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초마다 한 마리씩 - 미국 도축 현장 잠입 보고서
티머시 패키릿 지음, 이지훈 옮김 / 애플북스 / 2012년 9월
평점 :
절판


미국 도축업계에 대한 고발 보고서

 

  너무 가벼운 책만 골라 읽는 것 아닐까. 사회 고발 등 묵직한 책을 읽어야 하는 게 아닐까. 이렇게 읽어 남는 게 하나라도 있나.
  독서는 즐거워야 한다. 독서에 의미를 부여해서는 안 된다. 얻기 위해 하는 독서는 최악이다. 이렇게 생각하면서도 가끔 흔들릴 때가 있다. 다른 사람들은 어렵고 머리 아픈 책만 읽는 것 같고. 다른 사람들은 책을 읽으며 사회의 부조리를 연구하는 것 같을 때.
  그런 기분으로 빌린 책. 안 그래도 개 식용 문제로 시끄러우니 겸사겸사. 여러 이유가 있지만, 그중 하나가 비인도적인 개 도축 문제라면 다른 쪽은 어떤지 알아볼 필요가 있지 않겠냐는 기분으로.
가끔은 독서에 거창한 이유 들이밀 때도 있다.
 
  맛의 달인을 좋아해서 몇 번이고 읽었다. 가장 인상 깊었던 건, 개고기에 대해 다루었던 부분.
  아버지가 개를 먹었다고, 야만적이라고 아이들이 아버지를 외면하는 상황에서, 극단적인 채식주의자까지 나타난다. 지로는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농장을 찾고, 식물이 자라는 비디오를 모두에게 틀어준다. 딱 한 군데를 제외하면 전혀 빛이 들지 않는 매우 어두운 공간. 식물은 어떻게든 살아 보겠다고 빛을 향해 천천히 자라나간다.
  살고 싶다는 욕망은, 식물에게도 있다. 그러니 고통을 느끼지 못한다는 이유로 식물을 먹는 것 역시, 인간의 오만이라는. 어차피 먹어야 한다면, 그 모두에 감사하는 게 맞지 않겠냐는, 그런 말을 하고 있다.
 
  이 책에 도축 장면이 생생하게 묘사된다. 소도 자신이 죽는 걸 안단다. 그러니 어떻게든 들어가지 않으려고 발버둥친다. 그러면 전자충격기로 강제로 몰아버린다. 그렇게 몰아서 이마를 총으로 쏘아 버리는데. 그래도 죽지 않은 소는 피와 토사물을 흘리며 발버둥친단다. 그러면 총으로 반복해서 쏘고.
  위생적이지도 않다. 광우병 우려 있는 소를 완전히 걸려 내지도 않는다. 규칙대로 하면 수익이 떨어지니까 어떻게든 모르는 척 외면하며, 걸리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아마 소가 먹기 싫어지는 책이 아닐까.
 
  다만. 내가 집중해서 읽은 건 이쪽이 아니다. 살기 위해서는 죽여야 한다. 죽이지 않으면 먹을 수 없다.  나는 살기 위해 온갖 생명을 죽여댈 테고, 무수한 시체 위에서 내 삶을 지탱하겠지. 그런 내가 생명의 소중함을 운운하며 동정심을 내비치는 건 기만이며 오만이며 위선이다. 어차피 피를 흘리며 살아야 한다면, 내가 다른 생명을 죽이고 있다는 사실만큼은 외면하지 않겠다. 자존심이다.
 
  내가 정말 집중해서 읽은 건, 도축장에서조차 내보이는 권력 관계. 도축장과 사업장의 권력 관계. 도축이 직접 진행되는 곳과 그렇지 않은 곳의 권력 관계. 주된 업무와 부수적 업무와 관련된 권력 관계. 백인과 유색인종의 권력 관계.
  도축장. 분명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곳. 철저하게 폐쇄된 곳. 일반인은 함부로 들어가지도 못하고, 사진을 찍거나 기록하는 것도 불가능한 곳. 하지만 그 속에서도 다시 단절이, 권력구조가 발생한다는 사실이 아이러니하다.
  도축장에서 일하는 사람은 유색인종이 대부분. 제대로 된 일거리를 구하지 못하는 사람이 주로 온다고 한다. 벨트 앞에서 부품이나 된 것처럼 화장실조차 허락받고 가야 한다. 입구조차 다르다. 그 속에서도 직접 도축을 담당하는 사람은 다시 격리된다. 모두 도축에 종사하지만, 직접 죽이는 일만큼은, 그 누구도 알지 못하고 알려고 들지 못한다.
  영어가 되지 못하는 그들은, 제대로 된 일은 맡지 못하며, 도축장 내의 중요한 일에 대해서는 알 자격조차 얻지 못한다. 영어를 알면 도축장의 전반적인 사정은 파악할 수 있다. 대신 그들 역시 도축 현장과는 단절된다. 현장에 있지만, 이런저런 형식적인 절차에 얽매여 오히려 현장을 외면하게 되는 것이다. 영어를 알더라도, 도축장이 아닌 프런트 오피스에서 일하는 건 모두 백인.
 
  남녀 문제도 있다. 핵심 업무는 모두 신체 건장한 남자가. 부수적인 일만 여자가, 건장하지 않은 남자가 담당한다. 수입을 내는 건 오히려 부수적인 일이라고 해도. 핵심 업무와 부수적인 일을 하는 사람들 사이의 마음가짐은 분명 다르다. 차별도 없잖아 있다.
  결국은 도축장은 현실의 축소판. 아니 그 무엇도 가리지 않기에, 오히려 현실을 적나라하게 볼 수 있을지도.
 
  여러 가지로 생각해 볼 수 있어 좋았던 책인데. 누가 읽으면 좋을까. 일단은 육식에 대해 고민하는 사람. 혹은 도축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알고 싶은 사람이 좋겠지. 매일매일 고기를 먹으면서도, 우린 정작 고기가 어찌 생산되는지는 거의 모르고 있으니, 이번 기회에 알아보는 것도.
  다만 위에서도 말했다시피, 이 책 꽤 자극적이다. 이 글 쓰면서 책 내용 되새기다 보니 속이 메슥거린다. 그러니 본인 정신건강 고민해 본 뒤 독서를 할지 말지 결정하면 좋겠다.

어째 어제(6.13.) 읽은 책들은 추천하기 난감한 책이네. 가끔 그런 날도 있는 법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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