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류
이립 지음 / 새움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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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혈류 >

 

외국 작가들의 상상력 넘치는 유전공학에 관한 SF스릴러를 읽을 때면

우리의 정서에 맞는 뭔가 오밀조밀한 우리나라 작가의 작품이 있었으면 했는데

표지에 끌려 읽게 된 이 책<혈류>는 이런 생각을 완벽하게 만족시켰고

섬찟함이 온몸으로 소름돋 듯 전해져 왔다.

 

장기이식으로 인한 기증자의 기억과 오버랩되는 스릴러류들이 많았어도

뭔가 현실과 동떨어진 이질적인 기술과 특수 상황들로

단지 책과 영화에서나 머무는 이야기에 한정된 것이였지만,

이 책 속의 자가혈액(혈액 속 기억 단백질인자)으로 가능해진 '복제'가

장기이식보다 오히려 현실감 깊게 다가왔다.

(장기이식하려면 얼마나 많은 절차와 또 불법에 관한 이야기가 있었던가..)

 

저자 이립은 마취과 전문의로 군복무 중 이 소설을 처음 썼는데

"피를 통한 지식과 정보는 물론 감정까지도 전달하는 신기술"에 대한 발상으로

인간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것에 대한 고민을 하고 싶었다고.

 

비범해보이는 이 책은 정말이지 첫장을 넘김과 동시에 끝장을 보았다.

이건 반드시 영화화되어야 하는 이야기라는 생각과 함께.

대통령이 탑승한 열차의 테러에서 살아남은 주인공 김종훈의 복제 김종훈.

추악한 스캔들(비자금, 인격 외)을 감추고 있던 대통령의 기억을 가진 그와

인간 복제라는 욕망을 둘러싼 거대한 중국 자본의 회사와

기억조차 성형으로 변모시키는 기술과 모략으로 이어지는 사건들.

 

복제된 이들이 서로를 맞딱뜨리는 상황은 정말이지 소름돋는다.

어느 영화에선가 복제를 실패한 자신의 복제들을 보여줬던 기억이 있지만

이 책은 미래의 어느 시점이 아닌 '지금'이라는 현재가

정말 빠른 시간 내에 '인간의 정체성'에 대한 전인류적 논의가 있어야 한다는

황망한 생각을 품게 한다.

 

신의 영역을 넘나드는 기술에 대한 이 책을 읽고 있으니,

삶에 대한 회의가 좀 들긴 했다.

내 자신이 잘 살고 있지만, 바꾸고 싶다면 기억도 성형이 되고

병이 들거나 혹은 원치 않은 임신(낙태가 싫다고 복제를 하겠는가?)을 했다고

육체를 교체하는 복제가 가능하다는 사실보다

이런 사실 앞에 무너져가는 인간, 인간은 정말 무엇으로 규정될까 하는 의문.

인간의 본질은 어디에 있는가 하는 철학적 자문을 구하게 되면서

재미있기만 했던 이 책이 한없이 무거워졌다.

 

시나리오 한 편을 읽어낸 기분이 드는 이 책은

빠른 전개와 생생한 현실감 넘치는 스릴러였고 재미도 있지만

킬링타임으로만 덮어두기엔 아까울 듯하다.

무엇보다 작가의 차기작 속 모토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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