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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랑말랑한 힘 - 제3의 시 ㅣ 시인세계 시인선 12
함민복 지음 / 문학세계사 / 2005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이인형 선생님과 출장 다녀오는 길에 이런 저런 얘기 끝에, 詩를 가르칠 수 있는가를 얘기했다.
정은교 시인 초청강연회 때 정은교 시인이 그랬다. 요즘 시가 안 써진다고. 너무 넘치기 때문이라고.
이 두 가지를 다 정말 그렇다고 깨우치게 해주는, 오로지 詩로써 깨우치게 해주는 시인이 있다. 함 민 복.
오랜만에 읽은 시집. 몇 편 빨리 와닿았던 시를 옮겨 본다. 나머지 시는 아껴 둔다. 왜냐면, 이유는 없다^^ 아니, 있다. 사서 읽어라. 함민복 시인은 직업이라곤 '시인' 하나밖에 없는 사람이다. 이런 사람 시집은 사줘야 한다.
<나를 위로하며>
삐뚤삐뚤
날면서도
꽃송이 찾아 앉는
나비를 보아라
마음아
<그늘 학습>
뒷산에서 뻐꾸기가 울고
옆산에서 꾀꼬리가 운다
새소리 서로 부딪히지 않는데
마음은 내 마음끼리도 이리 부딪히니
나무 그늘에 좀더 앉아 있어야겠다
<정수사>
가늘어진
가을
물소리에
바위는
더
깊이
패는구나
<옥탑방>
눈이 내렸다
건물 옥상을 쓸었다
아파트 벼랑에 몸 던진 어느 실직 가장이 떠올랐다
결국
도시에서의 삶이란 벼랑을 쌓아올리는 일
24평 벼랑의 집에 살기 위해
42층 벼랑의 직장으로 출근하고
좀더 튼튼한 벼랑에 취직하기 위해
새벽부터 도서관에 가고 가다가
속도의 벼랑인 길 위에서 굴러 떨어져 죽기도 하며
입지적으로 벼랑을 일으켜 세운
몇몇 사람들이 희망이 되기도 하는
이 도시의 건물들은 지붕이 없다
사각 단명으로 잘려 나간 것 같은
머리가 없는 벼랑으로 완성된
옥상에서
招魂하듯
흔들리는 언 빨래소리
덜그럭 덜그럭
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