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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의 인간학 - 약함, 비열함, 선량함과 싸우는 까칠한 철학자
나카지마 요시미치 지음, 이지수 옮김, 이진우 감수 / 다산북스 / 2016년 9월
평점 :
이 책의 원제는 '착한 사람만큼 나쁜 사람은 없다.' 이다. 원제가 아주아주 탁월한데 굳이 왜 바꾸어 출판했는지 의아하다. 어쨌든. 이 저자 쎄다. 아주 쎄다. 그런데 재미있었다. 아니, 그래서 재미있었던걸지도. 책 처음부터 끝까지 착한 사람 욕을 침 튀기며 하고 있는데 뭐 대부분 맞는 말이라 절반은 속 시원했고 절반은 기분이 드러웠다. ㅋㅋ
저자는 착한 사람 욕 하기에 앞서 약자에 대한 정의를 내리고 있는데 이 첫 부분이 아주 중요하다. 저자가 주장하는 약자가 바로 저자가 앞으로 쭉 비판할 그 착한 사람을 말하기 때문인데 읽어보면 알겠지만 아마 이 신랄한 비판들 속에서 피해 갈 수 있는 사람은 나를 포함해 단 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
앞부분만 살짝 살펴보자.
저자는 장애인이나, 외국인, 성적 소수자 등 공인된 피차별자를 약자(착한사람)라고 말하지 않는다. 자신의 무능함과 무지와 나태함과 서투름과 어설픔과 인간적 매력의 결핍을 부끄러워하지 않을뿐더러 이대로도 괜찮다고 자위함은 물론이거니와 자신이 옳다고 으스대는 사람을 약자(착한사람)로 정의한다. 그들은 구체적으로 어떤 행동도 하지 않으며 자신에게 들러붙어 있는 수많은 부정적인 요소들은 유전자와 열악한 환경과, 불운 때문이라 주장하며 노예의 속성을 지니고 있어서 이길 수 없는 상대 앞에서 벌렁 드러눕는 개가 된다. 벌렁 드러눕는 개들이 높은 자리에 앉으면 자기 아랫사람에게도 그걸 요구한다.
약자(착한사람)는 가해자다. 눈앞에서 온갖 부정이 일어나도 자신만 안전하다면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눈앞에서 따돌림이 일어나고 고통에 찬 울부짖음이 들려도 이를 악물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게다가 그런 자신 또한 가해자라는 사실을 알아차리지도 못한다. 무시무시할 정도로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사회에 대한 한탄만 한다. 그리고 피차별자들에게 무난한 말을 내뱉으며 비열하게 달아난다.
어떤가. 이 정의에서 자유로울 사람이 있을까? 요약으로만 이정도인데 책 속에서는 얼마나 더 신랄했을지 상상도 말자. 잔인하게도 니체는 이러한 약자(착한사람)을 가축의 무리라 정의했다고 한다. ㅋㅋㅋ 짜증나는데 도저히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내가 두번 세번 감명 깊게 읽었던 단락이 있는데 운명애에 대한 실천의 문제 부분이다. 내용인 즉슨, 삶에서 일어나는 어떠한 사태에 대해서 원인을 전혀 모를 경우, 자신을 제외한 다른 원인이나 미지의 원인을 늘어놓으며 책임을 회피하지 말고 그 일을 내가 스스로 일으켰다고 생각하며 책임지라는 것이다. 의아하지만 실제로 이 논리는 강자의 논리이며 이 논리를 구현하는 사람이 바로 니체가 말하는' 초인'인데 기묘하게도 이 논리는 모든 사람의 죄를 스스로 짊어지고 십자가 위에서 죽은 예수와 겹친다는 이야기이다. 우리나라에서만의 문제는 아니겠지만 황당하게도 책임을 지겠다고 하면서 물러나는 사람이 많다. 물러나는 것은 책임 지는 것이 아니다. 회피하는 것이다. 과연 우리는 자신의 삶 속에서 책임지는 삶을 살고 있는가. 설령 그 책임의 문제가 내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이 부분을 읽으며 아주 많이 반성했다.
사람들은 왜 남이 선택하는 것을 선택하고, 왜 남의 행복을 자기 손에 넣으려 할까? 그리고 왜 스스로에게 묻지 않으며 살아갈까? 왜 오늘도 일을 하는지, 왜 오늘도 집에 돌아가는지, 그리고 왜 사는지? 저자는 그 답에 대해 용기가 없기 때문이라고 대답한다. 묻게 되면 자신이 무너질지도 모르기 때문이라고. 맞는 말이다. 사실 스스로에게 질문하기 시작하면 삶이 어렵고 두려워진다. 그래서 온갖 자기기만을 통해 내면의 시선이 정욕으로 향하게 주의를 돌리며 인생을 대강대강 살아가게 되지. 그게 약자(착한사람)의 인생이다. 강자로 살고싶다면 약한 것을 삶의 이유로 삼지 말자.
좀 불편했지만 오랜만에 정말 멋진 책 읽어서 기분이 좋다.
늘 내면을 살피며 약자(착한사람)의 비열함을 버릴 수 있도록 노력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