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극을 꿈꾸다 - 우리의 삶에서 상상력이 사라졌을 때
배리 로페즈 지음, 신해경 옮김 / 북하우스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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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떠올리면 나는 언제나 왠지 모를 부채감 같은 걸 느낀다. 그 이유를 곰곰히 생각해보면, 아마도 그것은 나의 어린시절의 경험때문이 아닌가 싶다. 어린시절에 나는 3대가 모여서 자연에 터를 잡고 농사를 지으며 거의 성인이 될 때까지 살았다. 그렇게 어린시절에 자연과 함께 했던 삶과 정반대로 성인이 되자마자 대도시로 옮겨가고, 어린시절에 느끼고 체득했던 것과는 동떨어진 삶을 살고 있는 것이 아마도 내게 중요한 것을 멀리하고 있다는 의미에서 부채감을 주는 것 같다. 지금은 나는 자연과 가깝지 않다고 말하고 있긴 하지만, 자연과의 경험이 어떤 것인지 아마도 나는 몸으로 알고 있을런지도 모르겠다.

최근 며칠은 배리 로페즈의 '북극을 꿈꾸다'라는 책에 몰두한 시간이었다. 간만에 자연에 대해, 자연과 인간의 관계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다. 장장 600페이지가 넘는 대작에서 작가는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일까. 이것이 이 두꺼운 책을 한장한장, 한줄한줄 놓치지 않고 읽어나가며 내가 답하고자 했던 질문이었다. 이 글이 씌어지는 과정에서 그 답이 좀 더 명확해지긴 바란다.

배리 로페즈는 미국의 자연주의 작가라고 할 수 있겠다. 얼마전 서평을 적었던 '여기 살아있는 것들을 위하여'라는 책의 저자이기도 하다. 이 책 '북극을 꿈꾸다'로 전미도서상을 수상했다고 들어서 그의 책을 처음 접한 뒤로 읽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던 터였다. 앞서 읽은 책은 그의 마지막 저작으로 자연에 대한 것과 더불어 자신에 대한 이야기도 많이 들어있었다. 이 책은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북극에 대해 다룬 책이다.

북극에 대해 어떤 이야기가 있을까, 읽기전에는 많이 궁금했다. 이 책의 화두는 크게 '자연과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북극에서 자연이라고 하면 동물과 대지, 얼음, 그리고 그곳에서 살아가거나 흔적을 남겨왔던 인간의 이야기가 포함된다. 책을 다읽고 다시 들여다본 서문에도 이 두 가지가 이 책을 쓴 계기였다는 것을 분명히 해두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해가 지지않는 어느 북극의 여름밤 산책에서 맞닥뜨린 날카롭게 쏘아보며 둥지를 지키던 툰드라의 새들과 조우한 경험과, 1881년에 북쪽으로 항해를 떠났다가 사망한 에드워드 이스라엘의 묘지를 발견한 경험 말이다.

총 9장으로 되어있는 이 책의 7장까지는 거의 자연에 초점을 두고 전개가 된다. 1장인 '큰곰의 땅 아르크티코스'에서는 전반적인 북극의 자연에 대해 설명한다. 무엇보다 북극의 자연은 보통사람에게 익숙한, 4계절과 낮과 밤이 있는 24시간을 기준으로한 생활이 가능한 온대기후와는 다르다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북극은 겨울과 여름으로 되어있고, 겨울동안에는 해가 뜨지 않고, 여름엔 해가 지지 않는다고 한다. 겨울에는 눈과 얼음으로 많은 것이 불가능해지기에 동물들은 태양이 있고 먹을것이 존재하는 짧은 여름동안 생존과 번식을 위한 준비를 끝내야 한다.

다음에서 이어지는 장들에서는 그러한 북극에서 적응해서 살아가는 놀라운 동물들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북극에 대한 책이라고 하면 아마 사람들이 가장 기대할 법한 내용이지 않을까 싶다. 두꺼운 털로 뒤덮인 사향소가 38.3도의 체온을 일정하게 유지하면서 '영하 40도의 극한을 일상적으로 견뎌'낸다는 이야기같은 것 말이다. 하지만 이러한 동물들의 생태 한켠에는 늘 그들에게 전혀 관심이 없으면서 동물원에 데려갈 새끼를 잡는다는 등의 사소한 이유로 마구잡이로 수백마리의 사향소를 죽인 인간들의 이야기가 있다. 그런일들은 다시 사향소의 수가 늘어나기까지 상당한 세월이 걸릴 정도로 그들의 생태에 커다란 충격을 준다고 한다. 이렇게 인간들에 의해 행해지는 무자비한, 동물들에 대한 살생의 이야기는 책의 곳곳에 나온다.

굳이 책의 후반으로 가지 않더라도 책속에서 북극을 탐험하는 인간들은 그곳에 정착해 살아가던 에스키모인들에 비해 얼마나 무지하고 오만했는지를 수없는 사례를 통해 알 수 있다. 하지만 내가 관심을 갖고 읽은 것도 자연에 대한 이야기보다 그러한 어리석은 인간에 대한 이야기였다. 북극을 탐험한 기록이 기원전 300년 경으로 거슬러 올라갈만큼, 인간의 그 춥고 척박한 북쪽 땅에 대한 관심은 아주 오래된 것으로 보인다. 그뒤로 오랜 세월동안 인간은 배를 타고 북극으로 항해를 떠나면서 그곳을 파악하고자 노력했다.

그것은 미지의 세계에 대한 탐험이기보다는 다른 대륙으로의 좀 더 가까운 항로를 개척하고자 하는, 혹은 금광같이 가치있는 것을 발견한다던가, 혹은 고래 등의 동물을 사냥해서 가죽이나 지방 같은 것을 팔고자 하는 경제적이거나 상업적인 목적과 연관되었다. 그도 그럴것이 커다란 배에 많은 이를 태워 북극으로 가는 것은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기에 부자들의 투자를 받기 위해서는 내세울 명목이 필요했던 것이다. 수많은 배가 좌초되고, 혹은 사람들이 추위에 얼어죽거나 굶어죽고, 그러는 과정에서 차츰 그 미지의 땅을 알아간 것 같다. 이 과정은 두려움을 극복한 영웅적인 정복의 과정이라서가 아니라, 인간이 극한의 상황에서 드러내는 것이 나약하고 무지한, 혹은 그러면서도 인간적인 모습일 것이기에 읽는 흥미가 생겼다.

그러면서 묻게되는 한가지 질문이 있다. 앞서 다루어진 사향소나 북극곰 같은 동물들도 인간에 의해 죽임을 당하거나, 혹은 적어도 그해에 북극의 자연이 그들에게 우호적이지 않아서 떼죽음을 당하게 되는 경우가 생기게 마련이다. 그러한 (사람에 의한 것이 아닌) 동물들의 떼죽음은 어쩌면 자연적인 현상의 일부로 보게되고, 사람의 죽음은 그렇지 않은 이유가 무엇일까. 내가 같은 인간이라서 그들의 죽음에 더 연민을 느끼는 것일까, 아니면 그들은 자신의 고통과 앞으로 닥칠 죽음에 대해 기록을 남기고, 기록을 남길 수 있기에, 그래서 그것을 다른 이가, 내가 보고 그들이 느낀 것을 간접적으로나마 이해할 수 있어서일까.

이 책을 관통하는 작가의 주장은, 우리가 자연을 대할때 조금 더 조심스러워야한다는 것, 함부로 인간의 잣대를 들이대서 자연에 해를 가하지 말아야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북극에 적응해서 전통적인 방식으로 살아가는 에스키모인들의 지혜와 그들이 자연을 대하는 방식에 대한 작가의 우호적인 시각도 엿볼 수 있었다. 하지만 책의 마지막에서 그러한 에스키모인들에 대한 생각에도 작가를 괴롭히는 딜레마가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된다. 바로 그들도 생존을 위해 어쩔 수 없이 행해야하는 동물들에 대한 '살생'이다. 그는 에스키모인들과 같이 사냥을 하고 그들과 함께 바다코끼리 고기를 나누어 먹으면서도, 그렇게 한 생명의 끈이 끊어질 때 눈위를 붉게 물들인 살생의 흔적이 그의 마음을 불편하게 한다. 나는 그 불편함이 무엇인지 너무도 잘 이해가 되기에 그 질문은 또한 나를 붙들고 늘어졌다. 인간이 동물을 죽여도 되는 것인가 하는 질문 말이다.

그의 고민에 비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나도 비슷한 고민을 한 적이 있다. 미래에 시골에 터를 잡고 될 수 있는한 농작물을 길러서 자급자족을 하고자 하는 목표를 갖고 있다. 농작물을 기르면, 거기서 나오는 잉여적인 생산물이나 식물줄기 같은 것으로 닭이나 염소 같은 가축을 어렵지 않게 기를 수 있을 것 같다. 순환하며 낭비되지 않는 자연생태계를 구축하기 위해서 식물과 동물을 같이 기르는게 낫겠다 싶은 것이다. 게다가 가족들은 육식을 하기에 닭을 기르면 달걀도 얻고, 닭고기도 얻을 수 있기는 하였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나를 주저하게 만드는 것이 생겼다. 닭고기를 얻기 위해서는 닭을 죽여야만 하는 것이다. 어찌보면 마트에서 닭고기를 사다먹는 행위나, 직접 살생을 행하는 것이나, 동물을 죽이는 것에 동참하는 것은 마찬가지일지도 모르겠다. 가족들에게 닭고기를 공급할 가장 좋은 방법이라면 굳이 닭을 죽이는 것을 마다할 이유가 있을까. 닭을 죽이는 것이 정말 꺼려진다면 닭고기를 사먹는 것도 하지 말아야할 것이다.

책속에는 인간과 자연의 관계에서 단순히 동물에 대한 살생의 문제만을 다루고 있지는 않았다. 인간은 북극에 다양한 방법으로 흔적을 남기고 해를 가했던 것을 할 수 있다. 이 책에는 직접적으로 언급되지는 않았지만 '여기 살아있는 것들을 위하여'에서는 그러한 온난화를 비롯한 인간의 행위를 결과가 돌이킬 수 없는 상태에 와 있다고 곳곳에 절망감을 표현하기도 했다. 하지만 마지막에 표현한 에스키모인들의 살생을 보며 느낀 불편함을 보면서, 나는 어쩐지 작가가 인간의 행위를 보며 양가감정을 느끼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혹은 잘못됐다고 느끼지만, 그것을 바꾸어 이상적으로 나아갈 수 없는 인간의 속성에 대한 체념같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왜냐하면 그가 비교적 안전하게 북극을 탐험할 수 있게 된 것도 그 이전의 수많은 어리석은 인간들이 쌓은 경험의 결과물 덕분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 또한 그러한 인간들의 역사의 혜택을 보고 있는 것이다.

작가의 무언가를 명확하게 단정짓지 않으려는 태도는 그의 이러한 양가감정에서 비롯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우리가 새로운 것을 대할 때 필요한 것도 바로 이러한 조심스러운 접근법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그 조심스러운 접근법이라는 게 무엇인지를 우리는 이 책을 통해서 배울 수 있을 것이다. 말하자면 새로운 세상과 만날 때 필요한 지침서 같은 것이다. 왜 그래야하는가, 왜 자연을 대할때 신중하고 조심스러워야하는가에 대한 이유를 생각해보면 명확하다. 바로 자멸하지 않기 위해서다. 지금이라도 고개를 들어 내 앞에 있는 것을 있는 그대로 보고, 대상화하지 않는 방법을 배우는 것, 이 책을 통해서 가능하리라 생각한다.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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