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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퀸의 대각선 1~2 세트 - 전2권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전미연 옮김 / 열린책들 / 2024년 6월
평점 :


물론 중앙을 장악하고, 말들을 최대한 빨리 포진해 공격에 나설 수 있게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게 다는 아니야. 예순네 개의 칸으로 이루어진 이 작은 세계를 자신만의 눈으로 파악하는 것이 어쩌면 더 중요할지 몰라. 이 위에서 통로들이 무수히 열리거나 닫히고, 눈에 보이지 않는 에너지들이 흐르고 있으며, 뛰어넘어 가 기습 공격을 가능하게 하는 대각선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말이야. 체스 게임은 한 편의 셰익스피어 비극을 닮았어. 첫 장면들에서는 펼치고 드러내지. 주인공이 드러나고 갈등이 싹트는 거야. 이어지는 장면들에서는 서로 다른 관점이 부딪히고 충돌해 결투가 벌어지고 대혼란이 발생해. 후반부에 이르면 드디어 진실이 밝혀지고 극적인 반전이 일어나지.
-p68
니콜은 레이캬비크에서 열린다는 세계 성인 선수권 대회와 자신이 참가할 주니어 체스 대회가 어떤 관계인지 정확히 이해하지 못한다. 그녀는 아이슬란드가 어디에 있는 나라인지조차도 알지 못한다. 하지만 주변 사람들의 얼굴 표정으로 보아 그 대회에 참가할 자격을 얻은 것이 대단한 특권임은 분명해 보인다.
무엇보다 그녀는 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좋아해 준다는 사실이 기쁘다. 니콜에게는 그것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이다.
-p87
#장편소설
#베르나르베르베르
#퀸의대각선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2권의 마지막 장에서 이렇게 말했다.
혼자면 더 빨리 가지만 함께면 더 멀리 간다.
물론 이 반대로 생각하는 것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니콜 오코너와 모니카 매킨타이어의 생각 중 어느 것이 맞는지는 독자들이 책을 읽고 판단할 일이다.....
-p283(2권)
열린 결말의 소설이다. 독자에게 결말이 어떻게 될지 상상해보는 선택권을 준 건데, 사실 이 결말이 궁금해서 2권까지 쉬지 않고 후다닥 읽었더랬다. 그래서 이 열린 결말이 내게는 좀 아쉬웠다. 체스 게임의 규칙을 정확히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이 책이 더 재미있게 다가왔을 것 같다.
세상을 체스 게임판으로 묘사한 니콜과 모니카는 서로에게 극단적인 사람이다. 집단을 좋아하고 사람들과 함께 모여 있는 것을 즐기는 니콜과 사람들이 밀집되어 있는 곳을 경멸할 만큼 싫어하는, 혼자, 홀로를 좋아하는 모니카가 세상을 마주 보며 역사에 한 획을 긋는다. 그 어느 쪽도 감히 쉽게 편을 들 수 없는 나였기에 영상으로 느껴질 만한 긴장감을 책을 통해 느꼈다.
서로 다른 성격을 가진 채 체스 게임을 배우게 된 니콜과 모니카는 주니어 체스 대회 결승전에서 만난다. 니콜의 경기 전략에 패배한 모니카는 화를 이기지 못하고 니콜의 목을 조른다. 그 후 다시 만나게 된 두 사람의 대결 결과, 모니카가 승리한다. 이를 용납하지 못했던 니콜은 군중의 심리를 이용해 경기장에 폭탄이 설치되었다는 장난전화를 한다. 좁은 문으로 모두 밀고 나가려는 사람들의 힘에 짓눌린 모니카의 엄마는 니콜의 장난전화로 목숨을 잃는다. 나는 사실 이 군중 심리를 이용했던 니콜에게 소름이 끼쳤다. 몇 년 전 우리나라에 비슷한 압사 사고가 일어났던 영향도 무시하지 못하지만, 어떻게 집단의 힘을 이렇게 사용할 수 있단 말인가. 이번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장편소설 '퀸의 대각선'은 체스판의 경기에 묘사했다기보다는 사람을 상대로 한 잔인한 실험 혹은 재생 불가능한 죽음의 게임과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체스 한 판이 끝나면 다시 그 말들이 경기를 하는 것과 이 세상은 아주 다르기 때문이다.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집단의 힘, 집단의 심리를 책에 잘 녹여낸다. 작디 작은 동물이 지구를 구해내려 하는 모습이나 적어도 과학 기술을 이용해 인간이 하는 것을 죄다 다 따라할 수 있는 동물 그리고 그 동물들의 집단이 인간 집단에 어떻게 영향력을 행사하는지 보여주는 이야기들에서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독특한 에그레고르를 느낀다. 읽으면서 궁금한 점이 들었다.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니콜과 모니카 중 누구에게 더 친밀감을 느꼈을까.
사는 내내 서로의 존재를 찾아내는 데 역력했고, 자신의 존재를 숨기는 데 전력을 다하기도 했던 니콜과 모니카는 자신만의 방법으로 대각선 틈을 활용해 전략을 펼쳤다. 그리고 죽음 앞에서 니콜은 다시 모니카에게 체스 경기를 제안한다. 목숨을 건 경기다. 은밀하게 조용히 잘 살고 있는 모니카에게 먼저 다가온 사람은 니콜이었다. 홀로를 싫어하는 니콜이니까 모니카에게 먼저 다가오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목숨을 건 체스 경기의 승자는 누가 될까? 개인적으로 나는 모니카에게 한 표 던지고 싶다. 독약을 미리 넣어 모니카가 마시게 한 니콜의 전략은 정정당당해보이진 않기 때문이다. 세상을 대상으로 펼쳤던 그 무시무시한 전략 뒤로 이런 얕은 수라니, 니콜에게 서운함이 들지만 이것 또한 그녀의 전략일테니.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무료로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