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더 미러 - 운명을 훔친 거울이야기
말리스 밀하이저 지음, 정해영 옮김 / 다산책방 / 2010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오랜만에 너무너무 재미있는 소설을 읽었다.
'나비효과'나 '백투더퓨쳐'를 볼때와 같이 얼른얼른 그 시간대에 맞추어 머리를 굴려야하는 골치아픔을 던져주었고,
'벤자민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와 비슷한 느낌으로 시간의 흐름에 따른 인간의 일생이라는 광대한 맥을 따라가며 지켜보는 기분이었다.
살아가는 과정과 인생에 대해, 그리고 작은 선택과 변화로부터 비롯되는 차이와 삶전체의 거대한 흔들림에 대해서도..
신비하다는 어감으로는 다소 부족한 위험과 악이 서려있는 정체불명의 으스스한 골동품 거울로 인해
외할머니 브랜디랑 손녀 샤이의 영혼이 각자의 20살로 시대를 거슬러 뒤바뀌어서
외할머니가 된 샤이가 자기 엄마 레이첼를 낳아서 기르는 3대의 여자와 가족들의 이야기이다.
이런 상상의 설정에서의 주인공들이 그러하듯이 브랜디와 샤이도 자기가 누구이며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이야기하면
미친 취급을 당하며 아무도 그들을 믿어주지 않는다.
그리고 기대했던 것과는 달리 결국 원래의 삶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자신의 바뀐 육체와 시간속에서 주어진 역할을 살아간다.
1970년대의 개방적인 삶을 살던 샤이는 여성들에게 청교도적 윤리를 강요하던 1900년대로 떨어지고,
1900년대의 시대와 자연에 있던 브랜디는 혼잡하고 성적으로 개방되었으며 기술적으로도 엄청나게 진보된1978년도에서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
곧 돌아갈 수 있으리라 각자의 시대를 그리워하며 처음에는 대충 살아가려하지만
샤이는 자신이 돌아가기 위해서는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가 결혼을 해야하기에
앞으로의 미래가 예정대로 진행되도록 외할아버지를 찾아서 결혼을 하고, 그를 사랑하게 된다.
특히 샤이는 자신의 가족사와 어느정도의 역사를 알고 있기에 미래에 벌어질 일들을 알고 살아가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외할머니의 몸에 정착한 샤이는 자신이 낳게 될 쌍둥이 삼촌과 엄마 레이첼의 존재를 알고 있었고,
20살까지 자신이 의지하던 엄마를 직접 낳고 기르며 때로는 그녀에게 수시로 기대다가 냉정해지기도 하며 혼란스러워한다.
레이첼은 아무 사실도 모른채 역시 엄마에게 느끼는 거리감과 원망에 힘들어하며 자란다.
그리고 레이첼은 브랜디와 샤이의 영혼이 바뀌게 된 1978년의 시점에 도달했을 때 딸 샤이의 갑작스런 변화와 여러가지 사건들로 방황하다가 엄마 브랜디(사실 샤이)가 샤이(사실 브랜디)에게 남긴 일기를 읽고 모든 것을 알게 된다.
인간간의 관계는 어떤 것을 따라야 할까?
육체?영혼?
육체는 영혼의 운명을 좌우할 만큼 커다란 삶의 변화를 가져왔다.
영혼은 원래의 육체의 캐릭터를 바꿔버리고 수동적인 브랜디는 청교도적 질서의 시대속에서도 능동적인 샤이로 살아갈 수 있었다.
샤이는 엄마 레이첼을 키우면서 복잡한 감정을 느꼈을 것이고
레이첼도 그사실을 안 뒤에는 자신의 딸이 자신의 엄마였다는 사실에 정신을 놓고만다.
둘은 서로에게 딸이면서 엄마인 기막힌 관계가 되어버린 것이다.
어느쪽이 의지하고 어느쪽이 기대야 하는가?
사실 실제 브랜디는 레이첼을 낳은 것이 아니기에 샤이로서의 새로운 삶과 환경에 적응해서 살아가면 될 일이다.
하지만 샤이와 레이첼 그 둘은 애증의 모녀관계가 서로에게 중복되어버려서 어떻게 정리할 수가 없었다.
사실을 알아버리고 처음 레이첼이 브랜디의 무덤에 가서 여기 우리딸 샤이가 있다고 웃으며 말하는 장면은 정말 너무너무 안타까웠다.
레이첼은 엄마면서 딸이었던 관계를 알아보지 못했고,
샤이 역시 언젠가 돌아갈거라고 임시로 생각했기에 레이첼이 사실 진정 자신의 딸이었다는 것을 마음에 받아들이지 않고 키웠던 것이다.
역사학자이자 교수인 말리스 밀하이저라는 저자가 1978년도에 발표한 이 소설은
영국 도서관에서 가장 많이 도난당한 책이라는 기록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역사학자였기에 소설을 발표할 당시인 1978년도와 브랜디의 시대인 1900년대를 왔다갔다하며 현실감있게 묘사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어떤 시간대로 돌아가더라도 '현재'를 살아갈 수 밖에 없는 우리의 운명을 고스란히 보여준다는 책의 소개가 마음에 와닿는다.
결국 현실을 탓해봐야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것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