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성장이 안되면 우리는 풍요롭지 못할 것인가
C. 더글러스 러미스 지음, 이반.김종철 옮김 / 녹색평론사 / 2002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현실적이다" VS "이상적이다"
이런 이분법의 바탕은 실현가능서의 여부다. 흔히 말하는 '현실적'인 경우는 실현 가능성의 정도가 크고, '이상적'인 경우는 실현 가능성의 정도가 크지 않다는식의 얘기인데, 여기서 실현가능성은 무엇을 판단의 근거로 삼느냐는 것이 또다시 문제이다. 실현가능성의 정도는 현재하지는 않지만 현재했으면 하는 이상을 추구하는 주체가 많거나 그 의지가 강하거나, 주체들의 이상을 추구하는 실천력이 높거나 등에 의해 가능성이 높아지고 커지는 것이다. 그렇다면 주체는 나를 포함하니 언제나 유동적인 크기이며 또한 의지 정도나 실천력은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현재하는 것이니 모든 이상은 실현가능성을 갖고 있고 또 그런 의미에서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현실적이지 않느냐는 것이다. 

현실적이란 말을 정도의 애매함이 아닌 다르게 접근해 본다. 현실은 존재하는 것이므로 존재의 여부에 따라 현실적이냐 아니냐를 구별하고 판단해 보는 것이다. 수식언들은 말의 본의를 가리곤 한다. 수식언들을 날려버리고 포장지를 벗겨 보면 현실은 한 눈에 들어와진다.

국가의 폭력은 정당하가에 대한 물음에,국가의 폭력이 깡패의 그것보다 정당하다고 단언하기엔 우리 역사만 보더라도 머뭇거리게 된다. 깡패들이 죽인 사람과 국가의 정의롭지 못한 폭력에 의해 죽은 사람 중 누가 더 많을까? 아니 폭력에 정의로운 이라는 관형어가 가능은 할까?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것으로 얘기하면 그렇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 현실적이라는 것이다.

"경제성장이 안 되면 우리는 풍요롭지 못할 것인가?"에 대한 답도 마찬가지이다. 그리스 시대의 풍요는 노예노동을 바탕한 귀족의 여유였다. 곧 풍요롭다는 것은 여유롭다는 것이다. 경제 성장이 인류의 화두가 된 것이 백년이다 되었을까마는, 그 성장의 화두가 모든 인문적, 생태적 우려와 논쟁을 통째로 삼켜버리면서 과연, 인류는 풍요로워졌느냐, 여유로워졌느냐는 것이다. 8시간 노동이 4시간 노동으로 대체되고 그 나머지의 여유로 인류는 문화를 가꾸어 왔느냐는 것이다. 아니 최소한 모든 인류가 8시간 노동을 하게 됐는가, 아니면 그 누군가가 노예노동은 아니지만 노예만큼 노동을 한 대가로 소위 경제 성장의 풍요를 즐기고 있다면 이것을 과연 진보한 성장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하는 대해 답해야 한다는 것이다. 바로 이런 것이 현실적인 것이다.

국가는 세 개의 몸둥아리를 갖고 있다. 정치, 군대, 경제. 어느 것도 민주적이지 않다. 어느 것도 지속 가능한 이상을 제시해주지 않는다. 비(非)민주적이거나 반(反)민주적인 이러한 체제는 멈춰야 한다. 그리고 새로 출발을 하는 것이다. 이것이 너무 이상적이라고 하자만, 非군사적 세력이 현존하고, 성장을 말하지 않는 경제도 존재하며, 권력을 위계화하지 않는 정치도 존재하기에 실현가능성이 아직은 낮을지 모르나 현실적이지 않다고 말할 수는 결코 없는 것이다. 

이 책은 정말 많은 질문을 하고 답한다. 그리고 다르게 볼 수 있는 있는 길을 터준다. 지금의 실패와 위기를 생각한다면 이 책은 아주 현실적인, 현실이어야 할 얘기를 명쾌하게 하고 있다. 다 읽어내고 상상해내기에 나는 너무도 풍요롭지 못하다. 나의 풍요로움을 찾아내어 다시 읽기를 해야만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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