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시드 드림 창비청소년문학 130
강은지 지음 / 창비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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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서평단을 신청했다가 취소한일이 있다. 그런데 며칠뒤에 그책의 서평단에 당첨됐다며 책을 보내주겠다는 문자를 받았다. 시스템상의 오류로 취소가 안됐던 모양이다. 여튼 그렇게해서 책이 별로이면 중간에 덮을수도 있다는 마음으로 시작한 책이 바로 '루시드 드림'이다.



'제 5회 창비X카카오페이지 영어덜트소설상 대상 수상작'이라는 수식어로 장식이 되어 있었는데, 단번에 정확히 무슨의미인지가 와닿지는 않았다. 카카오페이지라면 브런치를 말하는 것 같기도 하고? 영어덜트소설상이라면 대상이 청소년인지, 작가가 청소년인지 잘 모르겠지만 그 중간 어디쯤에 있는, 이러나 저러나 상을 받은 것을 보니 평균이상은 하는 소설이려나, 하는 약간의 기대감이 있기도 하였다. 애초에 그런 호기심으로 신청을 한 것이긴 하다.



이렇게 장확하게 서두에 운을 띄우는 이유는 이 소설이 의외로 좋았다는 말을 하고 싶어서이다. 일단 나는 한국의 소설이나 드라마-영화 등의 창작물에 크게 기대를 갖고 있지 않은 사람이기는 했다. 최근에 본 몇편의 한국드라마로인해 그 오랜 편견을 바꿀때도 됐다는 생각이 들기는 하는데, 소설에서는 아직 이렇다 할만한 괜찮은 소설은 못만나보긴 했다. 사실 내가 괜찮은 소설을 만나기엔 한국 소설을 읽는 일이 가뭄에 콩나듯 한 일이긴 하지만 말이다. 읽은 것도 별로 없고, 사실상 잘 모른다고 말하는 편이 솔직할 것 같기는 하지만, 여튼 읽은 소설들은 내게는 다 그냥 그랬다.



이 책은 뭐라 설명하면 좋을까. 문장력 자체는 나쁘지않은 정도라거나 혹은 매끄럽다고 할만한 정도이다. 많은 문장이 밑줄을 긋거나 적어두고 싶은 그런 책은 아니라는 말인데, 책이 굳이 그래야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기는 한다. 소재와 스토리라인은 어떻게보면 유치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기는 하다. 사람들이, 대체로 어른들이 전염병처럼 잠에 빠져들어서 깨어나지 않는 일이 벌어지니 말이다. 여튼 설정 면에서는 크게 흥미롭지는 않았지만 다 읽고나서는 그나름대로 탄탄한 구성과 전개를 가졌다는 생각이 든다.



처음에는 좀 거슬린뻔도 했지만 나중에는 마음에 들어진 것이 문장의 어조였다. '요즘' 젊은 애들이 쓰는 말투와는 다르게 아이들이 조심스럽고 서로를 배려하는 표현과 어조가 이 소설의 전반적인 분위기를 형성했다. 초반에 어른들이 모두 잠들고 거의 아이들만 하루하루 연명해가고 있는 상황이 마치 좀비물을 연상케했지만, 책 전반을 아우르는 그 어조가 이 소설을 전혀 다른 느낌으로 다가오게 만들었던 것이다. 다 읽고보니 그것이 참 신비로운 능력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이 소설이 마음에 들었던 가장 큰 이유를 지금 말하려고 하는데, 바로 이 소설이 다 읽고보니 비유적으로는 '각성', 잠에서 깨어남에 대한, 사실상 청소년의 어른됨, 성장에 관한 소설이었다는 점이다. 소설의 몇가지 요소들이 상호작용하면서 끊임없이 새로운 징검다리를 놓으며 변주를 하는 느낌이다. 내게 그 요소들은, 2029년이라는 '가까운 미래', 어른들이 없는 '아이들만의 무법천지', 핸드폰, 전기가 없는 세상, 잠 듦과 깨어남 혹은 깨움, 보살핌과 사랑, 뭐 그런 것들이다. 어디하나 도드라진데가 없는 소설이지만, 바꿔말하면 무엇하나 두드러진데가 없는 소설이기도 한데, 읽고나니 작은 울림이 점점 커진다는 것이 참 마음에 든다. 내게 이 소설은, 우리 세대는 생각하는 것만큼 형편없지 않아요, 라고 대변을 하는 것 같은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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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든 하다 보면 뭐가 되긴 해 - 루마니아의 소설가가 된 히키코모리
사이토 뎃초 지음, 이소담 옮김 / 북하우스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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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키코모리가 루마니아어를 독학해서 루마니아소설가가 되었다고?? '뭐든 하다보면 뭐가 되긴 해'라는 사이토 데초의 책 소개를 보고 든 생각이다. 소설보다도 더 드라마티한 이야기일 것 같아서 읽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더구나 나는 10년넘게 독일어라는, 루마니아어보다는 아니지만 비인기언어를 지지부진하게 손에서 놓지 못하고 있는 나름의 언어공부 마니아아닌가. 어떤 계기로 루마니아어를 접했고, 어떻게 배웠는지, 그리고 어떻게 그 언어로 작가가 되었는지 알아보고 싶었다.

책을 읽다보니 지은이를 묘사하는 일본어단어는 히키코모리보다는 오타쿠가 어울린다고 생각이 든다. 그는 보통 생각하는 대인기피증을 가지고 방에서만 생활하는 히키코모리의 이미지와는 달리 외출도 하고, 온라인과 오프라인 상에서 사람을 만나고 대화도 나누고, 사실 그가 루마니어라는 접하기 어려운 언어를 배울 수 있었던 것도 그러한 사람과의 온오프라인상에서의 소통으로 가능했기 때문이다. 책속에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은 넓은 의미에서의 히키코모리라고 여러번 변명같은 설명을 늘어놓기는 했지만 말이다.

뭐 히키코모리든 아니든 그게 크게 중요하다고 생각되지는 않는다. 앞서 오타쿠라고 묘사했듯이 이 책을 보면 지은이가 어떻게 한 언어에 빠져서 그 언어로 소설가까지 될 수 있었는지 알 수 있는데, 그게 이 책의 매력이다. 말하자면 크게 가지에 주목해서 읽어볼 수 있는데, 첫번째가 어떻게 하면 하나의 언어를 마스터할 수 있는가이고 두번째는 어떻게 하면 작가가 될 수 있을까, 세번째로는 하나의 주제로 묶기 어려운 작가의 루마니아 언어와 문학 그리고 그외의 것들에 대한 생각들이다.

지은이가 어떻게 루마니아어를 배우게 됐는가 하면, 그는 영화광이었다. 여러 영화를 접하다가 루마니아 영화를 접하고, 그에 매료되어 언어까지 배우게 된 것인데, 원래는 독서광에서 건강상태가 안좋아지면서 영화쪽으로 관심이 옮겨갔다고 한다(내 기억이 맞다면 말이다.) 영화광이라는 데서 반가움이 일었다. 나도 책보다는 영화를 보는데 20대의 많은 시간을 보냈기 때문이다. 내가 한창 영화를 보던 시기에 필름포럼이라는 마이너한 영화들을 상영하는 극장에서 보았던 아마도 루마니아 영화인듯한 영화 두편이 떠올랐는데, 그중 하나가 이 책의 말미에 소개되어 있는걸보니 내 기억이 맞는 모양이다. 바로 '라자레스쿠씨의 죽음'이다. 다른 한편은 '그때 거기 있었습니까'라는 블랙코미디영화인데, 이 영화는 소개가 안되어 있는게 아쉽다. 필름포럼에서 아무도 없는 영화관에서 그야말로 '나 혼자'보았기에 절대 잊을 수 없는 영화로 남았는데 말이다.

나는 좀 더 시각적인데 매료되는 편이어서인지 언어에까지 주목하지는 못했는데, 저자는 아니었던 모양이다. 아마도 루마니아어가 일본어와 매우 다른 언어였기에 더 끌렸을지도 모르겠다. 나도 서양언어를 보면 다르기에 배우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적이 있으니 말이다.

여튼 그렇게 관심을 갖게된 루마니아어인데, 주목해볼점은 어떻게 집밖에 나가지 않고 그 언어를 마스터했는지이다. 그것은 요즘세상이어서 가능했던 일 같기는 한데, 바로 페이스북과 넷플릭스를 이용하는 방법이다. 맨 처음에는 일본에서 파는 루마니아어 교재를 사서 공부를 하고 기본적인 것을 배웠을 테고, 그 다음에는 페이스북에서 루마니아 사람들 5000명 가량에게 친구신청을 하고 말을 걸었다고 한다. 사실 이건 크게 대단한 방법인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그것을 쭉 이끌어가는 것은 끊임없는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부분이다. 요새는 페이스북이 아니어도 원어민을 만나 대화할 수 있는 창구는 많이 있다고 생각이 든다. 나도 텐텀이나 헬로우톡과 같은 언어교환어플을 통해서 독일원어민과 대화를 해본적이 있는데, SNS와 친하지 않은 나는 대화에 시간을 쏟는 일이 상당히 피곤하게 느껴져서 관계가 좀 형성된다 싶을 무렵 그만두게되었다. 사실 그렇게 목표언어로 대화하는 것 자체가 목적이 되고 즐거움이 되어야하는데, 나는 잘 안되었다.

작가가 루마니아어로 소설가가 될 수 있었던 것도 페이스북의 인연 덕분이었다. 많은 사람들에게 나를 알리고 인연을 쌓아가다보면 내가 하고자하는 것에 닿을 가능성이 많아지는 것 같다. 목표언어로 글을 쓰고, 그것을 SNS올리고, 그것에 대해 원어민들에게 피드백을 받고, 그러다보면 글도 늘고 내용이 좋으면 잡지에 실리기도 하고, 글이 모이면 책으로도 내고. 자연스러운 수순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물론 실행으로 옮기는 것은 쉽지만은 않은 일일테지만 말이다.

이 책의 절반의 분량동안 나온 내용이다. 나머지 절반동안은 루마니아 언어에 대해서, 문학에 대해서, 그리고 저자의 이런저런 생각들에 대해서 자유로운 에세이가 이어진다. 흥미로운 내용도 있었지만 솔직히 좀 두서가 없다고 생각이 드는 부분이 많았고, 종종 너무 디테일에 몰두한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는데, 선입견을 갖는 것은 좋지 않지만 그런점이 일본인 답다고도 느껴졌다. 한 언어에 깊이 빠져본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고민으로 느껴지기는 했다.

또한 그는 루마니아 뿐아니라 왠지 소외된듯한 동유럽의 언어와 문학에 대해서 안타까움과 애정을 드러냈는데, 공감이 되었다. 현재에 서유럽국가들이 선진국이라고 해서 더 우월한 문화를 가졌다고 볼 수도 없을 것이고, 그들이 경제적으로나 문화적으로 발달할 수 있었던 것 또한 다분히 우연의 산물이라고 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동유럽에는 (그외의 지역에도 마찬가지고) 소외된 많은 나라들, 문화들이 있을 것이고 많은이들이 주목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그들의 문화가 점점 설자리를 잃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다양성이 사라지는 것은 슬픈일이고, 좋은일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많은 영화를 봐오면서 그나라의 색을 담아 내게 새로운 충격을 주었던 다양한 영화들이 떠오른다.

동유럽의 정서는 주로 폴란드 감독인 크쥐시토프 키에슬롭스키의 영화에서 받았다. 전쟁과 집시의 삶에 대해 다룬 영화를 만든 유고슬라비아의 에밀 쿠스트리차 감독의 절절한 영화들. 고요하고 따뜻한 영화들의 스페인 감독 빅토르 에리세, 적막한 어둠속의 희망의 등불같던 벨기에 감독의 바베트의 만찬. 투박하지만 강인한 사유의 힘을 자랑하고 요구했던 러시아의 영화들. 또한 공간과 더불어 다양한 시간의 스펙트럼이 영화속에서 더욱더 다양하고 입체적인 세상을 만들어냈던 것이 내가 영화에 빠져들 수밖에 없었던 점이었던 것 같다. 이 책은 물론 영화에 대한 책은 아니었지만, 오랜만에 나는 무엇에 매료되어 그토록 영화를 보았던가 생각해보게 되었다.

책에 대한 총평은, 수다쟁이를 좋아하는 사람에게 추천할만한 책이다. 물론 앞서 여러번 이야기했듯, 하나의 외국어를 마스터하고 그 언어로 작가가 되는 방법을 알아내기에 이보다도 더 좋은 책은 없을 것 같다. 다만 후반부 절반에는 나처럼 작가의 맥락없는 다양한 지적호기심에 큰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면 좀 지루할 수 있다.

개인적인 생각인데, 제목이 나는 좀 비문같이 느껴지긴 했다. '뭐든 하다보면 뭔가 되긴 해'라고 해야 맞는거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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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보는 눈, 뉴스툰 1 - 동아시아 세상을 보는 눈
뉴스툰(이강혁) 지음 / 펜타클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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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식이 부족하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정치나 경제분야에 특히 그런데 이유를 말하자면 관심이 덜한 편이고 그래서 그쪽분야에 대해서는 책도 다른 매체도 관심갖고 보지를 않았었다. 그러나 아이들을 키우는 입장에서 기본적인 것은 알아야하지 않나 싶은 생각에 다양한 분야의 책을 접하려고 노력중이다. 이번에는 정치와 경제분야에서 나와같은 정알못이나 경알못에게 혹은 정치를 처음 접하는 청소년들에게 쉽고 재미있게 대략적인 현재 정세를 파악하게 해주는 책을 만나서 소개해보고자 한다.

바로 '뉴스툰'이라는 책이다. 글과 그림도 '뉴스툰'이 쓰고 그렸다고 되어 있는데, 이강혁이라는 분의 필명인 것 같다. 글도 가독성이 있지만 그림까지 그렸다니 재능이 많은 분인 것 같다.

저자 설명을 보니, 대학에서 언론학을 전공했다는 것 이외에는 별다른 경력은 없어보이는데, 2022년부터 인스타그램에 '뉴스툰'을 연재한 것을 통해서 책까지 쓰게 된 것 같다. 미디어를 통해서 입지를 굳히고 책도 썼다니 참으로 MZ세대다운 성공방식이 아닐까 싶다.

목차를 봐도 명료하다. 현재에 주목해볼만한 이슈가 되는 사건이나 현상을 11가지를 꼽아서 만화와 함께 다루고 있다. 정치 경제분야에 관한 것은 시시각각 변하기에 예전에 쓰인 글은 사실 읽을 가치가 떨어지는데, 이 책은 러-우 전쟁부터, 한국의 0.6 출산율, 슈퍼 엔저가 끝나가는 상황 등 최근의 이슈들에 대해 다루고 있어서 좋았다.

보이는 바와같이 이렇게 만화를 통해서 쉽고 재밌게 상황을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왔다. 만화는 청소년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실은 것 같은데 효과가 좋다. 책을 다 읽으니 현재 우리나라를 둘러싸고 중요한 이슈가 무엇인지 대략적으로 파악이 되었으니 말이다. 만화만으로 되어있는 것은 아니고, 만화뒤에 글로써 부족한 설명을 채우고 있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청소년들에게 쉽게 정치 경제상황을 접하게 하기 좋은 책이고, 물론 나와같은 상식이 부족한 사람도 재밌게 읽기 좋기에 추천한다. 다만 맨 마지막에 내 생각에는 수정해야할 어휘가 등장하는데, 바로 '붙어먹다'라는 표현이었다.

'붙어먹다'라는 말은 성행위를 상스럽게 표현한 말로 알고 있는데, 저자는 아마 정확한 뜻을 모르고 쓰지 않았을까 싶다. 모르고 썼든, 아니면 알고 썼든 어느경우라도 책에는, 또한 청소년 대상의 책이라면 더더욱 부적절한 어휘같아서 수정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점을 제외하면 추천할말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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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예찬 - 문학과 사회학의 대화
지그문트 바우만.리카르도 마체오 지음, 안규남 옮김 / 21세기문화원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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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고 간만에 이런 느낌을 가져본다. 너무도 절절히 공감이 되어 희열을 느끼면서도, 그 공감이 되는 내용이 절망적이라 뼈아프기도한 그런 느낌 말이다.



이 책은 지그문트 바우만과 리카르도 마체오라는 두명의 학자간의 편지글로 이루어진 대화를 엮은 책이다. 애초에 책으로 엮을 생각으로 서간문이 오고간 것 같다.



내게는 두명 다 처음듣는 이름이었는데, 책을 다 읽고보니 왜 여태까지 몰랐을까 싶다. 두 저자에게는 지그문트 바우만은 1924년생이고 리카르도 마체오는 1955년생으로 30년이 넘는 나이차이가 존재한다. 그래서인지 지그문트 바우만을 향한 리카르도 마체오의 문체에는 존경의 마음이 담겨있다는 느낌을 많이 받기는 하였다.



책의 내용과는 크게 연관성은 없을 수 있지만, 지그문트 바우만의 생애에 눈길이 가기는 하였다. 독일어 이름인듯해보이고, 1924년 폴란드에서 태어난 유태인이라기에, 올해 초에 읽었던 '나의 인생을 쓴, 비슷한 시기에 또한 폴란드에서 태어난 유태인인 마르셀 라이히-라니츠키의 삶과 비슷한 과정을 겪었을거라는 생각이 들어서 읽고 싶은 마음이 들었었다. 라이히-라니츠키는 폴란드의 게토에서 목숨을 걸고 탈출하고 숨어서 지내면서 나치 시기를 견뎠다. 지그문트 바우만은 나치를 피해 소련으로 도피했다고 한다. 얼핏 본 그의 저작중에 홀로코스트나 반 유대주의에 대해 쓴 책이 있는 것 같아서 나중에 기회가 되면 읽어보고 싶다.



지그문트 바우만은 책의 몇군데에서 독일어가 인용된 것을 보면 당시 많은 유태인이 이.삼중언어 사용자였듯 독일어를 할 수 있을 것 같지만, 이 책은 영어로 쓰인 것 같아보인다.



책은 무엇에 대한 내용인고 하니, '문학과 사회학과의 대화'라는 부제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다. 두명의 저자가 한명은 학자이고 한명은 소설가인 것은 아니다. 두명의 학자가, 사회를 반영한 소설과 사회를 연구한 사회학이 서로 떼려야 뗄 수 없는 마치 자매같은 관계로서 둘이 서로 같은 배경에서 태어나 같은 목적을 향해 나아간다는 점을 바탕으로 대화를 나눈 것이다.



그러한 문학(과 더불어 문화-예술 장르)과 사회학의 관계에 대한 내용은 머리말과 '두 자매'라고 하는 첫번째 챕터에 나온다. 그 다음부터 이어지는 내용은 오늘날 주목해볼 각각의 사회학적 논점과 이슈들에 대해서 문학 혹은 다른 예술장르에서는 그부분을 어떻게 반영하고 있는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그 어조는 기본적으로 비판적이고 비관적이고 역설적이다.



"오늘날 우리는 우리가 누구이고 무엇을 원하는지를 표현할 말을 갖고 있지 못할 뿐만 아니라 현란할 정도로 매력적이고 유혹적이지만 사실은 공허하고 생명 없는 말들을 배가 터질 정도로 강제로 폭식당하고 있습니다. " 22쪽



위 인용문은 '두 자매'라는 첫번째 챕터에 있는 내용인데, 스마트폰을 통한 인터넷 및 SNS에 대한 접근과 온갖곳에서 접하는 광고를 접하는 삶, 물질 만능주의나 소비지상주의에 대한 비판인 것 같다.



제 3장인 '진자와 칼비노의 비어있는 중심'에서는 '조각보 자아'라는 흥미로운 개념이 나온다. 미국의 경우 미혼모에게서 태어난 아기도 증가하고, 이혼율도 50%에 육박한다고 하는데, 어른들은 점점 더 바빠지고 아이들은 어른 없는 집에서 시간을 보내는 일이 늘어난다고 한다. 부모가 아니라 구매해서 제공된 서비스를 통해서 각각의 분야에 각각의 전문가들에 의해 길러진 아이들이 일종의 조각보자아를 갖게된다는 설명이다.



"시장은 '우리의 자아 이해에까지 침투했다. 개인 삶이 시장화되면서 전에는 느낌에 따라 자연스럽게 하던 일상적인 행위들- 결혼 상대를 결정하고 아기 이름을 짓고 우리가 원하는 것을 알아내는 일 같은 것들 - 이 이제는 돈을 내고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일이 되었다.'" 83쪽



한국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는 않을 것 같다. 상업주의는 사람들이 필요로하는 점점 더 세세한 욕구에 맞춘 서비스를 들고나와 새로운 시장으로 파고든다. 스마트폰과 온라인을 통해서 점점 더 그것이 쉬워지고 있기도 하다. 책에서는 이러한 현상과 더불어 젊은 세대가 사람과 대면활동보다 작은 스크린 화면을 통해 세상을 접하는 일이 많아진 것을 비판한다.



4장의 '아버지 문제'의 내용도 흥미로웠다. 현대에는 점점 더 아버지의 공격성을 비롯해 권력이 약화되고 있다는 내용이다. 사냥하고 채집해서 먹고 살았던 수렵채집인에서, 농민이 되고 산업화가되어 공장노동자가 되었다가 현대의 아버지에 이르는 일련의 과정에서 '아버지'가 가진 독재적이고 카리스마 있는 리더쉽은 점점 더 필요 없게 되었다는 것이다. 현대가 더이상 남성성을 필요로하지 않는 사회가 되었다고도 볼 수 있을 것 같다.



위 주제에 대해서 남편과도 종종 이야기를 나눈 바 있다. 남자들은 돈버는 기계가 되어 평생 가족들을 부양하다가 죽게된다는. 자연속에서 일부 거미나 사마귀에서와 같이 짝짓기를 하고 암컷에게 먹히거나 개미에서처럼 짝짓기를 위한 쓸모이외에는 존재의 의의가 없어보이는 수컷들처럼 인간에서도 점점 더 남성적이고 폭력적이고 위험한 것을 기피하는 사회분위기로인해 '남성적'인 남성이 설자리가 점점 없어지는게 아닌가 싶다. 나의 둘째아이도 아들인데, 더 어릴때 아주 순했던데 반해 커갈수록 산만하고 위험한 장난을 하고 개구쟁이가 되어간다. 폭력적인 순간을 접할때마다 강하게 바로잡아주려는 나의 모습을 보며, 이것이 일종의 거세욕구와 같다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다치지 않고 안전한 것이 나쁘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공격성은 남자아이에게 있어서 본능적이기도 하다. 그런것을 계속 억누르다보면 어느 순간 터져버리지 않을까? 남성들의 억눌린 폭력성으로 전쟁과 학살 같은 것들이 발생하는 것은 아닐까 하고 말이다.



"그래서 우리가 살고 있는 모성적 세계에는, 즉 전문가나 심리 치료사의 사무실에서 구원을 찾는 세계에는, 자식들의 마음 속에 갈라진 틈이나 심연이 있슴니다. "(우리가) 아버지라는 존재를 갈구해서 독자를 찾았던 것처럼, 우리의 아버지 찾기에 독재에 대한 은밀한 향수가 포함되어 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다. 오늘날 우리에게 아버지라는 존재를 찾게 만드는 불안은 우리를 독재자에게로 이끈 불안과 심리적 친척이다."" 93쪽



6장의 '블로그와 중개자의 소멸'에서 블로그는 소셜네트워크를 비롯해 온라인 상의 피상적인 소통과 읽기 쓰기라고 보면 될것 같고, 중개자는 확실히 의미가 와닿진 않지만, 소셜네트워크와 반대되는 쓰기와 읽기라고 볼 수 있는, 깊이를 담은 문학작품 정도로 이해를 하였다. 온라인 상에서는 쓰기도 읽기도 피상적이 되어간다. 스마트폰이 제공하는 세상은 빠르고 편리하며, 그속에서 읽는 글은 1초면 내용을 훑을 수 있는, 약자들로 넘쳐나며 깊이 생각해볼 필요도 없는 단순화된 내용들 뿐이다. 이런 상황에 대해 저자는 '성냥과 라이터가 있는 세상에서 부싯돌과 부싯깃으로 돌아갈 가능성은 전혀 없'다며 비판한다. 그 다음 페이지에서 저자가 생각하는, 우리에게 필요한 삶의 태도에 대해서 나온다.





"온라인 안전지대가 내거는 복잡하고 난해하고 힘든 사랑으로부터 우리를 해방시켜주겠다는 달콤한 약속은 돌이킬 수 없는 파괴적인 결과를 초래할 것입니다. 사랑은 행복이지만 오랫동안 수많은 사례들이 보여 주었듯이 행복은 바로 먹을 수 있는 음식처럼 다 차려진 상태로 오는 경우가 거의 없으며 아무 고통 없이 오지도 않습니다. 고통은 행복의 반대말이 아닙니다. 힘겹게 고통을 이겨 내는 것이야말로 사랑이라는 관계에 필수적입니다. 고통 없는 사랑은 거짓말이고 사기입니다. 알코올 없는 맥주, 칼로리 없는 음식, 하늘에서 떨어진 동전 같은 것입니다. 사랑은 결코 행복을 보장해 주는 것이 아니고 행복에 이르는 여러 길 중 하나이지만, 사랑이 없으면 행복은 거의 낯선 나라, 사실 상 지도에 없는 미지의 땅이 되고 맙니다." 134쪽



사랑과 행복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지만, 사실상 삶의 모든 성취에 대해서도 적용되는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뒤에 이어지는 내용에서도 비판은 이어진다. 현대로 올수록 자폐증이 늘어간다는 것, 알츠하이머도 늘어간다는 것. 이러한 것이 스마트폰과 온라인 세상과 무관하지 않다는 것. 우리가 점점 더 편리한 문물에 우리 뇌가 사용될 자리를 내어줄 수록 우리의 뇌는 그만큼 쓸모가 줄어들어 무능해진다는 이야기에 아차싶었다. 내가 점점 기억력이 떨어지는 것이 출산과 육아때문이 아니라 스마트폰 때문일수도 있겠다고 말이다. 비판은 또한 소비사회에 대한 것으로 이어진다.



"우리 사회에서 매일 매일의 경험은 개인에게 새로운 장난감과 마약의 끝없는 공급을 원하고 필요로 하도록 가르친다." 172쪽



뒤이어 트위터 문학의 시대에서 소설이 사라지고 있다고 경고하기도 한다.



소설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았는데, 이 책은 앞서 언급한 문제들을 논의하면서 소설에서 그 문제점을 잘 표현한 작품들을 많이 소개하기도 하였다. 기억나(고 내가 아)는 작가들은 지난해 읽었던 '인생수정'의 작가 조너선 프랜즌이 있었고, '눈먼자들의 도시'의 주제 사라마구에 대한 언급도 있었다. 혹은 이름만 듣고 읽어보지 못한 미셀 웰벡에 대한 언급도 많이 나오는데, 읽어보고 싶다.



책의 모든 내용을 다 언급하고 넘어갈 수는 없을 것이다. 내 머릿속에 여러 생각이 오간 것을 잘 기록해두고 싶어서 욕심을 냈지만, 내 언어가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 뿐이다. 그렇더라도 읽어보면 영혼의 자양분을 얻을 책임은 분명하다. 어려워보이는 내용이지만 가독성이 아주 나쁜편은 아니다. 번역체이기도 하고, 문장이 원래 좀 복잡한지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천천히 다시 읽어보고 음미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 나쁘지 않다.



또한 이 책은 쓰인지 얼마 되지 않았다는 점도 추천할만한 점이다. 동시대의 이야기를 하고 있으니 말이다. 내가 읽고 기억하는 인문학 저서들이 대부분 20년 전후의 것들인데, 이 책은 현대인들의 문제를 지적한 만큼 최근의 저작이기에 지금 우리가 느끼는 삶이 잘 반영되어 있다고 봐도 될 것 같다.



읽을 수록 두 저자가 하고자 하는 말에 공감이 간다. 아직 스마트폰이 나오기 전인 대학시절의 나와 지금의 나를 비교해본다. 당시에는 소위 좀 어렵다는 책들을 많이 읽기도 했고 재밌었다. 현재는 집중력이 많이 저하됨을 느낀다. 그것이 단순히 가족을 이루고 아이들을 키우고 하면서 독서환경이 달라져서라고 생각이 들지는 않는다. 스마트폰은 그것을 보지 않고 옆에 두기만 하더라도 집중력이 저하된다는 연구결과가 있다고 한다. 성냥을 놔두고 부싯돌을 사용하는 삶으로 돌아갈 수 있겠냐고 반문하는 저자들의 말처럼 스마트폰이 없는 삶이 가능하기는 할까 싶지만, 한편으로는 언젠가 도달해야할 목적지 같아 보이기도 한다. 우리에게 편리한 모든 것을 버릴 때라야만이 인류는 영속해나갈 수 있지 않을까. 그것이 불가능해보이는 만큼, 인류의 영속 또한 머나먼 길이 되지 않을까 하는 불길한 생각을 감출수가 없다.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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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레한드라 김의 가면 증후군과 솔직한 고백 서사원 영미 소설
패트리샤 박 지음, 신혜연 옮김 / 서사원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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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파리올림픽을 보며 새로운 현상을 목격했다. 올림픽에 트랜스젠더 여성이나 남성이 출전한 것도 나는 처음 보는데, 그 선수들은 생물학적 성이 무엇이었던 간에 자신이 되고자 하는 성 쪽으로, 말하자면 여성이라고 생각하면 여성 선수로 출전하여 경기를 했다는 점이다. 그뒤로 종종 유튜브에 올라오는 미국의 법정공방을 보면 비슷한 일들로 이슈가 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즉 한쪽은 생물학적 성보다 본인 스스로 생각하는 정체성을 반영한 성이 존중되어야 한다는 입장인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그것은 앞으로 소개하는 책에서 보여지는 바와 같이 성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인종이나 계급 등 그 어떤 것에 대해서도 사람을 차별하지 말하야한다는 생각으로 확장되어가는 것 같다. 그것이 미국의 소위 차별금지법안까지 이르게 된게 아닌가 싶다.

모든 인간을 동등하게 존중한다는 이러한 이러한 생각과 법안은 어떻게도면 인류애적이고 선진적이며 모두가 향해야할 올바른 방향 같아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그러한 기류가 과연 이상적인 것인지, 일상속에서 어떠한 문제와 모순을 가질 수 있는가에 대해서 좀 더 깊이 들여다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위의 언급한 서두가 무엇을 위한 것이었냐 하면 바로 이 소설을 소개하기 위함이었다. 가면증후군이라는 내게는 좀 생소한 용어를 전면에 내세운 이 책에 대해서 뜬금없이 차별금지법을 언급하는 이유는 내가 느끼기에 가면증후군보다 이 책을 소개하는 더 중요한 키워드인 것 같아서였다.

이 책은 한국계 미국인인 패트리샤 박의 소설이다. 뉴욕 출신인 그는 현재 아메리칸대학교에서 글쓰기를 지도한다고 한다. 뉴요커 등 다수 매체에도 글을 쓰고 이전의 저작 '리 제인'도 호평을 받고 있다고 하는데, 이 소설을 읽어보면 그 이유를 알 수 있을 것 같다.

지은이의 이름은 패트리샤 박이고 이 책의 제목에 언급된 이름은 '알레한드라 김'이다. 뭔가 비슷해보이는 두 이름이다. 소설속에서 알레한드라 김은 아르헨트나로 이주했다가 거기서 다시 미국으로 이주해서 살고 있는 한인 3세쯤 된다. 말하자면 그녀의 부모는 아르헨티나 출신이고 그녀는 아르헨티나에서 미국으로 이주해서 정착한 부모에게서 태어난 것이다. 그러니 그녀는 혈통?은 한국인이지만, 부모의 정체성과 모국어는 아르헨티나 쪽의 스페인어, 하지만 그녀는 미국인으로 세 가지의 정체성이 혼란스럽게 섞여있다고 할 수 있다.

작중에서 알레한드라 김은 한국나이로보면 고3쯤 되는, 입시준비로도 바쁘지만, 아직 성인이 되기 이전의 나이로 또래관계도 중요하고 정체성에 대해서도 혼란스러울 나이라고 할 수 있다. 그녀는 작가와 마찬가지로 뉴욕 퀸즈에서 태어났다고 하는데, 주인공이 작가 자신을 반영한 것이 아닐까 싶은데, 작가도 서문에서 그 점을 고백하고 있다.

다시 소설로 돌아가 알레한드라 김은 퀸즈 출신이지만 공부를 잘해서 뉴욕에서 상류층들이 다니는 학교에 90프로 재정지원을 받아서 다닐 수 있었다. 그렇기에 반친구들은 그녀보다 더 좋은 도시락을 싸고, 좋은 옷을 입고, 좋은 집에서 사는 아이들이라고 할 수 있다.

가정경제가 넉넉하지 않을 뿐더러 알레한드라(이하 앨리)는 위에 언급했듯이 아르헨티나인와 한국인과 미국인이라는 세가지 정체성이 혼란스럽게 겹쳐진 아이다. 인종차별까지는 아니더라도 그녀의 외모를 보면 아시아인에게 가질 수 있는 편견을 떠올릴 수 있겠지만, 그녀는 한국어도 할 줄 모르고 미국에서 태어난 미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 그렇기에 그녀는 학교에서 경제적으로나 인종적으로 두드러지지 않으려는 노력을 가면증후군으로 표현한게 아닐까 싶다.

하지만 내가 가면증후군을 이 책에서 중요한 키워드라고 생각하지 않은 이유는 책에서 반영된 앨리의 가면증후군은 명칭에서의 병리적인 느낌과는 다르게 그렇게 병적으로 느껴지지도 않고, 그 나이대 아이들이 흔히 또래의 시선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자신에 대해서 열등감을 갖는 정도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도 생각되기 때문이었다.

이 책은 다른 면에서 훨씬 흥미로웠는데, 바로 차별금지법의 논란 속의 미국을 잘 표현했다는 점이다. 미국의 차별금지법의 역사는 1964년부터로 꽤 오래된 것으로 보이는데, 최근에는 여러가지 판례 등으로 좀 더 확대해서 적용되기 시작한 것 같다. 캘리포니아 주에서는 미성년의 아동들에게 성을 스스로 선택하게 하여 실질적으로는 불임이 되게 만드는 화학요법을 실행하고 있다고도 들었다.

성정체성에 따른 차별 금지는 앞서 언급한 올림픽에서의 문제와 더불어서 일상속에서는 공공시설에서 화장실이나 샤워실같이 남성과 여성의 단 두개의 성으로 구분하는 시설에서 문제가 두드러지고 있는 것 같다. 소설에는 이러한 부분들이 녹아 있다. 그 외에도 미국에서의 이제까지 대두되었던 큰 사회문제중의 하나가 인종차별이었다고 하면 이제는 인종을 가지고 차별하지 않고자 하는 문제로 인해 중산층의 백인 남성은 존재 자체만으로도 죄인이 되는 것 같은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다. 모든 사람을 각각의 정체성을 고려해서 존중한다는 기치는, 반대로 말한마디 잘못하면 직장에서 짤릴 수도 있는 날카로운 분위기로 바뀌어가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는 깊이 생각해보아야할 부분 같다. 한국에서는 차별금지법이 아직 발효되지는 않은 것으로 안다. 하지만 비슷한 문제로 아동학대를 경계하다보니 지나치게 교권이 추락해버린 상황을 들 수 있을 것 같다. 모든 아이들을 존중하려다보면 자칫 무엇도 권위로 강제할 수 없는 사회가 되어버릴 수 있을 것 같다. 이것은 시대의 큰 변화기류 중 하나로 보인다.

하지만 차별금지법이라는 키워드 하나만으로 이 책을 설명하는 것도 부당해보인다. 재미있고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 요소를 많이 갖고 있기 때문이다. 사회문제를 잘 드러낸 것 이외에 고3 수험생의 일상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부분이다. 한국인에게는 미국 이민 3세?들의 삶이기에 그점도 재밌게 읽었다. 그리고 나는 개인적으로는 앨리의 모습이 시골학교에서 뜬금없이 좋은 대학에 들어가 공부 깨나 했던 다른 아이들 사이에서 1등 한번 해보지 못했던 그저 평범했던 내가 덜 두드러지기 위해 긴장하고 노력했던 내 대학시절을 보는 것 같아서 공감이 많이 되었다. 가정교육을 잘 받아 아는 것도 많고 공부하는 법도 잘 알고 자신의 의견을 잘 피력할줄도 아는 아이들이 인성까지 좋았던 나의 대학교때와 정확하게 오버랩되었다.

또한 상실을 다룬 소설이라는 면에서 얼마전 읽었던 '겅클'과 비교를 하게 되는데, 그 소설에서 가족 구성원의 상실을 마치 하나의 소재처럼 가볍게 다루고 넘어갔다면, 이 소설에서는 좀 더 깊이 다루고 있다는 면이 좋았다.

"우리는 부모의 상실을 절대 '극복'할 수 없다. 그 상실감은 끈질긴 그림자처럼 종일, 매일 우리 곁에 머문다. 하지만 가끔 운이 좋은 날이 있다. 그럴 땐 그 그림자 같은 것이 잠깐 사라진다. 태양이 평소보다 밝게 빛나고, 주위를 따뜻한 빛이 감싸는 듯한 느낌이 든다. 439쪽"

내가 느끼는 상실의 감정도 비슷하다. 그렇기에 책을 읽으며 작가는 자신의 깊은 곳의 이야기를 쓴 것이 맞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되었다. 직접 겪지 않았다면 느낄 수 없는 부분이 많았기 때문이다.

이 책이 마음에 들었던 면이 여러가지 요소를 다채롭게 녹여냈다는 점인데, 그 중 한가지가 소설에서는 빠질 수 없는 사랑이야기이다. 그리고 또래들과의 우정에 관한 이야기도 잘 녹여냈다. 모든 요소를 자연스럽게 은은하게 풀어낸 것도 마음에 든다. 그렇기에 440페이지의 비교적 두꺼운 소설이었지만 3일만에 다 읽을 수 있었단 것 같다. (소설은 많이 안읽지만) '우편엽서'이후로 마음에 드는 소설을 만나서 참 기쁘다. 기회가 된다면 영어로 한번 더 읽고 싶다.

"엄마의 우울한 기분이 온 집안으로 퍼져나갔다. 마치 변기 수조에 냄새나는 물이 가득 찬 느낌이었다. 이 형편없는 비유처럼 나는 열쇠를 움켜쥐고, 변기 물 내리듯 집 밖으로 나와 마리아 이네스 몬토야 공원으로 향했다. 61쪽"

"나는 열차로 돌진했다. 기억들이 양파 껍질처럼 한 겹씩 선명하게 분리되면서 그 매운 기운에 어쩔 수 없이 눈물이 났다. 나는 눈물을 참으려고 눈을 깜박였다. 147쪽"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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