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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면조와 달리는 육체노동자
천명관 지음 / 창비 / 2014년 8월
평점 :
<봄, 사자의 서>
망자가 바르도를 떠도는, 영혼이 떠도는 시간을 그리고 있다. 위화의 '제7일'도 그런 이야기이지만 단편이 이 글이 내게 훨씬 큰 울림이 있다. '제7일'은 중국의 현대가 배경이고 개인적인 내용이었고, <봄, 사자의 서>는 우리 사회에 흔하디 흔한(매우 슬프지만) 해고와 가족해체, 노숙, 죽음의 이야기를 압축적으로 보여주기 때문이다. 자신의 죽음을 보는 영혼의 마음을 들여다보면서 아픔이 전이된다.
<동백꽃>
‘당신들의 천국’이 폐쇄된 집단의 통치에 대한 이야기였다면, <동백꽃>은 폐쇄적인 곳의 자발적 복종에 대한 비유로 읽혔다. 전자는 권력을 통한 지배로, 후자는 돈에 대한 열망으로 인한 복종.
<왕들의 무덤>
예전에 강은교 시인이 살 만해지니 시가 안 쓰인다고. 문학은 결핍에서 비롯된 것인지 모른다. 결핍을 정면으로 응시하든가 위장하여 덮어버리든가. 문학이 삶이기도 하니 삶도 결핍일 수밖에....
<파충류의 밤>
잠 못 드는 밤에 비가 내리는데 하필 읽은 게 이 글이다. 불면의 고통이 삶의 허함에 있는 건지 모르겠다. 누군가에게 집착하고 누구든 지켜야 한다면, 누구에게든 연민이 있다면, 누구가 됐든 마음이 간다면 잠은 이루게 될 듯하다. 잠 한 줌은 삶을 썩지 않게 하는 소금, 이렇게 말하는 게 창작 의도의 왜곡이더라도, 그렇게 기억하고 싶어진다.
<칠면조와 달리는 육체노동자>
칠면조와 노동자의 생경한 궁합만큼이나 삶은 대체로 이질적이고 우연적이고 당혹스럽다. 계획되지도 않고 계획대로 되지도 않는 삶은 누구에게나 균질하게 있으니 나름 이것도 평등인가 싶다.
<전원교향곡>
귀농으로 성공한 사람들이 티비에 나온다. 티비에 나오는 건 성공했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희귀성 때문이리라. 귀농의 성공은 아주 드문 일이다. 티비가 성공을 담아낸다면 문학은 성공의 그늘을 그리는 것일지도......
<핑크>
핑크 덩어리로 표현할 만큼 뚱뚱한 운전할줄 모르는 여자가 한 남자의 시체를 차에 실은 채 저수지 바닥으로 밀어넣는다. 대리기사가 그 차를 몰고 오고 핑크 덩어리와 함께 돌아온다. 누구도 알지 못 했다. 만남이 이런 이별을 배태하고 있다는 것을.
<우이동의 봄>
가난은 보이는 것에만 드러나는 게 아니다. 냄새에도 있고 소리에도 있다. 가난의 말은 거짓으로 연명할지언정 인간의 모습까지 버리지는 않는다.
; 문학은 결핍과 부재 위에 쌓아올린 탑인 듯하다. 결핍과 부재가 탄탄할수록 견고해지는 탑. 문학은 더러운 뻘흙에서만 피는 연꽃인 듯도 하다. 더럽다는 의미가 하나가 아닌 여럿이 섞인 것을 말하는 것이기에, 문학은 더러워야 하는 것이다. ‘칠면조’와 ‘육체노동자’처럼 이질적인 섞임의 더러움이 곧 문학일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