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
광개토태왕 담덕 1 - 순풍과 역풍
엄광용 지음 / 새움 / 2022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1. 서

역사소설은 일차적으로 역사적 사실의 재구성보다는 ‘소설’로서의 재미에 중점을 두어야 한다. 그것이 역사‘소설’의 본분이다, 라는 것이 나의 지론이다.

그렇기에 나는 같은 관점에서 고증(이것은 다른 많은 선생님들이 해주시는 것도 있고)이 얼마나 잘 되었는지 따지는 것은 조금 뒤로 미루고, 먼저 이 작품이 소설로서 얼마나 완성도가 있는가를 중점적으로 살펴보려 한다. 이는 내 직업이 웹소설 작가이기 때문에 이 작품이 얼마나 소설적인 성취를 이루어냈는가에 관심이 기우는 탓도 있다.

이보다 앞서 세상에 나왔던, 비슷한 시기를 다룬 두 작품, 그러니까 정립의 『광개토대제』나 김진명의 『고구려』와의 비교도 있을지 모르나, 나는 기준을 좀 더 높여보려고 한다.

일단 작가 소개의 문구 중 ‘단국대 대학원 사학과에 진학하여 석사를 마치고 박사과정을 수료하면서 고구려 역사와 그 시대의 생활상을 두루 엿볼 수 있는 간접 자료를 확보하는 데 주력하였다’는 부분에 나는 큰 기대를 걸었다. 작가 서문에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고구려 생활상을 다룬 저술들과 이웃 나라와의 물산 교역, 전통 무속 신앙과 종교의 합류 과정, 지리적 특성과 그곳에서 나는 특산물들, 나무나 풀과 생명체들을 통하여 역사 퍼즐을 복원하는 데 온 힘을 다하였다.

-7쪽.

라 하기에, 그렇다면 내 생각에 고대인의 생활상을 역사소설을 통해 재구, 당시의 살아있는 인물을 생생하게 표현하기로는 정점에 있는 작품인 콜린 매컬로의 『로마의 일인자』와 비교해보기로 했다.

2. 불안

『광개토대제』나 『고구려』에 덴 적이 있는 나는 일단 이 작품의 작가 서문부터 경계하는 마음을 곤두세우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 민족은 말을 타고 북방 초원로를 달리던 유목민의 후예다. 유목민의 ‘노마드 정신’이 우리의 핏속에 강한 생명력의 DNA로 내정되어, 오늘날 대한민국을 세계적인 경제 강국으로 만들 수 있었다. 광개토태왕의 영토 확장 정신이 오늘날 ‘경제 영토 확장’으로 거듭나게 된 것이다.

-6쪽.

1천5백여 년 전 광개토태왕은 말을 타고 이 광야를 달리면서 무엇을 느꼈을까, 생각을 하다가 나도 모르게 울컥 하는 심정이 되기도 했다. 생각이 한반도에만 갇혀 있던 내게 노마드 정신을 일깨워 주는 순간이었던 것이다.

-7쪽.

소설 속에서 그 동력을 찾아내는 것은 독자들의 몫이지만, 분명 광개토태왕이 광야를 달리는 말발굽 소리를 통해 오늘날 세계로 뻗어 가는 네트워크를 상기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전 세계가 그물처럼 엮여진 정보의 유통망을 통하여, 독자들이 새로운 미래의 시간을 열어가는 동력을 확보하길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8쪽.

작가가 소설이 아니라 ‘역사’에 방점을 찍는 역사소설, 거기서 그치지 않고 ‘현대의 독자들’에게 소설적 재미 외에 뭔가를 주겠다고 말하는 소설을, 나는 이미 『광개토대제』나 『고구려』에서 실컷 겪어보았다. 때문에 나는 이러한 작가의 말이 ‘소설적 완성도 따위는 아무래도 좋다’는 식의 선언으로 보인다.

하지만 일단은 ‘작품을 팔기 위한 전술일 수 있으니까’ 정도로 스스로를 안심시키며, 계속 읽어나가기로 했다.

3. 흥미를 끄는 요소는 분명 있다

고대인의 생활상을 구현한다는 점에서 이 작품은 분명 큰 의의가 있다. 『광개토대제』에서 ‘감자’가 튀어나올 때 얼마나 황당했던가. 적어도 이 작품은 그런 실수는 하지 않는다.

고구려 벽화에 대한 연구 결과를, 그렇게 재구성 된 고구려인의 생활상을 교과서나 다른 역사 교양서를 통하는 게 아니라 소설을 통해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이 작품은 분명 매력이 있다.

초피 장사꾼은 신기한 듯 시장을 한 바퀴 돌았다. 그는 이리저리 기웃거리며 시장 사람들이 떠드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기도 했다. 사람들이 떼 지어 몰려든 곳은 시장 바닥의 너른 마당 한가운데 가설한 상설 무대였다. 바닥에 나무판을 깔고 삼면을 천막으로 둘러친 무대에서는 한창 각종 기예가 펼쳐지고 있었다. 바로 그 뒤에 한 남자 악사가 완함(비파)으로 반주곡을 타고 있는데, 그 소리에 맞춰 무동들이 춤을 추는 모습은 신기하기까지 했다.

무동의 나무다리춤은 두 개의 목발에 의지해 몸의 중심을 잡는 기술도 놀랍지만, 땅에서 두 발로 걷는 것보다 더 자연스럽게 공중 높은 곳에서 온갖 재주를 부리는 묘기는 특히 압권이었다. 그렇게 높이 올라서면 어지러울 법도 한데, 춤까지 덩실덩실 추는 것을 보면 그 경지에 이르기까지 얼마나 피나는 연습을 했는지 가히 짐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계속해서 이어지는 기예는 손재주 기술로, 짤막한 막대기 서너 개와 작은 공 대여섯 개를 서로 엇바꿔 던져 올리고 받아내는 재주 또한 기가 막혔다. 단 한 번도 공을 바닥에 떨어뜨리지 않고 막대기로 가지고 노는 장면을 보고, 거기 모여선 장꾼들은 환호와 박수갈채를 보냈다. 나무다리춤이나 손재주 기술을 가진 기예사들은 모두 눈이 움푹 들어가고 코가 큰 서역인들이었다.

-117쪽~118쪽.

그러나 이러한 생활상이 서사나 인물과 연결되지 못하고 ‘소품’으로 소모되고 마는 것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위의 내용을 본문에서 빼버려도 인물이나 서사의 깊이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기 때문이다.

자연히 나는 로마인의 생활상을 길게 서술한 『로마의 일인자』의 한 장면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물론 아우렐리아는 두려웠다. 게다가 결혼생활과 인술라 생활이라는 두 가지 새로운 생활을 동시에 시작하는 것도 썩 달갑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는 마음속에서 대담함을 느끼고 있었다.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새로운 해방감에서 기인한 대담함이었다. 그녀는 지금까지 살아온 것 외의 생활방식을 전혀 몰랐기에 어린 시절 딱히 지루함이나 좌절감을 느낀 적이 없었다. 오히려 이것저것 배우느라 아주 바쁘게 지내왔었다. 하지만 결혼이 다가오자 그녀는, 만약 코르넬리아처럼 자식을 많이 낳지 않게 된다면(자식을 둘 이상 원하는 귀족은 드물었다) 무엇을 하면서 나날을 보내야 할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우렐리아는 천성적으로 행동가이자 활동가였지만, 태생 때문에 많은 경우 활동적인 일에서 배제되었다. 이제 이곳에서 그녀는 아내이자 집주인이 될 것이다. 영리한 그녀는 적어도 두번째 역할은 자신에게 드문,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주리라는 걸 알았다. 그것도 그냥 일이 아니라 흥미롭고 자극이 되는 일이었다.

그래서 아우렐리아는 눈을 빛내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구상하고 계획하며, 자신이 어떤 일을 하게 될지 상상해보려고 애썼다.

1층의 아파트 두 개는 크기가 달랐다. 이 건물을 지은 소유지가 자신이 쓸 쪽을 더 신경써서 만들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팔라티누스 언덕의 코타 저택에 비하면 그곳도 아주 작았다. 사실 코타 저택의 바닥 면적은 이 인술라의 상점들과 쿄차로 선술집, 아파트 두 개를 포함하는 1층의 전체 면적보다도 넓었다.

식당에는 일반적인 개수인 긴 의자 세 개가 겨우 들어갔고 서재들은 그 어떤 단독주택의 서재보다도 작았지만 둘 다 고상했다. 식당과 서재 사이의 벽은 칸막이에 가까웠으며 천장까지 닿지 않았다. 따라서 채광정에서 들어온 공기와 빛이 식당을 통과하여 서재까지 들어왔다. 응접실(그곳을 아트리움이라고 부르는 것은 적절하지 않아 보였다)에는 테라초 파닥과 벽화로 장식된 회벽들이 있었다. 중앙의 원주 두 개는 원목으로 만든 것이었으며 멋지게 채색하여 대리석처럼 보였다. 건물 전면의 상점 끝 부분과 위층으로 연결된 계단 사이의 외복 높은 곳에 있는 거대한 격자창을 통해 거리에서 공기와 빛이 들어왔다. 전형적인 창문 없는 침실 세 개는 응접실과 연결되었다. 서재와 연결된 침실 두 개도 있었는데 둘 중 하나가 더 컸다. 아우렐리아가 거실로 쓸 수 있을 작은 방도 있었고, 그 방과 계단통 사이에는 카르딕사에게 줄 만한 더 작은 방이 있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안심이 되는 것은 건물에 욕실과 변소가 있다는 사실이었다. 중개인이 신나게 설명한 대로, 이 인술라는 로마의 하수 주관 하나를 곧장 가로지르는 위치였고 그 상수도에 연결된 방수관을 통해 합법적으로 물을 공급받았다.

“수부라 미노르 쪽으로 바로 건너편에 공중변소가 있고, 그 바로 옆에 수부라 목욕탕이 있습니다.” 중개인은 말했다. “물 때문에 골치 아플 일은 없습니다. 여기는 지대가 딱 좋아요. 아게르 저수지에서 물을 잘 공급받을 만큼 낮으면서도 티베리스 강이 범람할 때 역류 피해가 없을 만큼 높거든요. 그리고 하수 주관에 연결된 방수관 크기가 현재 수도업자들이 공급하는 것보다 커요. 즉 하수 주관에 새로 블록들이 연결된다고 해도 문제가 없다는 뜻입니다.”

아우렐리아는 이 말을 열심히 들었다. 자신의 새로운 생활에 수도와 변소라는 사치는 포함되지 않을 줄만 알았기 때문이었다. 인술라 생활에 대해 그녀가 유일하게 걱정한 점은 개인 욕실과 변소가 없으리라는 거였다. 그들이 보았던 인술라들은 모두, 더 좋은 지역에 잇는 경우라 해도 상하수도가 연결되어 있지 않았다. 그녀는 이 인술라를 선택하기로 마음을 굳혔다.

콜린 매컬로(2015), 『로마의 일인자2』, 교유서가, 194쪽~197쪽.

이 젊은 부부는 수부라 지구에 살림을 차릴 때부터 인술라 근처에 사는 모든 사람들에게 끝없는 호기심의 대상이었다. 그들의 등장은 상당히 놀라운 것이었다. 인술라의 주인이 귀족인 경우는 꽤나 흔했지만 귀족 주인이 직접 그곳에 사는 경우는 흔치 않았다. 가이우스 카이사르와 그의 부인은 아주 희귀한 존재였던 만큼 보통 이상의 관심을 불러 왔다. 수부라 지구는 그 거대한 규모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이야깃거리를 더없이 좋아하는 사람들로 북적거리는 말 많은 동네였던 것이다.

사람들은 하나같이 이 젊은 부부가 절대 이곳에서 견지 못할 거라고 예상했다. 허세와 자만을 사정없이 뭉개버리는 수부라 지구에서라면 팔라티누스 언덕에나 어울릴 그들의 본색이 금세 드러날 것이라 여겼다. 마나님은 어떤 신경질적인 발작을 일으키실까! 나리님은 또 얼마나 거만하게 성질을 부리시려나! 수부라 지구의 불량한 주민들은 껄렁하게 웃으며 말하고는 신이 나서 그날을 기다렸다.

그러나 그런 일은 전혀 일어나지 않았다. 마나님은 태연히 직접 장을 보러 다녔으며, 수작을 걸어보려고 추파를 던지는 사내에게는 대놓고 불쾌한 표정을 지었다. 파트라키 구를 지나가는 마나님을 동네 여자들이 우르르 에워싸고서 당신은 이곳에 맞지 않으니 팔라티누스 언덕으로 돌아가라고 했을 때도, 그녀는 전혀 겁먹지 않았다. 나리님은 더이상 어울리는 말이 없을 정도로 진정한 신시였다. 그는 침착하고 정중했으며, 아무리 하찮은 사람의 말이라도 무엇이든 관심 있게 들어주었다. 유언장이나 차용증서, 계약서를 작성할 때도 도움을 주었다.

얼마 안 가 부부는 사람들의 존경을 얻었고 결국은 사랑받게 되었다. 그들이 보여준 태도 대부분은 이곳 사람들에게 매우 색다르게 느껴졌다. 일단 자기네 일에만 신경쓸 뿐 다른 사람들의 사생활을 캐묻지 않는 성향이 그랬다. 게다가 그들은 불평하거나 남을 비난하는 일이 없었고, 스스로 주변 사람들보다 우월하다고 여기지도 않았다. 누군가가 말을 걸면 그들은 언제든 꾸밈없는 미소를 지으며 진지한 관심과 정중하고 세심한 태도를 보여주었다. 수부라 지구의 이웃들은 처음에는 이런 행동이 가식일 거라고 생각했지만, 결국 카이스라와 아우렐리아가 겉으로 보이는 그대로의 사람들임을 알게 되었다.

이처럼 지역 주민들에게 받아들여진 것은 카이사르보다 아우렐리아에게 훨씬 중요한 의미가 있었다. 수부라 지구에서 생기는 소소한 일들을 처리하는 사람도, 많은 사람이 세 들어 사는 아파트 건물의 주인도 아우렐리아였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이런 일들이 결코 쉽지 않았다. 그러다 남편이 로마를 떠난 뒤에야 아우렐리아는 그 이유를 온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처음에 아우렐리아는 자신이 겪는 어려움에 대해 일이 낯설고 경험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인술라를 팔았던 대행인들은 집세를 거두는 것은 물론 세입자와 대면할 일이 생기면 대신 처리해주겠다고 했고, 남편도 그렇게 하는 것이 좋겠다고 말했다. 갓 결혼한 순종적인 부인은 그 의견에 따랐다. 이사 온 지 한 달 후 그녀는 세입자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무심결에 자기 속내를 전했지만, 그때도 남편은 이를 제대로 간파하지 못했다.

콜린 매컬로(2015), 『로마의 일인자3』, 교유서가, 340쪽~342쪽.

로마인의 건축, 수부라의 생활방식, 로마 도시의 물 공급과 같은 것들이 그것들을 나열하고 설명하는 데 그치는 게 아니라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독재관 카이사르의 아버지)와 아우렐리아의 신혼 생활과 엮이며 인물들에게 생동감을 부여한다.

특히 이 부분들은 아우렐리아의 성격을 멋지게 구현하고 있는데, 이 장면을 통해 우리는 아우렐리아를 고대 여성으로서의 속박을 넘어 삶의 주도권을 쥐고자 하는 당찬 욕망과 동시에, 섬세하고 우아하며 지혜로운 입체적 면모를 지닌 인물로 느끼면서 좀 더 생생하게 느끼게 된다.

이러한 인물을 만들어내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흥미를 느끼며 작품에 몰입하게 되지만, 또한 이 역사소설의 전체 서사와도 연결되면서 서사의 깊이를 더한다. 아우렐리아는 다들 아는 것처럼 독재관 카이사르의 어머니이며, 앞서 표현된 로마인 아우렐리아의 삶은 이러한 그녀의 손에서 어떻게 카이사르라는 인물이 성장할 것인가라는 서사와 복잡하게 얽히게 된다.

고대인의 생활상이 소품에서 그치지 않고 인물 및 서사와 연결되는 것. 콜린 매컬로에 깊이 매료된 나로서는 이러한 경지에 이르지 못한 『광개토태왕 담덕』에 대해 깊은 아쉬움을 표할 수밖에 없다.

아우렐리아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이지만, 나는 당찬 여성을 그려내는 방법 중 ‘싸우는 미소녀’를 도입하는 습관에 대해서도 비판적으로 바라보고 싶다. 사극이든 역사소설이든 처음에는 투희(鬪姬)로 등장했던 인물들이, 왕비가 됐다 하면 거짓말처럼 역할이 지워지고 구중궁궐의 여인이 되어버린다. 마치 결혼과 동시에 ‘한때의 놀이’를 끝낸다는 듯 말이다. 이럴 거면 차라리 싸우는 미소녀라는 요소를 도입하지 않느니만 못하다. 드라마 <바이킹스>의 방패처녀처럼 죽음과 부상의 위협 속에서도 끝까지 싸우게 하든지, 아니면 아우렐리아처럼 그 역할은 처음부터 끝까지 ‘주부’에 한정되어 있지만 그 속에서도 감출 수 없는 당당함이 우러나오게 하든지 하는 편이 낫지 않을까?

이런 면에서 보자면 훗날 고국양왕의 왕비가 될 ‘연화’는 실패한 인물이다. 이 인물은 무술을 잘한다는 특성이 서사와 깊이 섞이지 않고 그저 미래의 고국양왕과 결혼하기 위한 소품으로 끝난다. 왕자비가 되고 나서는 그저 추수라는 인물의 갈등을 드러내기 위한 부속품으로 전락한다.

그러나 연화를 사랑하는 또 다른 인물, 해평의 ‘출생의 비밀’이 얽히면서 이야기는 다시금 흥미를 되찾는다. 모용씨의 연나라에 사신으로 파견된 이후, 기록에 없는 부분을 작가가 상상력으로 채워 넣고 있는데, 나는 이렇게 부족한 기록의 파편들을 최대한 끌어모아 활용하려는 작가의 노력에는 박수를 보내고 싶다.

4. 역사소설은 어떠해야 한다는 규칙이라도 있단 말인가?

김진명의 『고구려』가 광고를 통해 계속해서 『삼국지』를 뛰어넘는다 선전하는 것처럼, 『광개토태왕 담덕』 역시 『삼국지』와 『대망』을 의식하는 광고가 보인다. 물론 역사소설에서 엄청난 상업적 성공을 거둔 그 작품들을 언급하는 것은 출판사 입장에서 매혹적인 판매 전술이긴 하다.

그러나 나에겐 이러한 광고는 어째서인지 결국은 『삼국지』와 『대망』을 뛰어넘지 못하는 한계를 인정하는 것처럼 보이고 만다.

하세쿠라 이스나의 말이 너무 자주 인용되는 것 같지만 여기서도 인용하지 않을 수 없다. “라이트노블만 읽고 라이트노블 쓰려고 하지 마십시오.”

마찬가지로 『삼국지』나 『대망』만 읽고 이것이 역사소설의 전부이며 교과서인양 착각해 그와 비슷한 양식으로 역사소설을 쓰려는 습관이, 일부 역사소설 작가에게 뿌리 깊게 남은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를 접을 수가 없는 것이다.

몇 년 전에 이런 고민을 들은 적이 있다. “역사소설을 쓰려는 작가지망생인데, 역시 사자성어를 열심히 공부해야겠죠.”

황당하기 짝이 없는 고민이었다. 이 작가지망생은 역사소설을 잘 쓰는 비결이 사자성어를 많이 알아서 그걸 작품 안에서 활용하는 것이라 착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소설가의 관점에서 볼 때(어떤 소설을 쓰든),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곳에 쓰이는 사자성어의 남용은 그 사자성어를 대신할 수 있는 ‘문장력의 부재’를 의미한다. 그러니까 자기 문장으로 표현하기 귀찮고 어려우니까 사자성으로 대충 떼우고 넘어가는 셈인데, 사자성어를 쓰면 쓸수록 그 작가가 유식해보이는 게 아니라 게으르거나 실력이 없거나, 혹은 둘 다라는 인상을 주고 마는 것이다.

이 작품 역시, 심각하지는 않지만 사자성어가 지나치게 쓰이는 부분이 보인다. 풍경이나 날씨를 묘사하는 작가의 훌륭한 솜씨로 보았을 때 사자성어가 들어갈 자리를 대신할 문장을 자아낼 능력이 없는 건 아니다. 그렇다면 작가가 ‘역사소설이란 모름지기 사자성어를……’식의 크나큰 착각을 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이러한 오해가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는 모르지만, 역사소설을 쓰려는 사람에게는 이 오해가 빚어낸 어떤 한계를 극복하는 것이 과제라 하겠다.

또 하나 의아한 점은 문예창작학과나 국어국문학과를 나와 이른바 ‘등단’을 한 작가들마저도 역사 소설만 쓰면 이상하게 모든 인물을 평면적으로 만든다는 점이다. 이 작가들에게 입체적 인물을 만들 능력이 없는 것이 절대 아님에도, 마치 ‘역사소설 인물들은 평면적이지 않으면 안된다’는 의무라도 있는 것처럼 인물들을 찍어낸다.

평면적인 인물도 활용하기에 따라 얼마든지 ‘멋’을 낼 수 있지만, 문제는 이것이 앞서 말한 『삼국지』를 뛰어넘겠다는 야심과 결합했을 때 일어난다.

고구려인들의 이야기를 읽는데, 그들이 2세기 말 3세기 초 삼국지의 중국인들처럼 말하고 행동한다.

그러니까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의 이름을 빼 버리고 거기에 유비, 조조, 제갈량, 관우 같은 걸 집어넣어도 전혀 위화감이 없다는 말이다. 그들이 섬기는 신인 추모왕과 유화부인의 이름을 지워버리고 옥황상제를 채워 넣고, 동맹제의 이름을 봉선으로 바꿔도 상관없을 지경이다.

다시 콜린 매컬로의 작품과 비교하지 않을 수 없다. 그녀의 작품에서 로마인들은 로마인으로 말하고 행동하며, 누미디아인들과 폰토스인들, 파르티아인들의 말과 행동 역시 그들 고유의 맛이 있다. 이것은 다시 인물 개개인의 개성으로까지 연결된다.

나는 여기서 한 가지 제안을 하고 싶다. 진정 중국의 『삼국지』나 일본의 『대망』(실은 이것도 『도쿠가와 이에야스』 및 여러 작가의 다른 작품을 하나의 시리즈로 묶어서 내놓은 해적판에 불과하다는 것을 생각하면 한국 출판사나 작가의 입에서 계속 언급되는 것 자체가 부끄러운 일이다)을 뛰어넘고 싶다면 이들을 완전히 의식하지 않고, 일단은 ‘소설’로서의 완성도에 집중하라고 말이다. 이것이 역사소설을 쓰고자 하는 이들의 최우선 과제가 아닌가 싶다.

5. 그런데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는 고증 문제

이 작품은 ‘백제의 요서경략설’을 채택했다. 나는 요서경략설이 중국 남조 역사가들의 착각(고구려 미천왕이 낙랑과 대방을 차지한 후 모용선비가 요서에 임시로 두 군을 다시 만들었는데, 백제가 낙랑과 대방이 ‘있었던 옛 지역을 친 것’을 남조 역사가들이 착각해 요서를 친 것으로 기록)에서 탄생했다고 보기에 탐탁지 않은 부분이긴 하다. 이것 때문에 고구려와 백제의 대전략을 이야기하는 장면이 나올 때마다 몰입감을 해치기도 한다.

그러나 요서경략설은 이문열 역시 『대륙의 한』 같은 작품을 써냈으니 그 영향이 있다고 하면 이해하지 못할 일은 아니다. 무엇보다도 김진명의 『고구려』처럼 평양이 실은 요동에 있다느니 하는 (아마도 박영규의 황당한 설을 받아들인 것 같은데) 서술은 없으니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문제는 바로 이 부분이다.

평양성 남쪽에는 동에서 서로 흐르는 패수가 가로놓여 있었다. 또한 북서쪽에서 흘러내린 보통천의 지류가 패수와 만나는 큰 물줄기를 형성했다. 그래서 성은 서남 방면으로 강을 끼고 있으면서 북동 방면은 모란봉을 비롯한 군소 산봉우르딜로 둘러싸인 천연의 요새였다.

더구나 평양성은 험한 산줄기를 따라 평지로 뻗어 내려가며 내성과 중성과 외성의 삼단계로 성곽이 조성되어 있는 완벽한 방어전략 기지였다. 내성은 서남쪽으로 패수를 끼고 돌며 대동문 아래서 모란봉까지 이르는 구간으로, 그 반대편인 서북쪽으로는 을밀대에서 보통천을 만나는 지점까지 연결되어 있었다. 중성은 서북쪽의 보통천을 따라 조성되어 비교적 내성보다 완만한 경사를 이루고 있었다. 또한 외성은 보통천과 패수가 만나는 합수 지역을 아우르면서 두 강의 지형지세를 이용하며 빙둘러 성곽이 조성되어 있었다.

말하자면 내성은 지세가 험한 산지성이고, 중성은 산지성과 평지성의 중간 형태, 그리고 외성은 평지성이었다. 이처럼 산성과 평지성이 결합된 형태의 평양성은 고구려 남쪽 변경을 아우르는 중요한 군사 요충지로, 특히 남쪽의 패수와 그 지류인 서북쪽 보통천의 물길이 자연적으로 평향을 감싸고 돌아 천연의 방어선 역할을 해주고 있었다.

-351쪽~352쪽.

역사책을 취미로 조금 읽는 것에 불과한 아마추어인 내가 봐도 이것은 6세기 양원왕 시대에 지은 평양장안성에 대한 묘사다. 고국원왕이 전사할 평양성 전투는 4세기 후반의 일이니 대동강과 보통강에 의지한 평양장안성은 나올 수가 없다.

김진명의 『고구려』 때도 그렇지만 나는 이런 장면을 볼 때마다, 작가들이 ‘10년이 넘게 공부하며 준비기간을 가졌다’고 말하는 동안 대체 뭘 공부한 건지 의심스럽다.

여기서 다시 작품 서문으로 돌아가보자.

광개토태왕의 역사 기록은 ‘광개토태왕 능비’에 나온 것이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김부식의 『삼국사기』는 그런 기록들조차 꼼꼼하지 못하고 간략하게 다루어, 오히려 역사 퍼즐 맞추기를 방해하기 일쑤였다.

-6쪽~7쪽.

모든 사료가 그렇듯이 『삼국사기』도 맹신하지 않고 비판적으로 접근해야 하는 것은 맞다. 그러나 나는 역사소설을 쓴다는 이들이 저런 말을 할 때마다 『삼국사기』뿐만 아니라 그것을 (어떤 관점으로든) 연구해 온 모든 성과들을 전혀 살펴보지 않고 변명을 늘어놓는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그런 것들을 살펴보기엔 머리도 복잡하고 활용할 능력도 없으니 그냥 안 봐놓고서는 10년 동안 조각글 좀 끄적거리다가 ‘『삼국사기』에 한정되지 않고 다양한 공부를 10년 넘게 했다’며 변명하는 게 아닌가.

나는 출전, 참고문헌, 도움을 받은 학자들에 대한 감사를 담은 서구 역사소설 작가들의(이를테면 로버트 해리스 등) 서문이나 후기를 보면서, 한국 역사소설의 서문 및 후기와 비교해보곤 한다. 한국 작가들의 후기에 그런 부분이 많이 보이지 않는 건 뭘 공부하고 어디에서 자문했는지 공개하기 부끄러울 만큼 게을렀다는 이야기는 아닌가, 시름이 깊다.

6. 결 - 성과와 과제

『광개토태왕 담덕』은 분명 흥미로운 작품이고, 문장이 읽기 쉬워 며칠 만에 읽을 수 있었다. 문장을 쉽게, 열거한 단점에도 불구하고 읽히도록 쓴다는 것은 분명 빛나는 재능임에 틀림없다. 또한 『광개토대제』나 『고구려』의 단점 일부를 극복한, 진보한 측면 역시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성과와는 별개로 아쉬움이 남는 작품이기도 하다. 언젠가 2권을 읽어보고는 싶지만, 그 전에 여기서 달성하지 못한 과제를 해결하는 것이 글을 쓰는 모두의 책임이 아닌가 싶다.

이 책의 표지 뒷날개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서사가 죽어가고, 문학이 가벼워져 가기만 하는 시대.

그러나 나는 서사가 죽고 문학이 가벼워지는 건 어느 쪽인가 묻지 않을 수 없다. 2010년대 이후, 2020년대 대체역사 웹소설들이 이룬 놀라운 성취와 비교해보면, 이른바 등단하셨다는 분들의 역사‘소설’은 ‘소설’의 기능이라도 제대로 하고 있는가, 회의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심리학을 만나 행복해졌다 (특별판 리커버 에디션, 양장) - 복잡한 세상과 사람의 마음을 꿰뚫어 보는 심리법칙 75
장원청 지음, 김혜림 옮김 / 미디어숲 / 2021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무료로 이 책을 받아 감상문을 쓰기까지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렸다. 『그리고 소녀는 대원수가 되었다』의 집필, 그 집필을 위한 자료 조사, 기타 생업이 겹쳐 우선순위에서 밀려나 있었으니까.

그래도 힘든 시간 동안 이 책이 많은 위로가 되어 주었다. 기운을 잃고, 의욕을 잃고 소설 쓰기마저 팽개칠 정도로 우울할 때 이 책을 읽으면서 다시 힘을 냈으니까.

책의 자세한 내용을 언급하는 건 이 책을 구매할 이유를 감소시키니, 오늘은 이런 책을, 혹은 다른 어떤 책이라도 읽을 때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나는 국어국문학과를 나왔지만, 기억하기로 늘 이단적인 존재였다고 생각한다. 다들 이번 이상문학상에 뭐가 나왔네, 누가 신춘문예로 등단했네, 모모 작가들이 신간을 냈네 떠들 때, 나는 하나도 거기에 관심이 없었다. 나는 만화를 좋아했고, 라이트노벨을 좋아했고 판타지 소설을 좋아했고, 장르문학 잡지를 매달 사서 읽었다.

순수문학인지 문단문학인지 뭔지, 하여튼 정체불명의, 내가 읽어본 적도 없고 읽을 생각도 없었던 책들을 기초로 대화가 오가고 문학 이론을 배우고 시험 문제가 나오고…… 그런 매일매일 속에서 나는 그 사이에 끼어들지 못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누군가 이언 매큐언을 찬미할 때, 나에겐 스티븐 킹이 우상이었고, 또 누군가 김연수 작가의 신작에 감동할 때 나는 이영도의 신작 소식을 간절히 기다렸다.

그런 환경에 놓여 있다면 어떤 사람은 자퇴를 결심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내가 한 선택은 조금 달랐다. 나는 시험 답안지에 적어야 하는 문학 이론에, 내가 좋아하는 장르소설이나 만화를 예로 들어서 써서 냈다. 졸업논문도 그렇게 했고(나중에 석사논문도 그렇게 했다).

교수님들이 참 너그럽게 봐주셔서인지, 나는 A나 B를 받곤 했다. 어떤 사람은 이런 내가 참 대단하다고 할지도 모르지만, 이건 그저 내가 자퇴를 결심할 만큼 용기가 없었기 때문이다.

어쨌든 중요한 건, 이거다.

마음의 기둥을 세우라는 것.

어떤 이는 웹소설 작가에게 국문과 진학은 필요 없다고 말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내가 웹소설 작가가 되고 나서 느낀 건, 그때 배운 문학 이론들이 얼마나 많은 도움이 되었는가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문학 이론들을 ‘필요없다’고 버리거나 도망치지 않고, ‘내 기둥’을 잣대로 삼아 내 식대로 해석하며 정면에서 부딪친 것. 그건 정말 잘한 일이라는 것도.

나는 종종 하세쿠라 이스나를 인용하며 ‘웹소설만 읽고 웹소설 쓰지 마라’는 충고를 한다. 지금도 이 견해는 변하지 않았다. 내가 대체역사소설을 쓸 때 많은 빚을 진 작품들은 대체역사소설보다는 그냥 역사소설들이었으니까.

그러나 반대로, 이런 충고도 할 수 있을 듯하다.

너무 강박적으로 종이책 소설들을 읽으려 들 필요는 없다고. 내 취향이 잘못되었다고, 트렌드에 뒤떨어진다고 생각할 필요도 없다. 그냥 취향에 맞는 소설을 읽으면 된다.

다만,

‘마음의 기둥’을 세우고,

‘더 넓은 독서’로의 영역 확장을 두려워하지 말 것.

이 두 가지를 명심하면 될 것 같다.

취향대로 읽되, 취향에서 잠깐씩 벗어나 새로운, 그러나 미지의 취향을 향해 여행을 떠날 줄 알아야 한다는 말이다.

오늘 소개할 책 역시 그러하다.

어떤 이들에게는 그저 흔한 심리학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것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또 어떻게 사용할지는, 전적으로 여러분의 마음에 달렸다.

행운을 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주가 폭등 20가지 급소 : 기본편 - 아무도 알려주지 않은 주가 상승의 시그널
김병철 지음 / 리드리드출판(한국능률협회) / 2021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전에 서평을 썼던 『주가급등 사유없음』과 함께 보면 좋은 책이다. 『주가급등 사유없음』이 투자 세계의 어두운 뒷면에 대한 이야기와 함께, 그런 음모들 속에서 살아남는 방법을 가르쳐준다면, 이 『주가 폭등 20가지 급소』는 좀 더 실생활에서 간단하게 따라할 수 있고 쉽게 외울 수 있는 요령을 가르쳐준다.

『주가급등 사유없음』을 먼저 읽은 후 『주가 폭등 20가지 급소』을 읽으면, 전자에서 들려준 깊은 원리가 후자에서는 어떻게 표출되는지 생각하며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후자는 최대한 쉬운 설명을 위해 어려운 원리까지 설명해주진 않기에, 『주가급등 사유없음』의 내용을 떠올리며 왜 그런 현상들이 일어나는지 머릿속으로 다시 한번 되새겨 보는 재미는 쏠쏠하다.

반대로 『주가 폭등 20가지 급소』를 읽고 나서 『주가급등 사유없음』을 읽어도 좋을 듯하다. 이 경우에는 전자에서 간단한 요령을 익히고, 후자에서 ‘아 이면에는 이런 치열한 다툼이 있었구나’하는 놀라움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어떤 이는 자신도 그런 치열한 세상에 살아가고 싶을 것이고, 어떤 이는 겁을 먹거나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눈을 굴릴 것이다. 또 어떤 이는, 나처럼 이런 시스템은 반드시 개혁해야 한다고 생각하겠지. 『주가 폭등 20가지 급소』나 『주가급등 사유없음』을 읽고, 또 게임스탑 사태를 보면서 그런 생각이 더욱 강해졌다.

『주가 폭등 20가지 급소』는 누구나 쉽게, 자신의 상황에 필요한 페이지를 펼쳐서 요령을 재확인할 수 있는 구성이어서 좋다. 저자도 이걸 염두에 두었는지 중고등학생 시절 중요 개념의 앞 글자만 따서 암기하는 방법을 응용했다. 학습과 실천에 있어서는 좋은 교재라 할 수 있다.

그러나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철저하게, 이른바 ‘단타’를 위한 책이라는 점이다. 그러면서 중간에 삽입된 투자자들의 명언은 ‘장기투자’, ‘가치투자’ 위주이니 뭔가 부자연스럽다는 느낌이 든다. 만약 나처럼 장기적으로 산업 자체의 미래를 내다보고 10년~50년 정도의 투자를 생각하시는 분들이라면 여기서는 말 그대로 세상 흘러가는 기초 지식을 습득하는 용도로 쓰는 것이 좋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주가 급등 사유 없음 - 세력의 주가급등 패턴을 찾는 공시 매뉴얼
장지웅 지음 / (주)이상미디랩 / 2020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전에 읽었던 『금융의 미래』, 『슈퍼리치들에게 배우는 돈 공부』가 거시적인 관점에서 투자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면 이 『주가급등 사유없음』은 미시적인 관점에서 투자에 대해 알려준다.

아직 펀드나 CMA 상품에만 손을 대고 있지만, 언젠가 주식에도 손을 댄다면 상당히 유용한 책이 아닐 수 없다. 특히 책의 좌우로 어려운 용어들을 하나하나 소개해주고 있다는 점에서 공부에 아주 많은 도움이 된다.

이 책은 이른바 '단타'로 치고 빠지며 돈을 벌고자하는, 워런 버핏을 비롯한 투자의 거장들이 '투기꾼'이라 부르며 경멸하는 유형의 사람들을 위한 책이다. 기본적으로는 그렇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정말로 사회에 뭔가를 만들어내고자하는 기업들에 투자하는, 이른바 '가치투자'를 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도 그렇다.

'세력'이라고 하는 전문 투기꾼들이 어떤 수작을 부려서 다른 수많은 투자자들의 돈을 빨아먹는지, 그 방법을 보여주는 책이다. 그러니 이 책은 그런 수작에 편승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도 유용하지만, 그런 수작에 넘어가지 않고 진짜 건전한 기업에 투자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도 '방어 기술'로서 유용하다고 볼 수 있다.

개인적인 감상을 좀 덧붙여보자면, 주식투자라는 것이 그저 '투기' 취급을 받아도 정말 할 말이 없다는 것을 느꼈다.

물론 정말로 사회에 뭔가 가치를 창출해내는 기업의 투자자들에겐 해당하지 않는 이야기지만, 세상에는 '존재하지도 않는 상품'을 위해 '존재하지도 않는 회사' '존재하지도 않는 투자''존재하지도 않는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그걸로 돈을 만들어내는 투기꾼들이 있음을 무시할 순 없다.

이러한 과정에서 '진짜 좋은 상품'을 만들어 자본주의의 장점을 드러내던 사람들은 소모품처럼 버려진다. 그런 직원은 투기꾼들에겐 불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기업들은 그냥 돈 불리기에 필요한 직원들만으로 회사를 꾸려나가다, 한탕하고 사라진다.

최근 '사이버펑크'를 비롯한 게임들(여기엔 워크래프트3 리포지드, 삼국지14도 포함된다)이, 마케팅으로 기대감만 부풀리다가 실상은 엉망진창인 게임을 내놓는 것과도 관련이 있다. 살펴보면 정말 '좋은 게임을 만들던 직원들'은 퇴사한지 오래다. 회사에는 누군가가 돈을 불리기 위한 직원들만 남아 있다. 그리고 그 누군가는 솟아오른 주가로 이익을 보지만, 엉망진창인 게임을 내놓은 개발사는 '환불 폭탄'을 맞는다.

이건 내가 지어낸 음모론이 아니라, 바로 이 책, 『주가급등 사유없음』에 소개된 실제 사례를 게임 업계에 그대로 적용했을 뿐이다. 특히 '실상은 껍데기고 마케팅만 주력하는 현상'은 『금융의 미래』에서도 크게 비판한 바 있다.

비단 게임 업계 뿐만이 아니다. 어떻게든 원가를 절감하고 매출액을 부풀려서 투기꾼의 돈만 실컷 끌어들이려는 수작은 '맥도날드'와 '맘스터치'에도 있었다고 본다. 맘스터치는 현재진행형이지 않나?

이런 경향이 점차 커지면, 자본주의는 정말로 공회전만 실컷 하다가 마모되어 무너진다는 생각도 든다. 아니 당장, 우리가 사고 즐기고 먹는 상품이 형편없어진다. '페이트 그랜드 오더' 사태도 그러하다. 게임을 좋아하고 그 특징을 아는 사람들이 게임을 관리하는 게 아니라, 대충 좋은 IP하나 주워와서 시가총액이나 불려보려던 장사치들이 게임을 운영하고 자빠졌으니 이 사태가 일어나는 것이다.

더불어 우리가 그런 상품마저 살 돈도 없어진다. 일자리가 사라지거나 일자리를 만들던 회사가 누군가의 탐욕에 날아가버리니까. 심지어 투기장의 이런 '공회전'은 세력 투기꾼들만 하는 게 아니다. 이 투기꾼들은 기업가의 눈에서 탐욕을 읽으면 접근한다고 한다. 혹은 기업가 2세들이 흥청망청 하는 모습을 보고 타깃을 잡는다. 손바닥도 마주쳐야 소리가 나는 것이다. 기업은, 자본주의는 어떤 머저리들이 이야기하듯이 뭔 귀족노조 같은 있지도 않은 허상이나 공산주의자가 넘어뜨리는 게 아니다. 제 발에 자기가 걸려 넘어진다.

마르크스가 말하던 자본주의의 모순 심화와 붕괴는 이런 데서 시작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따라서 자본주의의 건전성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다소 사회주의적이더라도 규제와 개혁이 지속적으로 필요하며, 매일매일 정교해져야 한다는 것이 내 결론이다. 오히려 자본주의가 자본주의를 무너뜨리고, 사회주의가 자본주의를 지켜주는 이 구도가 참으로 아이러니하지만 말이다.

개인 차원에서는 '장기적인 안목'으로 '가치투자'를 하는 것만이, 나도 살고 자본주의 세계를 지키는 방법이라고 할 수 있겠다. '탐욕'을 부리지 않는 것이 오히려 '탐욕'을 충족시켜주는 가장 빠른 길인 셈이다. 불교의 선문답 같지만 세상 돌아가는 이치가 그렇다니 어쩌겠는가.

음... '혁명 로망스' 같은 거라도 써볼까. 혁명에서 왕조를 지켜내는 창작물은 흔하지만, 혁명가들의 낭만과 혈투를 다루는 작품은 드무니까(굳이 말하자면 『룬의 아이들』 시리즈가 거기에 속하겠지만, 메인은 아니지 않나?).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슈퍼리치들에게 배우는 돈 공부
신진상 지음 / 미디어숲 / 2021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번에도 서평 의뢰를 받아 서평을 쓰는데, 매번 비슷한 주제의 책이 오는 것 같지만 흥미롭게도 그 책들 모두가 각각 다른 특성이 있다.

『슈퍼리치들에게 배우는 돈 공부』는 지난번에 서평을 썼던 『금융의 미래』와 비슷한 분야를 다루고 있지만, 이 책이 말하는 것은 『금융의 미래』와는 사뭇 다르다.

『금융의 미래』가 키워드를 중심으로 코로나 이후의 미래에 주목해야할 지점에 대해 짚어준다면, 『슈퍼리치들에게 배우는 돈 공부』는 일종의 ‘터미널’이 되어주는 책이다.

그렇다. ‘터미널’이 되어주는 책. 이런 책이 의외로 많은 도움이 되는데, 시중에 넘쳐나는 여러 책 중에서 정말 읽을만한 책들을 짚어서 시간과 노력을 절약시켜주기 때문이다. 독서에 매우 능숙한 독자가 아닌 이상은 상당한 시행착오를 하면서 ‘좋은 책’을 고르는 능력을 길러야하는데, 이 책은 그 수고를 아껴준다.

하지만 『슈퍼리치들에게 배우는 돈 공부』가 그 자체로는 별 가치가 없느냐 하면, 결코 그렇지 않다. 이 책은 다른 유용한 투자, 금융, 경제 관련 책들을 소개해주면서, 저자 나름의 통찰과 상상을 덧붙인다. 이 상상을 읽어보는 것만으로도 상당한 인문학적 즐거움을 누릴 수 있다. 마치 SF소설을 읽으며 미래의 전개를 상상해보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면서 깨닫게 되는 게 하나 있는데, 세상에서 ‘경제 전문가’를 자처하는 사람과 ‘정말로 부자의 길일 향해 걸어가는 사람들’의 시선은 무척 다르다는 것이다. 『금융의 미래』도 그렇고, 『슈퍼리치들에게 배우는 돈 공부』에서도 일견 사회주의적이라고도 볼 수 있는 사회개혁, 보편복지에 대해 우려할 부분은 하더라도, 애초에 적대적이지는 않다는 것이다. 오히려 세계적인 석학들도 보편적 복지가 ‘어떤 방식으로든 필요는 하다’는 점에 동의하고 있다.

나는 이른바 ‘경제를 배웠다’는 사람들이 복지에 대해 길길이 날뛰는 걸 많이 봐 왔는데, 정말로 ‘돈을 벌고 있는 사람들’의 생각은 완전히 달랐다는 말이다.

더 나아가 정말로 큰돈을 만지고 있는 사람들의 진취적 사고방식은, 삶의 자세를 가다듬는 데에도 많은 도움이 된다. 이 사람들이 어떤 정권의 정책에 대해 비판도 하고 칭찬도 하지만, 절대로 ‘내가 원하는 대로 정부의 정책이 바뀌기만을’ 기다리고 있진 않는다. 내가 원하는 정책을 펼쳐주지 않는다고 ‘현 정부가 실책을 저질러 패망하길 저주’하지도 않는다. 이들의 사고방식은 이러하다. ‘내 마음에 들지 않는 정부 정책에서, 나는 어떻게 적응하여 돈을 벌 길을 찾아낼 것인가?’.

이는 돈뿐만 아니라 삶의 다른 여러 문제들에 대한 접근법에서도 큰 교훈을 준다. 사회적 존재로서의 나도 있지만, 어쨌든 ‘개인인 나’의 존재를 부정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개인인 나’는 어떻게 ‘적응’해서 살아갈 것인가. 가만히 앉아서, 이제까지 해왔던 방식만 고수하면서, 세상이 나에게 맞춰 변하기만을 기다릴 것인가?

경제 뿐만 아니라 삶 자체의 교훈을 얻고자하는 분들께, 이 책을 강력히 추천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