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현
김인숙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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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날과 사랑'을 읽었을 때가 대학 시절이니 아마도 20년은 넘은 듯하다. 기억에도 없고 잔상도 남아 있지 않다. <소현>을 읽으면서 김인숙의 글들을 다시 찾아 읽고 싶어진다. 소현 세자가 처했던, 들어도 듣지 못하였고, 보아도 보지 못하였으되, 말하지 않아도 들어야 했고, 보이지 않아도 볼 수 있어야 했던, 그 상황과 맥락을 이렇게 적을 수 있는 작가가 얼마나 될까.

조선은 명을 가리켜 천조(天朝)라 했다. 천조는 천자의 조정을 제후의 나라에서 일컫던 말이다. 조선은 명을 천조로 섬기나 청에 볼모 잡힌 나라였다. 인터넷 용어에 천조국이 있다. 우리나라 네티즌들이 미국을 일컫는 표현이다. 우연인지 의도인지 유래야 어쨌든 저 당시 조선의 처지와 우리의 처지가 결코 다르지 않아 보임은 나만일까.

'기다리지 못하는 자는 이길 수 없으니, 칼끝이 살에 닿을 때까지도 기다려야 하는 순간이 있었다. 때로는 칼날에 제 모가지가 베어져나가는 것을 보면서까지도 기다려야 할 때가 있으리라. 죽음보다 더한 것이 승리의 염원이라면, 그러하리라.'

말은 말로써 뜻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그러할 수밖에 없음으로 뜻이 드러나는 것이다. 도대체 충(忠)이 무엇이었기에 이리도 삭이고 담고 가야만 했는지...

'임금은 그 중에 숱한 이야기들을 들었을 것이고, 그중에서도 가장 의심스러운 이야기들만 믿었을 것이다. 그러한 세월이었다.'

어디 말에 대한 믿음이 세월의 탓에만 있겠는가마는 세월의 탓이 제일 클 것이다. 풍문이 제일 믿음직하고, 음모론을 신뢰하게 되는 것을 어찌 개인의 심성 탓이라 하겠는가.

이 소설은 작가 김인숙에게는 처음 쓴 역사 소설이었으며, 소설을 써가는 5년 동안 '소현의 고독이 내 몸속에 들어와 늘 어딘가가 아팠다.'는 소설이다. 어떤 문장은 '수백 번쯤 읽고 수백 번쯤 생각'하면서 쓴 글이라 했다. 그래서인지 읽는 내내 한 문장 한 문장 곱씹어 읽었다. 작가가 전해주는 소현의 고독으로 나 역시 고독해져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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