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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길 자본론 - 사람과 돈이 모이는 도시는 어떻게 디자인되는가
모종린 지음 / 다산3.0 / 2017년 11월
평점 :
골목길 구조의 다양성과 밀도로 인해 우리는 우연한 볼거리들과 마주하게 된다. 예측하지 못했던 곳에서 새로운 골목과 새로운 가게들이 열린다. 층별 입점 브랜드 안내서 한 장이면 모든 것이 한눈에 파악되는 쇼핑몰이나 백화점과 달리, 미로처럼 얽혀 있는 골목의 구석구석은 우리를 예상치 못한 즐거움의 세계로 안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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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을 큰 도화지 위에 그리라고 누군가 내게 말한다면, 나는 인생을 둘러싸는 가장자리를 수많은 골목길로 대신할테다. 어린 시절, 골목길은 놀이터였고 친구들을 불러내는 집결지였고 울고 웃었던 감정의 집합소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골목길은 도시 안에서 사라지고 커다란 상점, 쇼핑몰 주변으로 사람들이 집중적으로 몰려들기 시작했다. 사람들의 추억이 담긴 장소는 오래도록 살아있는 골목길이 아닌, 각종 브랜드로 가득한 백화점, 쇼핑몰 등지로 바뀌었고 우리네 일상은 영구적이라기보다는 휘발성이 강한 그 무언가로 변모하고 있다.
반가운 소식이 들려온 건 몇 년 전부터다. 사람들이 특정 골목길에 몰려, 골목길 상권이 번화하고 있다는 소식이 마구마구 들려오기 시작했다. 어디를 가건 만날 수 있고 접할 수 있는 브랜드가 아닌, 그 골목길만의 분위기, 골목길에서만 느낄 수 있는 맛 등을 찾는, 골목길 여행이 유행세에 오른 것이다.
걷고 싶은 거리는 대로와 신호등에 의해 발걸음의 호흡이 끊어지지 않는다. 골목과 골목이 계속 연결되는 길이 걷기 좋은 길이다. 우리가 홍대 주변을 좋아하는 이유도 골목길이 쉴 새 없이 이어지기 때문이다.
- p22
'골목길 자본론'의 저자 모종린은 걷고 싶은 거리에 대해 위와 같이 말한다. 언젠가부터 걸어야만 해서 걷는 거리가 아닌, 걷고 싶은 거리를 찾아서 걷는 문화가 난 참 좋다. 내가 살고 있는 집 주변을 천천히 걸으면서 탐색한 후 옆 동네까지 범위를 넓혀 돌아보는 걸 좋아하기에 여행을 가도 예쁜 동네, 예쁜 골목길이 나오면 그렇게 기분 좋을 수가 없다.
골목길을 찬찬히 둘러보다보면 일상의 삭막함, 무관심함, 복잡함에서 조금은 멀어지는 여유를 만나게 된다. 이러한 여유를 이미 맛본 사람들은 그래서 골목길을 더 찾아다니는지도 모른다. 빡빡한 시간 속에 촉촉한 여유를 심어놓기 위해.
헌데 골목길들이 각광을 받기 시작하면서 사람들이 몰려들자 상권이 금새 형성된다. 형성되는 것까진 좋은데 자본과 관련된 욕심, 이해관계가 얽혀 골목길이 오래가기보단 반짝, 붐을 일으키다 주저앉기도 하고 골목길에 오래도록 거주하며 살아가던 사람들이 자본에 밀려 터를 잃게 되는 일도 빈번하게 발생한다.
도시 정책이 어려운 이유는 성장하는 도시에서 젠트리피케이션과 듀플리케이션, 모두를 저지하기 어렵다는 데 있다. 골목길 구조를 유지하는 동네와 대규모 아파트 단지로 재개발되는 동네, 즉 젠트리피케이션과 듀플리케이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나의 선택은 물론 제이콥스 모델이다. 도시의 다양성과 창의성을 치명적으로 위협하는 듀플리케이션을 먼저 막아내야 한다.
- p118
건강한 골목길을 위해서는 자본보다는 도시 그리고 골목길의 이야기에 집중해야 한다. 길이 내내 품고 온 과거를 존중하면서 미래를 계획해야 애정하는 골목길들을 잃지 않을 수 있다.
뚜렷한 가치와 영혼이 담긴 한국의 길과 도시는 어디인가. 한국의 수많은 도시가 이야기 산업을 키우고자 하지만, 에든버러 같이 역사와 정체성을 보전한 도시만이 그것을 이룩해나갈 수 있는 게 아닐까. 만약 그렇다면 우리는 지금부터라도 지역 콘텐츠 산업을 육성하기에 앞서 지역의 역사와 정체성이 경관과 문화를 통해 드러나는 도시를 육성해야 한다. 역사 속에 사는 것이야말로 과거가 현재로 이어져 미래를 창조할 풍부한 영감을 얻는 이야기 산업의 원천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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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포스팅은 다산 북클럽 나나흰 7기로 활동하면서 해당 도서를 무상으로 지원받아 직접 읽은 후 작성한 서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