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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슴도치
위기철 지음 / 청년사 / 2002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원래 위기철의 인문사회서적을 쓰는 솜씨와 속물스럽게도 개인적 삶에 대해서만 관심이 있어 '아홉살 인생'이라는 위기철의 성장소설이 있는 줄 알면서도 지레짐작에 '뭐 별로일 것 같은데'하면서 읽지 않았었다. 그런데 얼마전 '아홉살 인생'을 읽고 근래 읽었던 유명한 어떤 작가의 소설보다 더한 재미와 감동을 느꼈기에 작가가 마지막에서 말한 아홉살 이후의 이야기를 내심 기대해 왔었다.
그래서 '고슴도치'를 보고 이거군, 그 뒷 이야기가 하는 기대감으로 읽기 시작했다. 이름도 바뀌고, 성격도 좀 바뀐 것 같았지만 여민이의 20년후를 바라보는 마음은 첨엔 좀 찝찝했다. 그 아이가 말그대로 자기 자식 예쁜 줄만 알고, 남에게는 마음을 못 열고 자기 세계에만 갇혀사는 고슴도치가 된거야?하는 실망감... 누구나 그런 면이 있고 어쩌면 나도 그렇게 살아가고 있지만 그 사람만은 그렇지 않았음 하는 기대감이 무너진 느낌이랄까...
하지만 그 20년 사이에 있었던 상처-아내와의 이혼, 그리고 실연, 그리고...-로 인해 마음을 닫게 했음을 보고 가슴이 아파왔다. 하지만 그런 주인공이 그 또한 고슴도치의 속성을 지니고 있지만 주인공처럼 잘난척(?) 드러내보이지 않는 명신을 만나 많은 에피소드를 겪으면서 조금씩 가시를 수그러뜨리는 과정은 따뜻하고 포근한 느낌, 그 자체였다. 그리고 뭣보다 책을 순식간에 읽어버리게 한 것은 작가특유의 유쾌한 글쓰기 솜씨였다. 조용한 독서실에서 책을 읽다가 터져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해 주위 사람들의 눈총을 꽤 여러번 받았으니...
작가가 이 글을 쓰면서 항상 비슷한 인물들만 나열해 놓는 게 싫어서 다양한 성격의 캐릭터를 표현하려고 노력했다고 했는데 작가에게 미안하게도 소설을 읽고난 후에는 등장인물 모두가 다 고슴도치인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사실 인간이 모두 고슴도치 아닌가, 누가 자신을 상처입힐까봐 가시를 곤두세우고 경계하는... 하지만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하면 겉으로 드러내놓던 가시를 숨길 줄 아는, 아니 없는 것처럼 살 수도 있는...
이 글의 마지막에서 난 내가 찾던 '아홉살인생'의 귀여운 주인공이었던 여민이와 이 소설의 주인공 헌제가 동일인물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여민이가 이렇게 컸구나.ㅋㅋㅋ... 참, 이 책을 감동적으로 또는 재미있게 읽으신 분은 '아홉살 인생'도 한 번 읽어보세요. 어린시절의 순수했던 마음으로 빠져들 수 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