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독 >
요즘은 시인이나 소설가들의 기행 에세이가 넘쳐나는 것 같다.
유명작가 반열에 오른 분들의 책도 꽤 많지만
그 중에서도 '영혼'이 담긴 에세이를 마주할 때 그 설레임이란.
내가 특히나 애정했던 故박완서님의 에세이가 몇 권 있는데,
솔직히 박완서 작가님의 소설보다 에세이가 더 좋기만 하다.
일전에 구리의 '노란집'을 갔었는데 거기 왔던 분에게 <모독>의 이야기를 들었다.
1997년 발간된 티베트.네팔 기행에세이가 있는데, 절판이라는!!!
절판이라더니 즐겨가는 도서관에 그 책이 없고
중고서적도 별로 올라오지 않아 궁금해하던 차에
재간된 이 책 <모독>을 보게 되니 정말 감격!! 그 자체다.
저자 박완서는 개성 출신의 6.25를 겪어낸 우리 부모님 세대.
70년대 <나목> 당선으로 데뷰, 나이 마흔에 문단 데뷰한 이유가
글을 쓸만큼 인생의 깊이가 이제 묵어졌다는 취지의
인터뷰가 기억난다. 2011년 80세 작고.
더 이상 박완서님의 글을 볼 수 없다니 슬픔.. 깊은 애도를.
시인이자 사진 작가인 민병일 님.
박완서, 이경자, 김영현에 티베트.네팔의 여행을 주선해
다시없을 주옥같은 <모독> 쓰게 강제한(?) 분.
여행의 댓가로 기행을 쓰기로 하셨다니,
덕분에 내가 <모독>을 읽을 수 있는 기쁨을 주신거다.
때묻지 않은 순결의 땅이였을 티베트과 네팔,
내가 여행했더라도 표현을 찾지못했을 그 곳을 간접 경험하게 한 책,
박완서님의 책이라는 것만으로도 심쿵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지 못하고
손끝으로 한장한장 넘기기 아쉬워하며 읽은 책,
민병일 시인(?)의 그 때 사진 그대로 담은 그 느낌조차도 너무 좋아서
며칠을 품고 다니며 읽고 또 읽고 했다.
"오체투지로 설산과 자갈밭을 고행하는 사람들의 그 만행의 법열을
이방인이 해독한다는 것은 모독"
그 순수의 곳에 관광의 자체가 '모독'이였다고 고백하는 이 책,
"태초"의 땅과 그 땅이 이고 있는 하늘을 보았기에
가장 진솔한 성찰을 보여줄 수 있었던게 아닐까.
같은 종교지만 다른 불교,
하늘 아래 땅이지만 더 자연적인 문화와 삶,
60중반의 노구로 고된 여행이였기에 가장 힘든 여행이였다는
작가의 솔직한 고백은 낯설은 그 곳에 대한
가장 탁월하고도 순도 높은 찬사가 아닐 수 없다.
여행하며 늘상 고장나는 버스와 숨쉬기 힘든 고산병,
식물한계선 5천미터를 넘어선 곳에서도 싹을 틔운 작은 꽃,
벌목이 아닌 벌거벗은 산을 여행하고
아득한 심연을 경험하게 하는 푸름한 귀기를 띈 호수들.
티베트와 네팔을 대표하는 라싸, 초모랑마와 치트완, 포카라의 여행보다
척박하고 엄혹한 자연과 자생의 자취를 남긴 생명에 대한
글이 더 마음을 파고 든다.
우리가 오래 전에 잃은 자연과의 교감 속에서 살아가는
티베트.네팔의 삶은 미개하다는 이야기가 아니였다.
외려 그런 삶을 버린 우리에 대한 뼈깊은 뉘우침이 아니였을까.
이제는 찾아보기 힘든 '싱아'에 대한 이야기도 잠깐 나오는데
아쉽게도 그 싱싱한 싱아에 대한 사진이 없다.
도심에서 자란 나는 아직도 싱아를 본 적도 먹어본 적도 없고
다만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를 통해 알고 있을 뿐.
티베트가 중국의 억압으로 중국화되는 과정을 겪고
오지에 대한 여행이 유행이 되면서 티베트.네팔에 대한 여행 또한
거만한 장삿속으로 변질되어 버렸지만
여전히 "걷는 사람이 난 제일 좋다"는 작가의 그 말처럼
하늘 아래 다시없을 자아성찰의 그 곳,
그 곳을 겸허한 마음으로 걷고 싶다는 버킷리스트가 하나 생겼다.
민병일 시인의 추천사 역시 공감하게 되는 <모독>이다.
"어느 날 생에 모독이 찾아올 때, 하여 가슴에 묵직한 바위가
놓인 것처럼 답답할 때, 삶의 속도가 생의 시간을 추월할 때,
친구여 <모독>을 펼쳐보시길!"
감히 최고의 책이였다고 강권하고 싶은 <모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