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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적인 계절 - 박혜미 에세이 화집
박혜미 지음 / 오후의소묘 / 2025년 1월
평점 :
📚 사적인 계절, 박혜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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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세하고 세밀하게 묘사된 그림과 글에 계절의 조각들을
떠올려보게 되는 박혜미 작가의 에세이 화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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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계절이라면 어떤 풍경일까?
같은 계절 안에 서로 다른 기억을 간직하고 있는 우리
당신에게 오늘의 계절은 어땠는지 물어보고 싶다. _ 작가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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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의 풍경으로 시작된 이야기는
봄, 여름, 가을, 그리고 다시 겨울로,
작가가 품은 사적인 계절의 이름들을 따라
각자의 사계절마다의 기억을 떠올리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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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다른, 나의 이야기를 써가는 오늘이지만,
계절을 배경으로 담은 우리의 이야기들은 서로의 공감을
불러일으키기도 해요. 계절마다의 아름다움,
그만의 느낌과 풍경, 그리고 그 속에머무르는 기억들.
소중했던 시절들을 다시 만나게 되는 시간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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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보내고 기다리는 계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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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국 겨울은 보내는 마음에서 다시 기다리는 마음으로
시작되고, 나는 그런 겨울의 애쓰는 마음이 좋다. (p.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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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재회하는 계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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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름의 모양은 바람에 따라, 강가에 스민 빛은 햇살의 각도에 따라 서서히 바뀌어 갔다. 그 사이에 있는 것들, 자라나는 것들, 멈춘 것, 사라지는 것들에서 다시 시작되는 것이 봄볕 아지랑이처럼 일렁인다.(p.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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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쩐지 끝내 해내지 못했던 것들 중 하나는 할 수 있을 거란 희망으로 바뀌는 계절이다. (p.36)
2. 비밀한 계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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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주머니가 여름으로 불룩하다. 이 계절이 지나갈 때까지 모래알들이 여기저기 기억처럼 떨어질 거다. 어떤 건 지워져서 아쉽고, 어떤 건 잊혀서 아쉽고, 어떤 건 가벼워서 아쉽고, 그리고 어떤 건 사라지길 바라도 털어지지 않아 무겁고. (p.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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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물들고 구르는 계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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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난 빛이 온순해졌다. 빛에 닿아 식물의 키가 한뼘 더 자라고, 모든 사물에 그림자가 생기고, 우리에겐 얼룩처럼 그을린 흔적이 남는다. 빛의 흔적이 한 계절을 통과해 생기는 거라면, 그을려 얼룩진 내 손도 꽤 마음에 든다. (p.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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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을이 애틋한 건 긴 기다림을 찰나로 만들어버리기 때문일 테다. 긴 기다림은 단풍보다 먼저 마음을 물들이고, 떨어지는 낙엽의 뒤편에는 아직 보낼 수 없는 시간들이 행렬을 이뤄 굴러간다. (p.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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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쓰이고 그려지는 계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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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몸이 따뜻해지는 일을 차분히 해본다. 단추 여러 개를 자리에 맞게 잠그고, 흘러 내려간 목도리를 다시 목에 감고, 귀까지 모자를 덮어쓰고, 호주머니에 손을 깊숙이 넣는다. 내 온기를 바람에게 뺏기지 않게.(p.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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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문을 열어 손을 길게 뻗어본다. 온기에 닿아 눈송이가 사라지고, 머물고, 사라지는 모습을 오랫동안 지켜본다. 세상이 온통 새하얘질 때까지.(p.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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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굳이 특별해지기 위해 애쓰지 않는 순간부터 삶은 조금씩 내 것이 되어간다.
지나간 언제가의 오늘을 여러 번 고치며, 새로 쓰며, 내가 조금 더 선명해진다. 일상은 두서없이 쓴 어제를 단정하고 정갈한 하나의 문장으로 퇴고하기 위한 수많은 반복의 과정이지 않을까. 먼 훗날이 오늘이 되면, 일상은 하농의 악보가 되고, 하농으로 연주되는 피아노 소리를 들으며 반복되는 음들이 이렇게나 아름다웠는지 그땐 몰랐다고, 말할지도 모른다. (p.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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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장을 덮으며, 한 해의 계절을 지나온 느낌으로 이제,
나의 계절들에 이름을 붙여보고 싶어집니다. 고요하고 차분하게
살랑이듯, 마음의 물결을 일게하는 에세이 화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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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책을 만나볼 수 있게 해주신
오후의 소묘 출판사에 감사의 마음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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