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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무렵 누군가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이혁재 옮김 / 재인 / 2014년 4월
평점 :
히가시노의 초기작을 모아둔 느낌의 단편집
히가시노를 정식으로 알게 된 건, 몇 년 되지 않았다. 하지만 히가시노 책을 맨 처음 읽은 건 고등학교 때. 일본 영화 비밀. 매우 독특한 소재였기에 볼까 말까 정말 망설였다. 일본 영화는 재미없다는 이야기만 안 들었어도, 봤을 텐데.
그래서 도서관에서 비밀의 원작 소설을 발견하자마자 바로 빌려 왔다. 단번에 다 읽었다. 미묘한 기분이었다. 갑자기 어린 몸으로 돌아갔다. 그래. 새로운 삶을 살고 싶은 건 당연하겠지. 딸의 인생을 보상해준다고 말을 하면서도, 아내는 새로운 자신의 인생을 찾고 싶지 않았을까.
그렇다고 해도. 딸 연기까지 해가며 남편을 속일 건 뭐가 있는지. 짜잔. 아내의 인격은 사라지고 완벽한 딸의 인격이 되었어요. 그렇게 남편에게 말한 뒤 새로운 남자와 혼인한다. 하지만 남편도 아내도 전부 알고 있다. 실상 그 무엇도 바뀌지 않았다는 사실을.
아빠 안녕. 읽으며 계속 비밀을 생각했다. 찾아보니 비밀의 초기작이라고. 아아. 그렇구나. 비밀을 축약한 듯한 단편을 읽으며 새삼스럽게 비밀을 떠올렸다. 이미 10년도 더 전에 읽은 책인데, 흐릿하게나마 스토리가 떠오른다.이해할 수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그 책이 꽤 마음에 든 모양이다. 내가 무언가를 평가할 때는 그러려니 하는 게 좋다. 싫다고 투덜댔지만, 사실은 마음에 들었는지도 모른다.
나도 잘 모른다. 그냥 그렇지 않을까 추측할 뿐. 나는 내게도 진실을 잘 말하지 않는다. 비밀주의다. 익숙해서 신경 안 쓴다. 그러려니 할 뿐.
인상적인 단편이 많았다. 아빠 안녕 다음으로 기억에 남는 건 레이코와 레이코. 강간을 당한 그녀는, 그 충격으로 이중인격이 되어, 자신을 소중하게 돌보아 준 여자의 남자친구를 살해한다. 그리고는 그 충격으로 다행히 본래 성격으로 돌아온다. 여기까지는 그럴 수도 있는 일.
하지만 마지막에서 이야기가 전환된다. 정말로 이중인격일까. 사실 인격변화는 없었던 게 아닐까. 자신을 지키기 위해. 사실은 진심으로 복수하고 싶어서 기억을 잃은 게 아닐까.
히가시노의 소설에는 섬뜩한 방식으로 복수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렇기 때문에 마지막 질문에 차마 대답을 할 수 없었다. 안 좋은 쪽으로만 대답이 떠올라서.
히가시노 책 자체가 무조건 평타는 친다. 고로 히가시노 책 좋아하는데 아직 이 책을 읽어보지 않은 사람이라면 망설임 없이 읽어보면 좋겠다. 아빠 안녕이 마음에 들었다면 비밀도 한번 읽어보면 어떨까. 백야행과 같이 히가시노답지 않으면서도 히가시노다운, 어딘가 아련한 느낌이 마음에 들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