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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의 셔츠
얀 마텔 지음, 강주헌 옮김 / 작가정신 / 2013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 20세기의 셔츠 >
유명한 맨부커상을 받은 <파이 이야기>의 작가 얀 마텔의 책.
홀로코스트라는 무거운 주제를 가졌지만 '우화'라기에
무거움보다는 가벼운 책이겠거니 생각했다. 그래서 쉽게 책장을 열다가
작가의 서문을 보고 그의 이야기에 놀라서 책을 덮어버렸다.
홀로코스트가 이전에도,지금도,앞으로도 여전할 것이라는 강한 메세지와
세상 어디에도 존재하는 '셔츠'로 대변되는 홀로코스트,
홀로코스트에 대한 정곡을 찔렀기에.
며칠을 책을 열다덮다를 반복하다가 읽게 되었는데,
마음은 여전히 작가의 강한 메세지에 무겁고 두려움이 가득했다.
작가는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 알베르 카뮈의 <페스트>, 피카소의 <게르니카> 같은
"역사가 예술로 표현되지 않는다면 인류의 기억에서 사라질지 모른다"는
의무를 담은 안내자 같은 소설을 쓰겠다고 했었다.
그러나 의외로 책 <20세기의 셔츠>는 이런 마음을 달래기 위함인지
시작이 생각만큼 충격적이거나 과격하거나 또 적나라하지는 않았다.
'우화'라는 껍데기가 작가의 의도를 많이 순화시켜줬음이 다행으로 여겨질 정도.
(그러나 사탕발림처럼 시작만 그러하다)
이 책의 주인공 헨리는 성공한 작가였으나 작가적 사명감으로 '홀로코스트'를 주제로 쓴 원고가
혹평을 받자 의기소침해진 상태에서, 캐나다로 이주한 후 '원고'가 담긴 소포를 받는다.
그 소포에는 플로베르의 <호스피네이터 성 쥘리앤의 전설>과 희곡 한편이 담겨 있다.
이 소포 속의 희곡에 관심을 가진 헨리는 소포를 보낸 박제사 헨리를 만나
(자신이 헨리임을 숨긴다)
박제사의 희곡 이야기를 들어준다.
이 희곡 속의 버질(원숭이)와 베아트리스(당나귀)는 배(과일))에 대한 개념을 설명하기 위한,
개념과 설명을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생겨나는 또다른 개념과 또다른 설명에 대한 인식의
황당한 대화를 계속 하다가, 그들만의 소통 언어 "하나의긴단어"를 만들어내며
급기야 고통과 죽음을 맞이하는 장면에 이르기까지(홀로코스트를 대변한다),
소설가 헨리의 이해를 끌어내지 못한 채 희곡의 끝을 맺는다.
박제사 헨리조차 "버질과 베아트리스는 변하지 않을 것입니다."라는 말로
그들의 당위성을 못박았다.
소설가 헨리도 희곡을 이해하지 못했듯이, 이 책은 진짜 배배꼬인 이야기이다.
현실을 돌아보지 못한 이들은 이야기 자체를 받아들일 수 없게 꼬아버렸나 싶을 정도로
작가는 독자와의 소통을 자신의 언어로 쓴 것처럼 느껴진다.
26철자(영어)로 만들어진 우화이지만 우화스럽지 않은 소설.
버질의 잘린 꼬리를 직접 잘랐던 광기어렸던 소년이 박제사 헨리였던 반전에 놀라움 뿐이다.
솔직히 우화라고 생각되지 않는 책이다. 단지 동물들이 등장했다고 우화는 아니듯이
이 책처럼 작가의 의도를 파악하지 못해 헤매었던 소설이 또 있었나 싶어진다.
책을 보다가 생각하고, 허무하고, 그들의 대화를 이해하지 못하고.
절대 추천하지 못할 책이다. 그럼에도 이 책의 진가를 꼭 알고 싶어 끝까지 읽었던 책.
그럼에도 버질과 베아트리스의 대화는 머릿 속을 휘젓고도 남음이 있다.
비겁하게도 구스타프(시체)로 비견되는 인간의 고약한 악취를 치우는 일보다
의미를 만들어 가는 .. 이해와 삶. 그것에 더 집중하고 싶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