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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돌이 푸, 서두르지 않아도 괜찮아 - 언제나 오늘이 처음인 우리에게 ㅣ 곰돌이 푸 시리즈
곰돌이 푸 원작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8년 5월
평점 :
논어와 함께 하는 곰돌이 푸

간만에 회사 자료실에 놀러 갔다. 이 책이 책꽂이에 얌전히 꽂혀 있기에 쏙 빼 왔다. 분명 원래 계획은 빌린 책 돌려주고 맨손으로 돌아 나오는 거였는데. 분명 그랬을 텐데. 괜찮다. 금방 읽을 수 있으니까. 쌓여 있는 책들이, 대체 난 언제 읽어줄 거냐 노려보는 것 같다. 언, 언젠가는 읽겠지. 삐질삐질.
왕좌에서 오랜 기간 내려오지 않던 책. 대체 왜 이렇게까지 인기가 있는지 알 수 없는 책이었다. 그림이 귀여워서? 물론 푸는 귀엽다. 글이 공감되어? 사실 공감되는 글이기는 하다. 하지만 그 모든 장점을 고려해보아도 계속 왕좌에 버티고 있을 정도는 아닌 듯한데. 알쏭달쏭.
‘곰돌이 푸, 서두르지 않아도 괜찮아’는 동양 철학 느낌이 물씬 난다. 논어에서 영향을 받은 구절이 많다. 귀여운 그림과 달리, 문구들은 성숙해서, 어쩐지 밸런스가 맞지 않는다.
짤막짤막한 글과 귀여운 그림이 계속 책을 가득 채운다. 푸와 친구들의 다양한 모습을 보며, 꺅꺅 귀여워를 외치다 보면 책은 어느새 끝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푸 진짜 귀엽지 않나.
내 취향은 아니다. 네가 열심히 하면 돼. 이런 긍정론 좋아하지도 않을뿐더러. 이 책 푸와 그다지 관련이 없어서.
보노보노 파생작들은 그럭저럭 납득이 간다. 보노보노 원작 자체가 철학적인 느낌을 물씬 풍기는 데다. 원작자가 직접 감수한 보노보노 파생작에는 보노보노 특유의 느낌이 잘 살아난다.
하지만 이 책에 푸는 없다. 원작 소설을 전부 읽었기에 단정할 수 있다. 원작 소설은 아직 글을 배우기 전, 사랑하는 아들을 위한 책이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바라는 점은 분명 잘 녹아있지만, 동양 철학이 물씬 느껴질 정도는 아니다. 단지 좋은 아버지구나, 이 생각만 했을 뿐.
긴 글 읽는 것 싫어하고, 무거운 이야기를 질색하는 사람의 취향을 잘 맞춘 책이다. 귀여운 푸로 책을 장식하고, 논어 사상의 핵심만 뽑아 짤막하게 잘 간추리고. 책은 읽고 싶지만 머리 아픈 건 싫어. 귀여운 게 최고야. 그래도 무언가 남으면 좋겠어. 이런 사람을 잘 유혹했다.
칭찬하는 거다. 꼭 책이 길어야 하고, 무거워야 하고, 도도해야 할 필요 없지 않나. 타인의 욕구를 제대로 이해하는 것. 마케터에게 매우 중요한 역량이다. 이 책 처음 기획한 사람은 상 받아야 한다.
귀여운 그림. 따뜻한 글귀. 읽는 내내, 따뜻한 기분이 될 수 있는 책. 위로가 필요할 때 가볍게 책을 넘기면, 잠깐이라도 기분이 풀릴 듯.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가치 있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