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없는 나의 집>, 금희 소설집

조선족 작가가 한글로 쓴 소설. 국문학의 범주를 얘기하면서 생각하게 되는 유형의 하나, 핏줄과 언어는 같으나 공유하는 공감과 시간이 다른...
다르다. 특히 현대사를 관통해온 경로가 아예 다르니 사고의 골격부터가 다르다.

•세상에 없는 나의 집
정체성의 혼란. 소설 내용과 무관하게 갑자기 든 생각 중 하나는 정체성은 민족적인 것인지 국가적인 것인지? 민족은 실체하는 것인지 관념의 것인지... 나 자신도 블명확한데 나를 넘어선 범위의 정체성까지 나는 규정할 자신이 없네.

•봉인된 노래
조선족에게서도 세대의 간격과 삶의 괴리는 다르지 않은 듯. 삶은 어디에서도 비슷한가 보다.

•월광무
‘반딧불이......잡으면 벌레가 되고 바라보면 아름다운 빛이 되는 것’
잡으려고 떠돈 사람이 찾아든 곳이 지키는 것이 사명 같았던 사람의 공간이라. 어찌 보면 우리 민족의 떠돎을 생각나게 한다. 쫓기든 떠났든 찾기 위해서 떠났든 떠날 수밖에 없었던 조선족의 삶이 핏줄로 이어진 것인지도 모른다.

•돌도끼
“‘자랐다’는 말은 도대체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말이 늘고 속셈이 많아지는 것을 ‘자랐다’고 한다면, 과연 그것은 ‘자라지 않은’ 것보다 뭐가 나은 걸까. 그런데도 나는 어른들이 ‘자랐다’고 말해주면 그것을 칭찬으로 작아들였던 것 같다. 그런 마름이 듦으로써 유년은 어느새 떠나가고 있었다는 것을 아는 몰랐다.”
“남아 있는 것들은 눈에 보이지 않고 그저 떠나는 것들 속이 끼여 있다는 것으로 무척 설레었다.”
유년에 대한 기억을 간직하는 태도는 어디에서나 비슷하 듯하다.

•노마드
  "근데, 그 새로 온 이모 말이야. 슬이 누나 말고 왜 그 키가 좀 작고, 단말 파마한......"
  "음, 그래서?"
  "중국 사람이야?":
  "아니."
  "그럼, 한국 사람이야?"
  "아니."
  "설마, 북한......이야?"
  박철이는 커피 한 잔을 받쳐들고 창 밖을 내다보다가 파란 등받이를 씌운 의자 뒤를 잠깐 훔쳐다 보았다.
  "아니, 조선족이야."
  "그러니까 중국 사람 맞네."
  "엄마는 네가 중국 본토 사람이냐고 묻는줄 알았지."

중국인도 아니고 남한도 아니고 조선도 아닌, '조선족'

  박철이는 난감했던 것은 단지 같은 말을 하고 있다는 이유로 그 나라 사람들한테 무의식간에 걸었던 근거 없는 높은 기대였다. 다만 다른 점은 영어가 많이 썩인 교양 있는 말투나 세련된 옷차림, 그리고 교통 질서, 위생 습관, 음식 솜씨 드등 대체로 그런 자잘한 것들이 모여ㅑ 기어코 넘을 수 없는 큰 벽이 된다는 사실을 실감해야 했다.

 조선족일 수밖에 없는 조선족.

  의지로 츅체를 다스릴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이 세상에서 얼마나 있을까?

사람의 문제는 종족, 핏줄 등의 문제가 아니라  대부분은 인간 본연의 문제인 것일지도 모른다. 금희의 소설접 <세상에 없는 나의 집>을 읽으면서 차이가 아닌 보편을 보고 싶은 건 나의 의지일 뿐이더라도, 그러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읽는 내내 새로울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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