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사와 선비 - 오늘의 동양과 서양은 어떻게 만들어졌는가
백승종 지음 / 사우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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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념 없는 사회. 다시 돌아보는 선비도
물질만능주의. 성숙한 정신에 대해 생각해보고 싶은 사람을 위한 책.

 

신사와 선비. 백승종. 사우.
 
서평 이벤트에 당첨된 책이므로, 평소와 논조 문투 등이 다를 수 있습니다.
 
책에 대한 이야기를 써야 하는데, 조선 후기에 대한 악담만 잔뜩 늘어놓고 있어서 결국 썼던 글을 지워버리고 다시 쓰고 있다. 내가 왜 역사 싫어하는지 알 거 같다. 자랑스러워해야 할 역사보다 수치스러워해야 할 역사가 더 많으니. 가끔은 자기 학대 공부 같다.
분명 과거를 돌이켜보는 건 중요하지만, 우리 역사를 돌아보다 보면, 차라리 역사 안 배우는 게 낫지 않을까 이 생각마저 든다. 조선시대 붕쟁 열심히 배우면 뭐해. 지금도 정치인들은 이념에 사로잡혀, 정권이 바뀔 때마다 발목 잡기만 하는데. 야당일 때는 반대하던 걸 여당 되어서는 찬성하고, 여당일 때 밀어붙이던 걸 야당 되면 발목잡고. 이쯤 되면 무엇을 위한 역사인지도 잘 모르겠다.
 
여러 책에서 공통적으로 지적하는 것 중 하나. 현재 우리에게는 이념이 없다. 일제시대와 한국 전쟁을 거치면서, 사상적 기반이라고 할 만한 것이 싸그리 날아가 버렸다. 남존여비, 신분차별, 이런 폐습은 날아가서 다행이기는 한데, 사상적 기반이 송두리째 날아가다 보니, 천민 자본주의가 득세하는 게 문제다.
외견은 팽창하였는데, 내면은 그를 못 따라가야 한다고 해야 할까.
 
서양은, 우리와 달리 시간이 많았다. 자본주의가 발달하는 동안, 철학자들이 그에 대해 깊이 사색할 수 있었고, 사람들도 천천히 바뀌는 시대 상황 속에서 느긋하게 고민할 수 있었다. 어느 정도 합의점을 도출할 수 있었다. 하지만 우리는 그럴 시간이 없었다. 사회는 휙휙 바뀌었고, 한 세대 전의 생활 양식은 존재해서는 안 되는 과거 유물이 되어 버렸다.

서양의 이념을 무작정 받아들이는 건 안 된다. 우리는 그들과 문화적 뿌리를 공유하지 않는다. 그런 상태에서 서양의 이념을 받아온들, 우리의 것으로 만들 수 없다. 서양의 좋은 정책이 우리나라에서 실패하는 건, 정신적 토양이 다르기 때문인 것처럼.
그러니 저자는 조선시대 선비 정신을 들고 온 것이다. 조선시대라고 하면 덮어놓고 싫어할 사람들에게, 우선 서양의 신사도에 대해 저자 나름의 시각에서 차근차근 설명한 뒤, 신사도와 선비 정신이 어떤 점에서 같고 어떤 점에서 다른지 보여주면서, 선비 정신에도 이런저런 장점이 있으니, 본받아 보는 건 어떻겠냐며 넌지시 권하는 것.
 
각 장을 시작하면서 각 장의 내용을 짤막하게 요약해서 보여주기 때문에, 책의 주장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저자의 주장은 뚜렷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주장을 위해 선비 정신의 문제점을 외면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문제점을 자진해서 알려주는 태도를 통해, 설득력을 좀 더 높인다. 자신의 주장을 위해 문제점을 감추거나 왜곡해 버리는 경우도 많다는 점을 고려하면, 자신의 주장의 신뢰도를 높이는 바람직한 저술 방침이라고 해야 할듯.
 
지배자로서 실질적인 행동 지침이 필요했던 신사들과 달리, 지배층이라고 해도 정치에 직접 참여하는 건 힘들었던 선비들의 형이상학적 이념. 일본에 꿋꿋하게 대항하는 모습이라든지, 자신의 정의를 위해서는 목숨까지 내던졌든 그들의 태도는 분명 멋지지만. 글쎄. 옳지 않다고 생각하면 전혀 타협하지 않는 그 태도가, 현대 사회에서는 오히려 문제가 아닐까. 더불어 사는 사회에서 필요한 건 타인의 주장을 경청하고 필요하다면 내 주장을 수정하는 자세일 텐데.
 
철학이 없는 사회. 어떤 식으로 철학을 주입할지 고민하는 책이다. 서양과 동양이 어찌하여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는지, 고민하는 기회가 될 수도 있다. 저자의 방대한 지식을 토대로, 조선시대 선비들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는 기회가 될지도 모른다.
좋은 책은 여러 가지로 생각할 여지를 준다. 그 점에서는 분명 좋은 책이다. 관심이 있다면, 읽어보아도 좋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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