지라면, 그래도 나보다 ‘우월한 종족’에게 사랑받으니 괜찮다고 만족할 수 있나. 나는 싫다. 차라리 쓰레기통 뒤지며 살더라도, 언제 살처분 당할지 모른다고 두려워하면서도 내키는 대로 살겠다.
사실 단순히 전 개를 사랑해요. 우리 개 불쌍하니 목줄 풀어주고 입마개 안 하고 싶어요. 딱 1절만 했으면, 별 말 안 했을 거다. 개를 싫어하는 사람, 무서워하는 사람에게 피해를 안 주는 선에서 적정하게 조치한다면, 크게 관여하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저자는 절대 1절로 마치지 않는다. 개 목줄을 풀고 하루 행사를 했는데, 아무도 개에 물리지 않았는데. 욕구가 충분히 충족된 개는 안전한데 평소에 목줄 묶고 입마개까지 하자고 하다니, 비애견인 너무 배려심 없는 것 아닌가요? 설령 사람을 문 개라고 하더라도, 잘 교화하면 피해를 안 줄 수 있는데, 무작정 살처분 잔인한 것 아닌가요.
호랑이는 왜 가두어 두나. 호랑이도 배부르면 사람 안 잡아먹으니, 그냥 어슬렁거리게 놔두어야 하지 않나. 사형은 왜 하자고 하나. 비록 사람을 죽였지만, 잘 교화하면 더는 안 죽일지도 모르니, 일반인처럼 생활하게 두어야 하지 않나. 동물 죽이는 건 잔인하고 사람 죽이는 건 괜찮나.
모든 개가 위험한 것은 아니지만 위험한 개는 분명히 있다. 키우지 않는 사람은 절대 구별할 수 없다. 하물며 이곳은 인간을 위한 곳이지 개를 위한 곳이 아니다. 개에 대한 배려를 말하고 싶다면, 일단 사람에 대한 배려부터 말해주었으면 좋겠다.
내가 좋아한다고 해서 타인도 좋아하리라는 보장이 없다. 이 좋은 걸 왜 좋아하지 않느냐고 묻기 이전에, 그 사람에게는 나름대로 타당한 이유가 있으리라 생각해보는 세심함을 길러 주었으면 좋겠다. 이런저런 점이 불편하다면, 일단 본인부터 잘한 뒤에, 나는 노력하고 있으니 당신도 노력해 달라고 정중하게 부탁하면 좋겠다.
타인의 배려심을 운운하고 싶다면, 본인부터 타인을 배려해주는 것이 우선이지 않을까.
다시 말하지만, 개를 좋아하면 마음 편히 즐길 수 있는 책. 코난은
귀여우니, 와아 코난 귀여워. 행복해할 수 있다. 개의 천국으로 보이는 미국을 보며, 우리도 언젠가 저렇게 되면, 꿈을 꾸어도 좋겠지.
다음부터는 개가 귀엽다고 무작정 책을 잡기 이전에, 저자 성향부터 살피기로 했다. 원래는 사랑스러운 개와 예쁜 풍광에 힐링 받으려고 책을 폈던 건데. 하아. 힐링은커녕 아침부터 이게 뭐하는 건지. 여러 의미에서 울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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