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쇼핑, 나는 병원에 간다 - 의사, 환자, 가족이 병을 만드는 사회
최연호 지음 / 글항아리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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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턴가 병원과 의사에 대해서 비판적인 시각을 갖게 된 것 같다. 나와 주변 사람들의 경험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하고, 특히 아이를 낳고 기르면서 예방접종을 비롯하여 자주 열이나고 아픈 아이를 병원에 데려가면서 다양한 의사를 만나서 치료를 받다보니 자연스레 의사마다의 차이를 느끼게 된다. 말못하는 아이의 보호자로서, 대변자로서 병원에 데려가는 것이기에 책임감이 많이 느껴지는데, 사실 의사와 나는 전문지식에서 오는 불균형이 크기에 의사가 그렇다고 하면 수긍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번에 의사의 입장에서 그러한 의사와 환자와의 관계나 의사가 내리는 진단과 처방에 대해 다각적으로 살펴볼 수 있는 책을 만나서 소개해보고자 한다.



소아청소년과 전문의인 최연호 '의료쇼핑, 나는 병원에 간다'라는 책이다. 총 6개의 챕터로 되어있는 이 책은 첫 챕터에서 의료현장에서 휴머니즘이 필요하다고 언급하며 휴머니즘의료를 보여준 영화 '패치 아담스'나 한국의 '이태석 신부'를 예를 들면서 책을 시작한다. 휴머니즘 의료라는 개념은 처음 들었는데, 의과대학 과정에서는 학점에는 반영되지 않지만, 이와 관련된 수업을 이수하여 좀 더 환자를 한 인간으로서 존중하며 의료행위를 할 수 있도록 짖도하고 있는 것 같다. 이 책의 전반적인 논조도 휴머니즘 의료에 기반한다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책에는 의사가 환자를 진단하면서 범할 수 있는 오류에 대해서 자세히 나와있다. 의학도 과학의 한 분야로서 어떤 결론을 이끌어내는 과정에서는 철저한 관찰과 실험을 통하고, 그것은 반증을 통해서 확고해진다고 한다. 그러한 바탕에 '비판적 합리주의' 사고가 깔려 있는 것인데, 현대에 와서는 그러한 '비판적 합리주의'적 사고가 퇴색되면서 어떠한 현상에 대해 잘못된 결론을 도출해내는 일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책에서 지식과 겉으로 보이는 현상에 잘 몰입하는 '지적 사고 능력이 뛰어난 사람'이 있고, 그 지식과 현상이 왜 그렇게 되었는지를 더 알고 싶어하는 '사고 성향이 뛰어난 사람'에 관해 설명이 나와 있는데, 전자가 환자가 보이는 증상만으로 진단을 해서 오류를 범할 수 있는 유형인 것 같다. 두 개념을 들어보면 그간 만났던 의사들 중에서 각각 떠오르는 사람들이 있다.



내가 특히 관심있게 읽은 것은 소아 복통문제를 다룬 제 3장이었다. 다양한 원인이 있겠지만 그중에 과민성 대장증후군에 관한 이야기도 나온다. 나도 지난해에 아이들이 둘다 같은 시기에 몇달간 배가 아프다고 해서 여러번 병원에 다닌 적이 있었다. 병원에 가도 가스가 차 있을 뿐 시간이 지나면 자연히 좋아진다고 했는데, 시간이 지나도 나아지지 않아 난감했었다. 병원에서 지사제와 유산균을 처방해주었던 것 같은데 약이 딱히 들지 않아서 더 막막했던 것 같다. 책에서는 이런 것이 스트레스로 인한 과민성 대장증후군일 수 있다고 말한다. 내가 다녔던 병원에서도 스트레스 요인일 수 있다고 하셨었다. 나는 추측컨대 아마 지난해 이사로 인해 어린이집도 바뀌고 환경도 바뀌면서 아이들이 적응하면서 스트레스가 온 것일 수도 있고, 그 전에는 하원하면서 놀이터에서 1시간 이상 뛰어놀았는데, 이사하고부터는 마땅히 놀 공간이 없어서 그런 시간이 사라지면서 뱃속에 가스가 배출되지 않아서 그럴 수도 있다고 판단을 내렸다. 어쨌든 책을 보면서 아이들이 배가 아프다고 할 때, 그게 늘 지속되는 통증이 아니라 중간중간 아프다고 하는 것이면, 이러한 심리적인 요인을 고려해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복통으로 병원에 오는 아이들이 변비로 진단을 받는 사례도 소개하고 있다. 이에 대해서도 경험이 있다. 둘째 아이가 얼마전에 자다가 배가 아프다며 울면서 깬 일이 있었다. 아프다고 데굴데굴 구를 정도여서 큰아이도 깨워서 응급실로 달려갔었다. X-레이를 찍어보고 장에 대변이 차 있으니 관장을 해보자고 하셨었고, 관장 후에 아이의 상태는 호전되었다. 그 의사분도 그런 말씀을 하셨는데, 아이가 배가 아플때 대변 때문이라고 진단을 하는 것이 성급한 판단이 될 수도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에는 관장이 효과가 있다고 말이다. 그러면서 대변 때문이라면, 관장보다는 스스로 변을 볼 수 있게 기다려주라고 덧붙이셨다. 책에서도 비슷한 이야기가 나온다. 억지로 관장을 시키면 그것이 트라우마가 되어 앞으로 화장실가는 것을 거부하는 등의 더 큰 문제가 생길 수 있으니, 그런 강압적인 방법을 쓰지 말라고 말이다. 다음번에는 울면서 배가 아프다고 고통을 호소하는 아이를 달래며 좀 지켜볼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지만, 엄마로서 아이의 말에 귀를 기울이되 어떤 상황에서도 침착해야겠다는 생각이 들기는 했다.



뒤에 나오는 4장에는 의원병과 가족원병이라는 좀 더 심각하지만 흥미로운 주제를 다루고 있다. 의원병과 가족원병은 처음듣는 개념이다. 의원병은 원래 병원에 가서 바이러스 등에 감염이 되면서 병을 얻게되는 사례를 말한다고 하는데, 이 책에서는 의사에 의해 없는 병을 있다고 진단을 받아 치료를 받게되는 경우 또한 의원병으로 지칭하였다. 가족원병은 가족구성원의 개입으로 인해 당사자가 스트레스로 신체화 증상을 얻기도 하고, 어떤 경우는 없는 병도 가족구성원이 있다고 우기면서 멀쩡한 사람을 환자로 만드는 경우도 해달되는데, 이렇게 의도적으로 건강한 사람을 환자로 만드는 경우를 가스라이팅이라고 설명하였다. 어떤 경우이든 엄마로서 아이들이 환자가 되는 경우 피해가 갈 수 있기에 주의가 요구되는 것 같다.



책에서도 비슷한 사례가 나왔는데, 둘째 아이를 낳고 출산한 산부인과 근처의 소아과에서 첫 예방접종을 맞추로 갔을 때의 일이다. 접종을 하고나서 의사는 아이의 엉덩이를 살피더니 대뜸 "딤플이네요."하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심한경우 걸음을 걷지 못할 수 있으니 간호사의 설명을 듣고 검사를 받아보라고 하였다. 간호사에게 물어보니 검사비가 6만원이었다. 간호사는 대부분 검사를 받는다고 검사를 추천한다는 식으로 이야기를 했는데, 그때 좀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의사는 왜 굳이 아이의 엉덩이를 살펴보았을까? 나는 검사를 받지 않고 집으로 왔다. 첫째 아이의 엉덩이를 살펴보니 비슷했고, 집근처 소아과에가서 물어보니 딤플이 아니니 걱정 말라고 했다. 내 생각에 둘째를 딤플이라고 했던 의사는 오는 아기마다 엉덩이를 살펴보며 딤플인지를 확인했을 것 같다. 그러고나서 검사를 추천하지 않았을까 싶다. 이렇게 생각하기는 싫지만 검사비를 벌기위해 그런게 아니었을까 싶다. 정상인 아이들은 검사를 받고나면 정상으로 나올 것이기에 오진으로 불필요한 치료를 받게되지는 않을테고 병원으로서는 검사비만 챙기는 정도로 끝나는 일이니 크게 피해를 주는 건 아니라고 의사는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비윤리적인 행위라고 생각한다. 앞으로 만나지 말았으면 하는 의사 유형이다.



'환자는 두번째다'라는 제목의 5장도 흥미로웠다. 환자가 두번째라고 한 이유는, 의료계의 종사자들이 자신의 근무환경에 만족하고, 자신의 일에 자부심을 갖고 임할때에 환자도 좋은 의료환경에서 치료를 받는 것이 가능해진다는 의미로 한 말이다. 그전까지 깊이 생각해보지는 않았지만 고개가 끄덕여졌다. 마지막 장에서는 이 책의 주 논조가 되는 휴머니즘 의료에 대해 다시한번 다룬다. 그러면서 앞으로 의료가 나아갈 방향에 대해서 제시하고 있다.



여러가지 생각해볼 거리를 던져준 책이었다. 그러면서 관련된 여러 용어들의 어원과 함께 알아가는 지적자극도 받을 수 있었고, 소개된 다양한 사례나, 관련 영화나 책의 예를 접하는 것도 흥미로웠다. 무엇보다 이렇게 폭넓은 사고를 하는, 그리고 휴머니즘 의료를 지향하는 의사가 현업에 종사하고 있다는 것이, 그리고 이렇게 책을 통해서 올바른 방향을 알리고자 한다는 것이 감사한 일이었다.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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