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의 방
알렉스 존슨 지음, 제임스 오시스 그림, 이현주 옮김 / 부키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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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9년 발표한 책 자기만의 방에서 버지니아 울프는 말했다. 여성이 소설을 쓰려면 돈과 자기만의 방이 있어야 한다고. 충분한 교육을 받기도, 재정적 독립의 기회를 얻기도 어려웠던 당시 여성들에게 독립적인 집필실이 얼마나 중요한지 강조한 멋진 말이지만. 이제는 그 대상을 조금 넓혀 봐야할 것 같다. 모든 작가에게는 자기만의 방이 있어야 한다고 말이다.

 

 

모든 작가에겐 반짝이는 영감을 작품에 녹여낼 그들만의 공간과 루틴이 있다. 알렉스 존슨의 책 작가의 방은 가장 가까운 곳에서 그들의 창조적 순간을 지켜본 작가의 공간에 대해 이야기한다.

 

 

창문 너머로 언덕과 산이 보이는 버지니아 울프의 오두막 집필실부터. 문이 삐걱대는 소리에도 쓰던 글을 황급히 숨긴 제인 오스틴의 비밀스러운 공간과 짙은 커피향을 풍기는 발자크의 방, 고요함과 소음이 공존한 마크 트웨인의 당구대가 있는 작업실까지. 제임스 오시스의 매력적인 그림과 함께 작가들의 방을 구경하다 보면, 나도 모르는 새에 미래의 작업실을 상상하고 있는 스스로를 발견하게 된다.

 

 

작가의 공간을 방문하는 것은 곧 작가의 삶 속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책장에 꽂힌 책들을 살펴보고, 마치 방금 전까지 앉아서 글을 썼던 듯 작가의 숨결이 느껴지는 책상에 앉아 봅니다. 친구의 집을 둘러보는 것도 흥미진진한데, 제임스 본드가 탄생한 방에 있는 의자에 앉는다면 얼마나 신날까요? 작가의 공간과 그 안에 있는 사물은 비범함을 목격한 증인입니다. 그의 서재를 거닐며 어질러진 책상을 구경하고 삐걱거리는 문을 지나는 사이, 작가가 우리 눈앞에서 살아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서문에서]

 

 

작가의 방은 모두 다섯 개의 장으로 구성되었다. 오랜 시간 사랑 받고 있는 작가 50인과 첫 번째 방부터 다섯 번째 방까지. 특징을 중심으로 나눈 지극히 사적인 그들의 창작 공간을 담은 책은, 작가 지망생과 독립적인 작업 공간을 꿈꾸는 사람에겐 더 큰 설렘으로 다가올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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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자크는 글을 쓸 때 빨간 슬리퍼를 신고, 흰색 면 가운을 입고, 금으로 만든 베네치아 체인을 허리에 둘렀는데요. 이 체인에는 종이칼, 가위, 금색 펜나이프 펜던트가 달려 있었어요. 그리고 눈의 피로를 덜기 위해 약간 푸른빛이 도는 종이에 큰 까마귀 깃털로 만든 펜으로 글을 썼죠. [p.42]

 

 

자정에 일어나 여덟 시간 동안 글을 쓰고 15분 동안 점심을 먹은 다음, 다시 다섯 시간 동안 일을 한 뒤 저녁을 먹고 잠자리에 들었다는 발자크. 그는 매일 50잔의 커피를 마시며 커피는 내가 살아가는 데 큰 힘이 된다라고 이야기할 정도로 커피를 좋아했다고 하는데. 쉴 틈 없이 빡빡한 발자크의 하루를 보니, 커피는 그에게 선택이 아니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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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루스트는 스웨터를 입고 뜨거운 물주머니를 옆에 낀 채 침대에 기대 앉아 무릎을 책상 삼아 글을 썼습니다. 매일 크루아상과 뜨거운 커피를 준비해 주던 가정부 셀레스트 알바레는 아무리 짧은 메모라도 그가 일어서서 쓰는 모습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고 했어요. 프루스트는 왼쪽 여백에 세로로 빨간 줄이 그어진 라인노트에 글을 썼는데요. 아무래도 침대에서 글을 쓰는 자세가 완전히 편하지는 않았기 때문에 손목에 쥐가 나기도 했죠. [p.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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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라는 인구가 300명 정도인 작은 섬이었습니다. 오웰은 이 섬 북쪽에 있는 반힐이라는 농가에 거주하며 글을 썼습니다. 우편물은 일주일에 두세 번 배달됐고, 가장 가까운 이웃이 약 1.5킬로미터 밖에 살았으며, 30킬로미터 안에는 전화기도 없었죠. 바깥 세상과 이어 주는 연결 고리라고는 배터리로 켜지는 라디오가 전부였습니다. [p.55]

 

 

작가는 집에서 일하며, 그래서 끊임없이 방해를 받을 수밖에 없다라고 이야기한 조지 오웰은, 집필에 집중하기 위해 스코틀랜드의 외진 섬 주라에 머물렀다고 전해진다. 인구 300명의 고요한 섬 주라는 글을 쓰기에 최적의 환경이었지만. 전기와 온수를 사용할 수 없고, 아주 기본적인 이동 수단밖에 없었던 탓에 사람들이 선뜻 찾아오긴 어려운 곳이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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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는 작가의 집필 공간보다 그곳에서 보이는 풍경이 더 중요하기도 하죠. 토머스 하디의 경우처럼요. 하디만큼 주변 환경에 큰 영향을 받은 작가도 드물 거예요. 그는 모든 작품에 자신의 경험을 투영한 가상의 전원 마을 웨식스를 등장시켰어요. 이 웨식스의 자연에 대한 사랑을 일생 동안 소설과 시에 담은 거예요. 작품을 쓸 때 참고했던 여러 영감 노트들에는 화가의 스케치처럼 날씨, 노을, 자연의 소리에 관한 하디의 기록이 가득했답니다. [p.177]

 

 

살며시 방으로 스며드는 포근한 볕과 바람, 창밖의 풍경을 중요하게 생각해서일까. 왠지 더 마음 깊숙이 와닿는 구절이었는데. 아름다운 자연과 마주하고 있는 작가들의 방을 보며, 내가 꿈꾸는 나의 작업실을 머릿속에 그려 보는 것도 재미있는 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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린드그렌을 사랑하는 독자라면 무엇보다 서재가 궁금할 텐데요. 그의 서재에 들어서면, 책장 가득 꽂힌 책들과 벽을 메운 그림들이 손님을 반겨 줍니다. 소박한 책상 앞에서는 창문 너머로 그의 작품에도 여러 번 등장했던 바사공원의 풍경을 감상할 수 있고요. 린드그렌이 살던 당시와 바뀐 것이 거의 없기 때문에 엄숙한 박물관이라는 느낌은 전혀 들지 않는답니다. 아무도 없을 때 그가 슬그머니 돌아와 글을 쓸 것만 같아요. [p.2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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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치크래프트, 전환의 기술
일레인 폭스 지음, 함현주 옮김 / 김영사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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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는 모두 환경의 변화에 적응해 나가야 한다. 단순히 문제를 해결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강점과 장점을 제대로 인식하고, 어떻게 조절해서 무엇을 주도적으로 사용할지 분명하게 이해해야 한다. 이제 우리 생각에 대한 환상적인 사용 설명서가 나왔다. 이론적으로 탄탄하면서도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설명서다. 성장하고픈 소망이 있는 분 누구에게나 일독을 권한다. [김경일(인지심리학자) 추천사에서]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 확실한 건 모든 게 불확실하다는 사실뿐이다. 우리의 삶에는 언제나 다른가능성이 존재하고, 새로운 길은 종종 우리를 괴롭히는 장애물과 고통 사이에서 열리곤 한다. 눈 깜짝할 사이에 변하는 세상. 우리에게 필요한 건 변화의 희생양이 되지 않도록 능동적 인간으로서, 불확실성을 받아들이고 변화에 적응할 수 있는 능력이다.

 

 

오랜 시간 심리학과 신경과학을 연구해 온 일레인 폭스 역시 세상의 불확실성에 익숙해지는 것을 성공의 필수 조건으로 꼽았는데. 생각과 감정, 행동을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바꾸는 사고방식을 저자는 전환 기술 (스위치크래프트)’이라고 정의한다.

 

 

일레인 폭스의 스위치크래프트, 전환의 기술, 예측하기 어려운 복잡한 세상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현실적인 수단으로 전환 기술을 소개하고, 저자가 수십 년의 연구를 통해 얻은 깨달음을 독자에게 전한다.

 

 

변화에 필요한

유연성과 느슨함 안에는

자유와 행복이 존재한다

-고타마 싯다르타-

 

 

스위치크래프트, 전환의 기술은 전체 5부로 구성되었다. 도입부인 1(왜 스위치크래프트인가?)에서는 변화에 따라오는 불확실성과 걱정을 관리할 방법으로써 전환 기술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살펴본다. 이어지는 2부에서 5부까지는 전환 기술의 4가지 핵심 요소를 하나씩 소개하는데. 정서적 기민성, 자기 인식, 감정 인식, 상황 인식. 상호 작용을 하는 각각의 요소를 자세히 파헤치며 지금까지의 연구들과 그 결과, 전환 기술을 기를 수 있는 방법을 등을 담은 이 부분은 독자에게 가장 유익한, 책의 핵심이 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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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역경과 변화에 적응하는 방식에서 드러나는 기민성과 유연성이 바로 회복력의 비결이다. 우리 조상들은 지구상의 다른 생명체와 더불어 끊임없이 변화하는 세상에 대처해왔다. 나이가 들수록 우리는 보통 이런 유연성을 잃고 기존 방식을 고집하지만, 우리 안에 내재된 기민성은 위기 시에, 혹은 우리가 새로운 방식을 받아들이려고 노력할 때 다시 발현된다. [p.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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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중 효과가 좋았던 조언의 핵심은 그들의 생활에 리추얼과 체계를 도입하라는 것이었다. 한 시간 일찍 일어나 아침 식사 전에 산책 혹은 조깅을 하거나 요가 수련을 해도 좋다. 매주 시간을 내서 친구와 전화 통화를 할 수도 있다. 매일 시간을 정해 휴대전화를 끄고 독서나 음악 감상을 하는 것도 좋다. [p.53]

 

 

리추얼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꾸준히 높아지고 있는데. 매일 아침 10분 명상하기, 물 한 잔을 마시면서 편안한 음악 듣기 같은 작은 리추얼이 우리 삶에 미치는 영향은 생각보다 크다고 한다. 우리 뇌는 일종의 예측 장치인데 이런 리추얼은, 일상의 루틴을 만들어 뇌가 안정적으로 예측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불안감과 경계심을 줄이고, 편안함과 여유 속에 하루를 보내기 위해 나만의 리추얼을 만들어 보는 것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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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잘 사용하는 한 가지 방법은 당신이 편안하게 느끼는 상태를 최대한 유지하는 것이다. 일에 압도되지 않으면서도 의욕을 가지고 최대한 능력을 발휘하기에 적당한 상태를 찾아라. 인생 최고의 순간은 몸과 마음이 최대한 (하지만 한계를 넘어서지는 않는 정도로) 능력을 발휘할 수 있을 때 온다. [p.1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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춥다고 느껴지면 당신은 따뜻한 국물을 먹을 것이다. 피곤하다고 느껴지면 하던 일을 멈추고 휴식을 취할 것이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감정 조절 방법도 계속해서 상황에 맞게 적용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상황에 맞게 감정을 조절하려면 기민성을 확보하는 동시에 진실성도 가져야 한다. 우리 자신에게 정직해야 한다는 뜻이다. [p.320]

 

 

일레인 폭스는 스스로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고, 감정을 조절하는 능력과 직감력을 키우기 위한 방법으로 일기 쓰기를 제안한다. 감정을 담은 글쓰기도 우리가 기분을 정확하게 느끼고 받아들이로록 하는 데 효과적인데. 일기와 감정 표현의 글쓰기를 더한 감정 일기를 써 보는 것도 꽤 좋은 방법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이 계획대로 진행될 때 마음이 편안한 파워 J형 인간이라, ‘변화에 적응하는 기술이라는 스위치크래프트 자체도 굉장히 매력적으로 다가왔는데. 한 장 한 장 묻어나는 저자의 세심함에 더 재미있게 읽어 나간 스위치크래프트, 전환의 기술이었다.

 

 

책 곳곳에 담긴 테스트로 독자는 자신의 성향이나 능력을 살펴보고 나에게 맞는 적절한 훈련법을 고민할 수 있다. 각 장의 끝부분에는 요약을 담아 다시 읽을 때는 중요한 부분만 빠르게 확인할 수 있는 친절한 구성 역시 마음에 들었다.

 

 

빠른 속도로 변하는 세상에 스트레스를 받아 온 사람, 외부의 상황에 휩쓸리지 않으면서 불확실성을 받아들이고 변화에 적응하는 능력을 갖추고 싶은 사람이라면. 스위치크래프트, 전환의 기술이 도움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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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소한의 이웃 - 허지웅 산문집
허지웅 지음 / 김영사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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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타인에게 바라는 이웃의 모습으로 그들에게 먼저 다가갈 수 있을까요. 이웃의 등급을 나누고 자격을 따질 시간에 서로 돕는 일을 시작할 수 있을까요. 더불어 살아간다는 일의 고단함을 체념이 아닌 용기와 지혜로 끌어안을 수 있을까요. 이웃을 향한 분노와 불신을 거두고 나 또한 최소한의 이웃이 될 수 있는 길을 모색하기 위해 책을 펴냅니다.

[‘작가의 말에서]

 

 

코로나19의 살풍경이 시작될 즈음부터 거리두기가 중단될 때까지. 허지웅 작가의 산문집 최소한의 이웃은 우리의 삶과 타인의 삶이 얼마나 맞닿아 있는지 절실히 느끼면서도 마음 한구석에는 이웃을 향한 원망과 분노가 자라났던 시간, 그가 보고 듣고 읽으며 마주한 세상을 담았다.

 

 

우리는 어떻게

서로에게 좋은 사람이 되어

망하지 않고 살 수 있을까

 

 

이웃을 향한 불신과 분노를 거두고 나 역시 누군가의 최소한의 이웃이 될 수 있는 길을 찾고 싶었다는 허지웅 작가. 그는 타인을 염려하고 배려하는 마음, 이미 벌어진 일에 속박되지 않고 감당할 줄 아는 담대함, 평정심을 유지하려는 노력이 있다면. 분노는 잦아들고 분란은 분쟁으로 악화되지 않을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힘들었던 시간을 보내고, 여전히 아픔과 함께 있지만. 이제는 새로운 길을 향해 나아가야 하는 우리. 최소한의 염치를 가지고 인간답게 살자는 허지웅 작가의 목소리를 담은 최소한의 이웃을 통해 함께 사는 방법을 모색하고, 과거와 현재의 아픔을 마주할 힘과 용기를 느껴 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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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언가를 되돌리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한 번 깨진 그릇은 잘 주워 모아 조심스레 붙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해보았자 아주 작은 충격에도 전에 깨졌던 모양 그대로 깨지기 마련입니다.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그걸 알면서도 다시 붙이고 싶어 하는 마음이란 애처롭지만 동시에 강력합니다. 세상에 무언가를 되돌리고 싶어 하는 마음만큼 부질없고 애틋한 것이 있을까요. 소용없을 걸 알면서도 흩어진 조각들을 애써 주워 모으고 있는 모든 마음들을 응원합니다. [p.38]

 

 

요즘 초등학교에는 친구를 엘사라고 부르는 아이들이 있다고 한다. 임대 주택(LH)에 사는 아이를 부르는 멸칭이라고 하는데. 책을 통해 처음 만난 끔찍한 단어에, 몇 해 전 뉴스에서 휴거 (휴먼시아 거지)’라는 말을 처음 접했을 때의 씁쓸함이 다시 떠올랐다. 친구에게 상처가 될 거라는 걸 뻔히 알면서 가시 돋친 말을 내뱉는 아이들도 나쁘지만, 더 큰 잘못은 아이들이 모든 가치를 돈으로 환산하도록 가르친 부모와 그런 세상을 당연하게 여기며 살아가는 어른들에게 있지 않을까. 함께 사는 세상을 위해, 우리가 회복해야 할 공동체의 가치가 적지 않음을 생각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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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모두 잘못을 저지릅니다. 나라는 사람의 본질은 내가 저지른 잘못으로 정해지지 않습니다. 그것을 수습할 방법을 결정하는 순간에 정해집니다. 벌어진 일을 사과하지 않고 배우지 않고 교훈을 얻으려 하지도 않으며 끝내 거짓으로 무마하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자기 자신을 위해 결코 좋은 선택이 아닙니다. 그런 태도는 아주 잠시 도망칠 구석을 낳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거짓말을 지키기 위해 다른 거짓말을 자꾸 덧붙여야 합니다. 결국 피해의식과 열등감으로 얼룩진 괴물이 되고 맙니다. 전쟁을 일으킨 가해자가 피해자를 자처하는 데 부끄러움을 느끼지 못하는 지금의 일본처럼 말입니다. [p.55]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제2차세계대전과 파시즘도 다시 조명받고 있다. 독일과 이탈리아 그리고 일본. 한때 같은 곳에 서 있었지만 지금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걸어나가고 있는 이들의 모습에서 우리는 무엇을 배워야 할까. 허지웅 작가는 우리가 저지른 잘못이 아니라, 그 잘못에 대처하는 우리의 방법이 나라는 사람의 본질을 정한다고 말한다. 순간의 부끄러움을 피하기 위해 라는 인간의 본질을 잃는 선택을 하지 않도록 경계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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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대 즈음에는 그런 생각을 자주 했습니다. 지금의 나라면 과거에 바보같이 그렇게 하지 않았을 텐데. 40대 중반이 되니 이제는 이런 생각을 더 자주 하게 됩니다. 이전의 나라면 지금 그렇게 바보같이 하지 않을 텐데. 30대에는 과거의 나를 바보같이 여기는 일이 많았고 40대에는 과거의 나에게 패배하는 일이 갈수록 잦아집니다. 50대가 되고 60대가 되면 또 어떨까요. 30대의 나와 40대의 나 모두를 감싸 안아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좋겠습니다. [p.255]

 

 

지난해 4, 평택항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스물세 살의 이선호 씨가 컨테이너에 깔려 사망했다. 사고 이후 원청 업체 측에서는 이선호 씨가 안전모를 쓰고 있지 않았음을 지적했다고 한다. 규정대로 그가 안전모를 쓰고 일을 했다면, 3백 킬로그램의 컨테이너로부터 목숨을 지킬 수 있었을까.

 

매년 되풀이되는 산업재해와 그때마다 들려 오는 말도 안 되는 대응 그리고 허울뿐인 해결책. 최소한의 이웃이 되어 더불어 사는 따스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 이제는 가 아닌 우리의 마음을 지켜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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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 보면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집니다. 이해할 수 없는 일은 우리를 고통스럽게 합니다. 이해할 수 없는 일을 이해할 수 없는 상태 그대로 내버려둘 수 있는 태도야말로 어쩌면 삶을 살아나가는 데 가장 중요한 재능 가운데 하나일지 모르겠다, 그런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p.2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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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에게도 말하지 마
할런 코벤 지음, 최필원 옮김 / 비채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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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 + D.B. 데이비드 벡은 아내 엘리자베스와 함께 두 사람의 이니셜이 새겨진 나무 앞에 섰다. 매년 첫 키스 기념일, 이곳을 찾아 둘의 이니셜이 담긴 하트 아래 하나씩 새겨놓은 줄은 이제 열세 개가 되었다. 까만 하늘에 창백한 달만이 등대처럼 빛을 발하고, 귀뚜라미 소리조차 들리지 않던 그날. 아내 엘리자베스는 벡의 눈앞에서 납치된다. 그리고 닷새 뒤, 그녀는 인근 도로에서 시신으로 발견되는데.

 

 

엘리자베스를 잃고 8. 뉴욕의 빈민가에서 환자를 돌보는 일에만 몰두해온 소아과 의사 벡은 어느날 낯선 주소의 발송자로부터 수상한 이메일을 받는다.

 

 

E.P. +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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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기념일, 키스 타임에 링크를 클릭할 것이라는 메시지가 적힌 소름 돋는 제목의 메일에는, 어느 도시 거리의 실시간 CCTV 영상이 담겨 있었는데. 밀물과 썰물처럼 움직이는 보행자 무리에서 벡은 죽은 줄 알았던 아내와 마주한다. 충격으로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벡을 향해 입 모양으로 미안해라고 말하고 사라지는 엘리자베스. 이어서 도착한 이메일에는 짧은 두 문장만이 쓰여 있다.

 

 

그들이 보고 있어. 아무에게도 말하지 마.”

 

 

벡과 엘리자베스. 오직 두 사람만이 아는 암호를 담은 메시지가 연이어 도착하는 가운데 엘리자베스가 살해당한 샤르메인 호수에서는 정체불명의 백골 사체 두 구와 함께 벡의 혈흔이 남은 둔기가 발견되고. 사건의 용의자로 지목된 벡은 FBI에게 쫓기면서도 엘리자베스의 흔적을 추적하는데‧‧‧‧‧‧.

 

 

2001Tell No One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다 절판된 이후, 독자들의 끝없는 복간 요청에 힘입어 원작에 충실한 제목으로 재출간된 아무에게도 말하지 마.

 

 

평온한 일상에 생긴 균열이 만든 스릴, 뛰어난 스토리텔링 능력이 빚어내는 속도감, 디테일 하나하나가 사건의 단서가 되는 치밀한 구성과 아찔한 반전. 할런 코벤 작법의 특징이 고스란히 녹아 있는 장편소설 아무에게도 말하지 마, 그를 모던 스릴러의 거장으로 만든 대표작으로 평가받는다.

 

 

출간된 지 20년이 넘었지만, 독자를 빨아들이는 전개와 서서히 밝혀지는 배후가 자아내는 긴장감이 돋보였던 페이지터너. 할런 코벤의 아무에게도 말하지 마는 끝까지 긴장을 놓을 수 없는 흥미진진한 소설을 찾는 사람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이었다. 단 한 번의 시선의 북한 출신 살인병기 에릭 우, 홀드타이트용서할 수 없는의 능력 있는 변호사 헤스터 크림스타인 등. 책은 이전 작품에 등장하는 캐릭터들의 이야기도 함께 담았는데, 할런 코벤의 팬이라면 그의 애정이 담긴 스탠드얼론 아무에게도 말하지 마가 한층 더 매력적인 작품으로 와닿을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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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자베스!”

오랫동안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달은 여전히 구름에 가려져 있었다. 어쩌면 오두막으로 들어갔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어쩌면 깜빡 잊은 물건을 찾으러 차로 돌아갔을지도 모른다고. 나는 엘리자베스를 다시 불러보려고 입을 열었다.

바로 그때 그녀의 비명이 들려왔다.

나는 머리를 처박고 다시 팔과 다리가 빠질 듯이 전력을 다해 헤엄쳤다. 하지만 부두와의 거리는 좀처럼 좁혀지지 않았다. 헤엄을 치면서 틈틈이 부두 쪽을 살펴봤지만, 보이는 거라곤 오직 칠흑 같은 어둠뿐이었다. 희미한 달빛은 그 무엇도 제대로 비추지 못했다.

 

 

/

누군가의 잔인하고 역겨운 장난이었다. 어느새 나는 주먹을 불끈 쥐고 있었다. 대체 어떤 개자식이 이걸 보냈지? 이메일에서 익명 뒤에 숨는 건 쉬운 일이다. 비겁자들의 은신처로 이만한 곳이 없다. 하지만 그 나무와 우리 기념일에 대해 아는 사람은 세상에 몇 되지 않는다. 언론조차 모른다. 물론 쇼나는 알고 있다. 그리고 린다도. 엘리자베스가 부모님이나 삼촌에게 언급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들 외에는‧‧‧‧‧‧. 대체 누가 보낸 거지?

 

 

/

나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 그녀는 계속해서 손을 들고 있었다. 나는 천천히 손을 들어 따뜻한 화면을 쓸어내렸다. 눈물이 쉴 새 없이 쏟아졌다. 그녀의 얼굴을 어루만지는 동안 가슴이 벅차 터질 듯이 아려왔다. “엘리자베스.” 나는 속삭였다. 그녀는 화면 속에 몇 초간 더 머물렀다. 그리고 카메라를 향해 무언가를 말하기 시작했다. 들리지 않았지만 입 모양은 똑똑히 읽을 수 있었다. “미안해.” 나의 죽은 아내가 말했다. 그리고 돌아서서 멀어져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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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 트랩 - 당신을 속이고, 유혹하고, 중독시키는 디자인의 비밀
윤재영 지음 / 김영사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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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일상에서 우리가 알게 모르게 경험하고 있는 덫 기술에 대해 전반적으로 소개한다. 나는 사용자 경험 디자인인터랙션 디자인분야 연구자이기에 이 덫을 디자인 트랩이라 통칭하고, 사용자와 디자인 측면에 집중하여 설명할 것이다. [‘프롤로그에서]

 

 

사냥으로 생활을 이어가던 과거에는 야생동물을 잡기 위해 흔히 두 가지 방법을 사용했다고 전해진다. 야생동물이 잘 다니는 길목에 통나무 묶음을 괴어놓고 미끼로 유인하는 벼락틀과 매운 연기를 동굴 안으로 넣어 너구리나 오소리 등이 밖으로 나오게 만드는 굴 사냥이 그것인데. 원시적인 사냥법처럼 들리는 이 방법들은 오늘날 우리 주변에서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홍익대학교 시각디자인과 교수이자 UX 디자인 전문가인 저자 윤재영 교수는, 실체를 왜곡하고 미처 깨닫지 못한 사이 우리를 속이고 유혹하는 오늘날의 마케팅 전략과 디자인 트랩 사례를 한 권에 꼼꼼하게 담아냈다.

 

 

심리학 이론을 기반으로 한 디자인 트랩은, 고도로 설계된 마케팅 전략이다. 때문에 사용자의 입장에서는 이를 눈치 채지 못하면 무조건 당할 수밖에 없는데. 실제로 페이스북, 유튜브, 인스타그램, 넷플릭스 등은 사용자를 대상으로 다양한 디자인 트랩 전략을 사용하고 있다.

 

 

끊임없이 등장하는 새로운 플랫폼 사이에서 미래 산업의 시대를 살아갈 우리에게 마케팅 전략에 대한 이해와 기업들의 교묘한 함정을 간파하고 대처하는 방법은 더 이상 선택의 영역이 아니다.

 

 

디자인이 적용되는 단계는, 디자인이 전혀 적용되지 않은 ‘0단계부터 디자인 트랩을 뜻하는 ‘3단계까지. 모두 4개의 단계로 나눌 수 있는데. 적절하게 사용된 좋은 디자인(2단계)은 실체를 돋보이게 하지만. 미숙한 디자인(1단계)과 나쁜 디자인(3단계)은 실체에 도움이 되지 않거나 실체를 가리는 부정적인 결과를 초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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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 트랩 전략은 크게 미끼매운 연기전략으로 나뉜다. ‘미끼는 벼락틀처럼 좋아할 만한 것으로 꾀는 전략이고, ‘매운 연기는 굴 사냥처럼 싫어할 만한 것으로 몰아 유인하는 전략이다. [p.20]

    

 

디자인 트랩은 교묘한 함정으로 사용자의 인지를 흐리면서 사용자의 목표를 방해하거나 사용자가 의도한 행동을 하지 못하게 만든다. 이러한 디자인 트랩의 대표적인 예로는, ‘한 달 무료 체험으로 서비스에 가입하게 만들고 깨알 같은 글자와 복잡한 과정으로 해지를 어렵게 만드는 온라인 구독 서비스가 있다.

 

 

디자인 트랩은 우리에게 편리함을 주는 자동화 기기의 위험성, 즉 자동화 역설에 대해서도 소개한다. 현대사회의 무제로 우리는 정보 과부하를 주목하지만. 우리의 손을 거치지 않아도 일을 마칠 수 있도록 삶을 편리하게 만드는, 지나친 정보의 저부하가 야기하는 문제 역시 무시해서는 안 된다.

 

 

로버트 여키스와 존 도슨은 쥐가 들어 있는 상자 안에 흰새고가 검은색의 통로를 설치하고, 쥐가 검은색 통로를 지나갈 때 전기충격을 가하는 실험을 진행했다. 강도를 나눠 진행한 실험에서 두 사람은 충격이 강할수록 쥐들이 통로를 잘 구분할 것이라 예상했지만. 실험 결과, 중간 정도일 때의 효과가 가장 좋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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쥐는 자극 정도가 지나치게 높을 때는 스트레스를 받아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자극 정도가 지나치게 낮을 때는 빈사 상태에 빠질 정도로 무기력해졌다. 카와 많은 연구자는 이 실험의 낮은 자극에 대한 결과에 주목했는데, 자동화로 인해 자극이 약해질수록 사람은 의욕이 사라지고 무기력해질 수 있다고 경고한다. [p.77]

 

 

코로나19와 함께 찾아온 비대면 시대. 현장감을 더하면서 호스트와 실시간으로 소통하는 새로움과 재미를 제공하는 라이브 커머스가 인기를 끌고 있다. 간편한 제작 방식과 저렴한 가격, TV 홈쇼핑에 비해 높은 호스트의 자유도가 장점이지만. 아직 규제의 사각지대에 있는 라이브 커머스는 사용자의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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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수록 교묘하게 우리의 선택을 조종하는 디자인 트랩 탓에 서비스 측이 유도하는 대로 쉽게- 서비스를 구독해 한참이 지나 어렵게- 해지하고, SNS에 중독돼 시간을 허비하거나 좋아요에 집착하는 우리. UX 디자인 전문가의 친절한 안내서 디자인 트랩을 통해 일상 속 숨은 함정들의 작동 원리를 알아보고, 디자인 트랩에 대처하는 방법을 만나 보는 것은 어떨까?

 

    

출판사에서 도서를 지원 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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