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결혼을 쉽게 선택했다
이은희 지음 / 좋은땅 / 2024년 1월
평점 :
누가 그랬다던가, 결혼은 해도 후회, 안해도 후회한다고. 행복해보이는 부부조차도 들여다보면 다들 불협화음이 있고, 아주 가끔 찾아오는 행복의 순간으로 지난한 세월을 견뎌가며 사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그렇게 생각하는게 마음이 편하다고 할까. 난 이제 시작한지 얼마 안됐다고 할 수 있는 결혼생활이라 성공과 실패를 논하기는 힘들지만, 내가 오랫동안 보아온 나의 부모님을 보면, 결혼은 안하는게 나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드는게 무리는 아니다. 그래서 나는 30대 중반이 되도록 결혼생각이 없었는지도 모르겠다.
나의 부모세대의 결혼생활을 돌아볼 수 있는 책을 만났다. 바로 이은희 작가의 '결혼을 쉽게 선택했다'라는 책이다. 아들의 추천사로 시작하는 이 책은 60년대 베이부머 세대인 작가가 당시 흔히들 그러하듯 25살에 중매로 만난 사람과 몇개월 만에 결혼을 하고, 곧 그 결혼이 잘못됐음을 깨달은 채로 30여년을 고통받으며 살아간 이야기를 솔직하게 담아내었다. 저자를 괴롭게 했던 장본인인 전남편은 결혼 후 한 10년 까진는 매달 일을 하며 생활비를 벌어다 주기는 했으나, 공감능력이 떨어지고, 아내는 집에서 집안일하며 자신에게 밥을 차려줘야만 하는 존재로 생각했던 사람이었다. 말도 통하지 않고, 자신을 늘 무시했기에 그 짓눌린 중압감을 견디며 살면서 저자는 나중에 온갖 병을 얻어 몸이 쇠약해질 지경이 되게 만든 사람이지만, 사실 그런 남편은 내 주변에서 너무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멀리 볼 것도 없이 바로 나의 아버지도 그러하니까 말이다. 워낙 폭력적인 면이 있는 사람은 아니어서 엄마를 심리적으로 압박감에 시달리게 하지는 않았지만, 집안일과 육아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고, 엄마를 밥차려주는 사람으로 생각했던 것은 매한가지였다. 세상에서 자신이 가장 소중하고 불쌍했던 아빠는 힘들게 느껴지면 수시로 일을 그만두고 일을 안하는 적도 많았으며, 그랬기에 엄마는 저자와 마찬가지로 자식들이 초등학교에 갈 무렵부터 무지런히 이일 저일 다니셨던 것 같다.
저자의 이야기를 읽으며 안타까운 것은, 그녀의 마음의 병이 몸의 병이 되어버렸다는 것이다. 결혼 후 10년간은 일을 하며 월급을 타오던 저자의 전남편은 IMF 때 직장을 그만둔 뒤로는 오랜동안 경제활동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아이들이 초등학생이기에 어쩔 수 없이 저자가 취업전선에 뛰어들고 하루 10시간 이상씩 육체노동을 하다가 몸이 점점 망가져가고, 그럼에도 생계 때문에 아파도 병원에도 가지 못하면서 참고 일하다가 건강상태는 더욱 나빠진 것 같다. 60대가 다 되어 아이들이 어른이 된 뒤에 결국 이혼을 하기는 했지만, 쇠약해진 몸으로 더 이상 인생을 즐기는 것도 힘들어진 것을 보며 참으로 안타까웠다. 세상일은 약자에게 더욱더 가혹해지는 경우가 있으니 말이다. 33년의 결혼생활 뒤에 이혼을 했다고 해서, 그 후에는 뭔가 통괘한 복수같은 상황이 펼쳐지기를 기대했는데 아쉬웠다. 저자의 전남편은 자신의 행동을 후회할 날이 올까? 언젠가는 남편들이 좀 깨달았으면 좋겠다. 자신들이 마치 식당에서 그러듯 손님처럼 식탁에 앉아서 당연한듯 받아먹는 매일매일의 저녁이 누군가의 피나는 노력으로 이루어진 것이라는 걸 말이다.
저자가 힘든 상황에서도 왜 그리 이혼하는 것이 어려웠나를 보면, 시대적으로 이혼에 대해 인식도 안좋고, 자식들에게 해가 갈까봐서 참았다고 한다. 싫은 사람과 헤어지는게 속편하리라 생각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은가보다. 저자는 이혼후에도 한동안 정신적으로 고통을 받은 것 같다. 추측컨대 이혼이라는 것이 '결혼생활의 실패'라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인 것 같다. 인생의 크나큰 실패를 한 것만 같은 자신에 대한 실망감과 자책감이 드는게 아닐까 싶다.
책에서 기억에 남는 부분은 책의 초반에 저자가 첫째를 임신하고 나팔관에 혹이 여러개 발견된 채로 조마조마하게 임신을 이어가는 부분이었다. 임신 초기에 의사들은 수술을 해야하니 아기를 포기할 것을 권유했고, 운 좋게 만난 다른 의사는 임신을 이어가며 임신 6개월에 수술을 할 수 있다고 도 했지만, 저자는 임신 6개월이 되어도 수술을 받지 않고 임신을 이어간다. 그러다 결국 임신 9개월에 배에 통증이 생겨서 병원에서 결국 나팔관 수술을 받았다는데, 당시 아기를 출산해도 됐을텐데 날짜가 다 차지 않아서인지 수술부위를 꽤매고 임신을 이어갔다고 한다. 이부분에서 참으로 놀랐다. 결국 죽을 고비를 넘기고 10개월만에 건강한 아기를 출산하게 됐다고 하는데, 어찌보면 미련하다 싶을 무모함이지만, 아기를 위해 희생을 각오한 모습이 감동적이었다.
그렇게보면 작가의 삶은 '견딤'의 연속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위태로운 임신을 견디고, 고통스러운 결혼생활을 견뎌냈으니 말이다. 결국 그녀를 지탱한 것은 아이들이 아니었나 싶다. 자식을 위해 자신의 몇십년의 삶을 견딜 수 있을까 자문해보지만, 사실 나의 삶도 하루하루가 견딤이다. 저자의 삶과 비할바는 아니지만 말이다. 어쩌면 삶이란 것은 오랜 견딤 끝의 작은 행복, 그것으로 살아가는 게 아닐까 생각해본다. 그래도 그 행복이 좀 더 커지도록 하기 위해서 노력하련다. 저자도 힘든 순간을 뒤로하고 자신만의 행복을 찾아나갈 수 있기를 기원한다.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