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정상가족 - 자율적 개인과 열린 공동체를 그리며
김희경 지음 / 동아시아 / 2017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정상가족’ 이념에 갇힌 정상이 아닌 ‘정상가족’

 

 

 

 이 책에서 말하는 ‘정상가족’은 가족이라면 이러이러해야 한다는 이념에 따른 가족을 의미한다. 이 책에서 언급하는, 그리고 아래에서 되풀이 될 ‘정상가족’은 절대 정상(正常)이라는 의미의 정상가족이 아니다.
 저자는 ‘정상가족’ 이념이 우리 사회에 여러 문제를 발생하게 한다고 생각하기에, 이 문제를 진단하고 실마리를 제공하기 위해 책을 썼다고 보면 된다.
 
 이 책은 저번 달 독서 모임에서 추천받았다. ‘아주 친밀한 폭력’을 읽은 직후였기에, 같이 읽으면 좋을 것 같았다. 다만 어찌어찌 하다 보니 한참 뒤에나 읽게 되었다. 책 쌓아두고 안 읽는 것 정말 버릇이다. 더 문제는 고칠 마음도 없다는 것. 두둥.
  ‘아주 친말한 폭력’ 내용은 머릿속에서 스리슬쩍 사라져 버렸지만. 이 책 자체를 읽는 데는 전혀 문제없었다. 그래도 두 권은 주제의식만큼은 공유하고 있는 만큼 같이 보았으면 좋았을 텐데, 아쉽다.

조선시대 여성은 정조를 지켜야 했다. 하지만 기생은 있었다. 정조를 지킬 수 있는 여성과 지킬 수 없는 여성으로 나눈 뒤, 정조를 지킬 수 없는 여성은 기생으로 만들어 정조를 지킬 수조차 없게 만들어버렸다.
 ‘정상가족’이 딱 그런 느낌. ‘정상 가족’이 될 수 있는 아버지 어머니 자녀로 구성된 가족은 법으로 보호되지만, 그렇지 않은 가족은 보호받지 못한다. 더 심하게 말하면 ‘정상 가족’이 아니기에, 오히려 가족 해체까지 강요당한다.

‘미혼모’ 이야기를 하자. 사실 ‘미혼모’라고 말하는 것 자체가 싫다. 혼인하지 않고 어머니가 되었다니, 저런. 이런 느낌이어서. 하지만 마땅한 대안도 없고, ‘미혼모’ 용어 자체가 ‘정상가족’의 문제를 보여줄 수도 있기에 그냥 쓰겠다.
 ‘미혼모’로서 살아가는 건 고달프다. 학생이라면 학업을 중단하게 된다. 심하면 가족도 내쳐버린다. 아이를 키우고 싶어도 키울 방도도 마땅치 않다. ‘미혼모’가 아이를 직접 키우는 경우 지원이 가장 적단다. 입양을 보내는 쪽이 아이 미래에 더 보탬이 될지도 모른다.
 어이없지 않나. 출산율 부족해서 어떻게든 아이 좀 낳으라고 다그치는 나라에서. ‘미혼모’가 아이를 낳아 기를 경우 지원을 그다지 해주지 않는다. ‘정상가족’에 얽매인 나라는 ‘정상가족’이 아니면 배척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씁쓸한 예시다.

 여기서 잠깐 질문. ‘정상가족’이 출산율에 도움은 될까.
 이혼 여성을 만난 적 있다. 이야기를 듣는데, 가관이었다. 외로워서 친목 모임에 참여하고 집에 돌아오니 문자가 와 있었단다. 가정은 포기할 수 없지만 너와 연애는 하고 싶다고. 분노하는 내게 그녀가 그러더라. 흔한 일이에요. 이혼했다는 이유만으로 저를 너무 가볍게 보는 남자들이 끊이지 않아요.
 평생 살 사람을 정하는 게 절대 가볍지 않은데. 이혼한 뒤 뒷감당이 너무 힘들다. 호적이나마 깨끗하게 관리하자. 이런 마음가짐인 사람들이 늘어나는 게 이해가 간다. 설령 낳더라도 역시 이혼 이후를 고려하자면 아이는 안 낳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늘어나는 것 역시.
 이 때문에 프랑스 등 몇몇 나라는 동거 역시 법률로 보호하고, 동거로 태어난 아이에게도 ‘정상 가족’에서 태어난 아이와 똑같이 대우하고 있다. 이를 통해 출산율이 더 올랐다고 한다. ‘정상가족’에 속하지 않은 사람에게 잔혹한 우리 역시, 고민해 볼 문제다.

 출산율을 떠나서도 ‘정상가족’은 문제가 된다. 특히 아동 복지에. 빈번하게 발생하는 아동 학대. 저자는 부모의 징계권을 인정하는 게 가장 큰 문제라고 한다. 내 애 내가 징계하는데 대체 뭐가 문제냐고 부모가 따지는 순간, 주변에서 할 수 있는 일이 그다지 없다고.
 정당한 체벌과 학대 대체 어떻게 선을 그을 수 있을까. 10대 때리면 정당한 체벌이고 11대 때리면 학대인가. 한 끼를 굶기면 정당한 체벌이고 세 끼를 굶기면 학대인가. 10분 가둬두면 정당한 체벌이고, 하루 종일 가둬두면 학대인가. 대체 이건 누가 정할 수 있나.

부모에게 징계권을 주는 것도 문제다. 국가가 국민을 처벌할 수 있는 건,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서. 회사에서 사원에게 징계권을 행사할 수 있는 것 역시 마찬가지. 사람이 많은 만큼 일정 규칙을 세워두지 않으면 유지가 되지 않는다.
 그런데 가정은 왜일까. 고작해야 3~4인 있는데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아닐 테고. 자녀는 부모의 소유물이라는 사상이 지금까지 내려온 것 아닐까. 부모가 자녀를 잘 키우기 위해 행사되는 친권은 실상 의무다. 그럼에도 ‘권리’로 표현하는 것 역시, 자녀는 부모의 소유물이라는 사상을 표현하는지도 모른다. 아동 학대가 끊이지 않는 이유.

이 외에도 곰곰이 곱씹어 볼만한 이야기가 많다. 읽는 내내 불편할 수는 있겠지만, 단순히 이런 문제가 있지 않나 넌지시 이야기를 건네는 정도이기에 불쾌하지는 않을 터. 불편함과 불쾌함. 비슷해 보이지만 의외로 차이가 크다. 
 당연하게 생각했던 것이 뒤집어 고민해볼 필요는 있다. 나는 달라지지 않더라도, 달라진 사람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이해할 수 있다. 받아들일 수 있다. 용납할 수 있다. 같이 사는 사회에서 더불어 사는 것만큼 중요한 건 없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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