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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의 연애 - 늘 버티는 연애를 해온 당신에게
을냥이 지음 / 생각정거장 / 2018년 8월
평점 :
품절
모든 연애는, 날 사랑하는 것부터 시작하는 거야.

서평단 이벤트로 받은 책으로 평소와 논조 문투 등이 다를 수 있습니다.
진심으로 대하는 사람은 역시 진심으로 대해야 한다. 이 규칙에 의거, 사귀던 남자에게 사죄의 뜻을 담아 고했다. 나는 너를 사랑하지 않고 사랑할 것 같지 않다. 그러니 이만 끝내자는 의미로.
사귀자는 말에 고개를 끄덕였을 때, 가장 힘든 시기였다. 죄책감과 외로움이 잘 어우러진 감정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도 내게 진심인 것 같지 않았다. 그러면 적당히 사귀자 끝내자. 길어야 100~200일. 그 정도면 내 외로움도 내 죄책감도 이제 슬슬 끝을 보이지 않을까.
말 한마디 잘못해서 피해 보는 성격 있지 않나. 그 남자도 그랬다. 해도 되는 말과 해서는 안 될 말을 구분하지 못했다. 하필이면 가장 중요한 순간에.
그는 처음부터 진심이었다. 오해한 건 나였다. 시종일관 내게 진지하다는 사실을 안 뒤, 나는 결단을 내렸다. 나를 위해서도, 그를 위해서도, 이것만큼은 절대 아니었다. 이미 날 사로잡고 있는 죄책감으로도 지긋지긋했다. 죄책감을 더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어떻게 되었는지 묻는다면.
첫 연애 때, 30일 내내 제대로 잠 못 잔 뒤 굳게 결심했다. 내가 다음에 또 이런 짓 하면 인간도 아니다. 날 사랑해주는 사람, 날 존중해주는 사람 아니면 절대 매달리지 않을 테다.
그 결심 지금까지 지켰다. 이런 책 본래는 내게 필요 없다. 옆에 어떤 바보만 없었다면. 그래. 그렇게까지 대놓고 말했는데도, 우리는 아직도 사귀고 있다. 심지어 혼인까지 했다.
대체 왜 그러는지 모르겠다. 본인에게 물어봐도 명확한 대답이 안 나온다. 하지만 내가 좋은걸. 요지부동이다. 최후의 수단으로 내가 싫은데 네가 좋아한다고 끝날 문제인지 물어보았다. 너 나 좋아하잖아. 됐다. 관두자. 저건 내 이해를 한참 뛰어넘은 생명체다.
그래도 가끔 이해를 시도한다. 그래 내가 이해 못 하는 건 내 지식이 부족하기 때문이고, 어쩌면 이해할 수 있는 실마리가 있을지도 몰라. 아니 있어야 해.
이 책에도 실마리는 전혀 없었다. 고로 첫 연애 기분을 떠올리며 읽었다.
처음이라 전부 서툴고 바보 같았던 나. 그의 말을 순진무구하게 전부 믿었던 나. 아니. 계속 불면증에 시달릴 정도였으니, 사실 진짜 믿었던 건 아닐 터. 단지 인정하는 것이 무서웠던 거다. 더는 그가 내게 마음이 없다는 사실을. 그러니 믿은 척했다. 그러면 조금이나마 오래 갈까 봐.
사실 그 이상의 바보짓도 없음에도.
남편과 사귀고 난 뒤의 일이다. 새벽 3시. 속이 뒤집히는 기분으로 일어났다. 심하게 체했다. 응급실 갈 정도는 아니었다. 그래도 있고 싶지 않았다. 전화를 걸었다. 받지 않는다. 옷을 걸치고 일어났다. 배를 부여잡고, 5분 거리를 10분 넘게 들여 걸었다. 비밀번호를 누르고 문을 연 뒤 깨웠다. 일 나가는 사람에 대한 에의는 아니다. 그래도 정말 혼자는 싫었다.
졸린 눈을 비비고 일어나, 자초지종을 듣고는 간호를 해주었다. 괜찮은지 걱정해주고, 필요한 게 무엇인지 물어보고. 일 나가는 것 알잖아. 원망은 한 마디도 없이. 피곤하다고 내색하지도 않은 채.
한참 지나자 속이 가라앉았다. 잠이 든 뒤 눈을 떴다. 그는 출근한 상태. 멍한 상태로 방을 둘러보며 생각했다. 사랑받는 건 이런 거구나.
을의 연애를 하는 모든 사람들이 알았으면 좋겠다. 사랑은 말로 확인하는 게 아니다. 행동으로 확인하는 거다. 정말 사랑하면 행동에서 바로 티가 난다. 정말 소중하게 생각하면 모르고 싶어도 모를 수가 없다.
사실은 정말 헤어지고 싶었다. 내가 괜찮지 않았다. 사랑하지 않는데 연애하는 것, 내 가치관으로는 있을 수 없는 일.
하지만 헤어지기 위해서 발버둥치지는 않았다. 확실한 수단들은 조용히 내려놓았다. 좋아하는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지만, 싫지는 않다. 그러면 괜찮겠지. 이건 정말 아니라고 계속 생각하면서도 사랑받는 걸 포기할 수가 없어서.
서글픈 연애를 하는 주인공을 보며, 내가 그랬지. 내가 그러고 있지. 씁쓸한 공감을 할 수 있는 컷툰 에세이. 귀여운 고양이가 가득하니 읽는 건 부담이 없다. 우울한 내용이 가득 펼쳐지기는 하지만. 이런 책은 본래 우울한 사람이 읽을 테니 나만 힘들지 않다는 사실에 더 위안이 될 것 같다. 사실 내가 예외 중 예외가 아닐까.
힘겨운 연애를 하는 사람이라면 위안이 되어 줄 수 있는 책. 설령 지금은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모르더라도, 부디 언젠가 눈치채게 된다면. 그러면 더 좋은 사람 만나, 사랑받는다는 기분을 절실히 느낄 수 있으면 좋겠다. 당신에게는 그런 자격이 있다.
분명 서평으로 시작한 것 같은데. 내 연애 이야기가 태반이다. 뭐가 잘못된 건지 잘 모르겠다. 하지만 나쁘지 않은 것 같으니 내버려 두는 걸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