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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방
알렉스 존슨 지음, 제임스 오시스 그림, 이현주 옮김 / 부키 / 2022년 10월
평점 :

1929년 발표한 책 《자기만의 방》에서 버지니아 울프는 말했다. 여성이 소설을 쓰려면 돈과 자기만의 방이 있어야 한다고. 충분한 교육을 받기도, 재정적 독립의 기회를 얻기도 어려웠던 당시 여성들에게 독립적인 집필실이 얼마나 중요한지 강조한 멋진 말이지만. 이제는 그 대상을 조금 넓혀 봐야할 것 같다. 모든 작가에게는 자기만의 방이 있어야 한다고 말이다.
모든 작가에겐 반짝이는 영감을 작품에 녹여낼 그들만의 공간과 루틴이 있다. 알렉스 존슨의 책 《작가의 방》은 가장 가까운 곳에서 그들의 창조적 순간을 지켜본 ‘작가의 공간’에 대해 이야기한다.
창문 너머로 언덕과 산이 보이는 버지니아 울프의 오두막 집필실부터. 문이 삐걱대는 소리에도 쓰던 글을 황급히 숨긴 제인 오스틴의 비밀스러운 공간과 짙은 커피향을 풍기는 발자크의 방, 고요함과 소음이 공존한 마크 트웨인의 당구대가 있는 작업실까지. 제임스 오시스의 매력적인 그림과 함께 작가들의 방을 구경하다 보면, 나도 모르는 새에 미래의 작업실을 상상하고 있는 스스로를 발견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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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공간을 방문하는 것은 곧 작가의 삶 속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책장에 꽂힌 책들을 살펴보고, 마치 방금 전까지 앉아서 글을 썼던 듯 작가의 숨결이 느껴지는 책상에 앉아 봅니다. 친구의 집을 둘러보는 것도 흥미진진한데, 제임스 본드가 탄생한 방에 있는 의자에 앉는다면 얼마나 신날까요? 작가의 공간과 그 안에 있는 사물은 비범함을 목격한 증인입니다. 그의 서재를 거닐며 어질러진 책상을 구경하고 삐걱거리는 문을 지나는 사이, 작가가 우리 눈앞에서 살아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서문’에서]
《작가의 방》은 모두 다섯 개의 장으로 구성되었다. 오랜 시간 사랑 받고 있는 작가 50인과 첫 번째 방부터 다섯 번째 방까지. 특징을 중심으로 나눈 지극히 사적인 그들의 창작 공간을 담은 책은, 작가 지망생과 독립적인 작업 공간을 꿈꾸는 사람에겐 더 큰 설렘으로 다가올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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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자크는 글을 쓸 때 빨간 슬리퍼를 신고, 흰색 면 가운을 입고, 금으로 만든 베네치아 체인을 허리에 둘렀는데요. 이 체인에는 종이칼, 가위, 금색 펜나이프 펜던트가 달려 있었어요. 그리고 눈의 피로를 덜기 위해 약간 푸른빛이 도는 종이에 큰 까마귀 깃털로 만든 펜으로 글을 썼죠. [p.42]
자정에 일어나 여덟 시간 동안 글을 쓰고 15분 동안 점심을 먹은 다음, 다시 다섯 시간 동안 일을 한 뒤 저녁을 먹고 잠자리에 들었다는 발자크. 그는 매일 50잔의 커피를 마시며 “커피는 내가 살아가는 데 큰 힘이 된다”라고 이야기할 정도로 커피를 좋아했다고 하는데. 쉴 틈 없이 빡빡한 발자크의 하루를 보니, 커피는 그에게 선택이 아니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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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루스트는 스웨터를 입고 뜨거운 물주머니를 옆에 낀 채 침대에 기대 앉아 무릎을 책상 삼아 글을 썼습니다. 매일 크루아상과 뜨거운 커피를 준비해 주던 가정부 셀레스트 알바레는 아무리 짧은 메모라도 그가 일어서서 쓰는 모습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고 했어요. 프루스트는 왼쪽 여백에 세로로 빨간 줄이 그어진 라인노트에 글을 썼는데요. 아무래도 침대에서 글을 쓰는 자세가 완전히 편하지는 않았기 때문에 손목에 쥐가 나기도 했죠. [p.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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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라는 인구가 300명 정도인 작은 섬이었습니다. 오웰은 이 섬 북쪽에 있는 반힐이라는 농가에 거주하며 글을 썼습니다. 우편물은 일주일에 두세 번 배달됐고, 가장 가까운 이웃이 약 1.5킬로미터 밖에 살았으며, 약 30킬로미터 안에는 전화기도 없었죠. 바깥 세상과 이어 주는 연결 고리라고는 배터리로 켜지는 라디오가 전부였습니다. [p.55]
“작가는 집에서 일하며, 그래서 끊임없이 방해를 받을 수밖에 없다”라고 이야기한 조지 오웰은, 집필에 집중하기 위해 스코틀랜드의 외진 섬 주라에 머물렀다고 전해진다. 인구 300명의 고요한 섬 주라는 글을 쓰기에 최적의 환경이었지만. 전기와 온수를 사용할 수 없고, 아주 기본적인 이동 수단밖에 없었던 탓에 사람들이 선뜻 찾아오긴 어려운 곳이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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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는 작가의 집필 공간보다 그곳에서 보이는 풍경이 더 중요하기도 하죠. 토머스 하디의 경우처럼요. 하디만큼 주변 환경에 큰 영향을 받은 작가도 드물 거예요. 그는 모든 작품에 자신의 경험을 투영한 가상의 전원 마을 웨식스를 등장시켰어요. 이 웨식스의 자연에 대한 사랑을 일생 동안 소설과 시에 담은 거예요. 작품을 쓸 때 참고했던 여러 영감 노트들에는 화가의 스케치처럼 날씨, 노을, 자연의 소리에 관한 하디의 기록이 가득했답니다. [p.177]
살며시 방으로 스며드는 포근한 볕과 바람, 창밖의 풍경을 중요하게 생각해서일까. 왠지 더 마음 깊숙이 와닿는 구절이었는데. 아름다운 자연과 마주하고 있는 작가들의 방을 보며, 내가 꿈꾸는 나의 작업실을 머릿속에 그려 보는 것도 재미있는 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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린드그렌을 사랑하는 독자라면 무엇보다 서재가 궁금할 텐데요. 그의 서재에 들어서면, 책장 가득 꽂힌 책들과 벽을 메운 그림들이 손님을 반겨 줍니다. 소박한 책상 앞에서는 창문 너머로 그의 작품에도 여러 번 등장했던 바사공원의 풍경을 감상할 수 있고요. 린드그렌이 살던 당시와 바뀐 것이 거의 없기 때문에 엄숙한 박물관이라는 느낌은 전혀 들지 않는답니다. 아무도 없을 때 그가 슬그머니 돌아와 글을 쓸 것만 같아요. [p.265]
“출판사에서 도서를 지원 받아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