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집 일루저니스트 illusionist 세계의 작가 29
손석춘 지음 / 들녘 / 2001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손석춘이 소설을 썼다고? 나자신의 게으름으로 이 책에 대한 소개를 이전에 미처 듣지 못해 들어가는 글만 읽고 '실제 인물이라...'하는 굉장한 호기심에 이끌려 읽기 시작했다. 어린시절 '안네의 일기'를 읽다가 단편적인 일기들로 이어진 글은 절대로 읽지 않겠다고 결심했던 나였기에 앞부분을 읽으면서는 여러번 덮을까 하는 망설임을 느꼈다. 그러나 드문드문 등장하는 이진선이 만났던역사적 인물들에 대한 호기심이 책을 덮을 수 없게 했다. 연희전문 시절의 윤동주, 항일투쟁 시절의 이현상, 박헌영의 등장을 보며, 나중엔 어떤 인물들이 나올까 하는 그런 궁금함...

대학시절 빨치산을 다룬 <태백산맥>이나 <남부군>같은 소설을 읽으면서 아니 어떻게 북한은 남한의 빨치산들을, 남로당을 저렇게 죽어가게 할 수 있었나 하는 원망을 했었다. 수많은 적과의 싸움에서도 꿋꿋했던 그들이 그 안에서 얼마나 큰 회복할 수 없는 상처를 받았을까하는 맘에 책장을 몇번이나 들었나 놓았다 했다. 그런데 월북한 남로당의 일원으로서, 그리고 어쩌면 얼마남지 않았던 남로당의 사람으로서 북에서 느낀 점들을 담담하게, 아니 담담한 척 써내려간 글을 보며 이런 사람도 있었겠구나, 살아남은 자들이 받은 고통도 못지 않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가슴이 많이 아팠다.

좋은 날을 보지 못하고 죽어간 수많은 사람들의 삶에 가슴아팠으나 무엇보다 가슴아픈 것은 이진선의 고독이었다. 이진선이 박헌영이 있었다면 달라지지 않았을까 그리워하는 것처럼 오늘날 이 글을 읽은 사람은 이진선이 외롭지 않았더라면 좀더 많이 세상이 달라지지 않았을까 하는 마음을 가지게 된다. 하지만 그런 고독속에서도 자신의 신념을 버리지 않고 북한 사회에 대한 애정과 혁명에 대한 애정을 가지고 살아가는 모습은 참으로 인상적이다.

이 책은 어떤 사람이 읽느냐에 따라 다양한 울림으로 전해지리라는 느낌이 든다. 이진선 삶의 한 축이었던 언론인에게 전해지는 울림과 다른 한 축이었던 혁명가에게 호감을 갖고 있는 사람에게 전해지는 울림, 그리고 지극히 평범한 사람에게 전해지는 울림이 아주 큰 차이가 있으리라.

솔직히 책을 다 읽을 때까지 논픽션을 가장한 픽션임을 미처 몰랐다. 들어가는 글에 완전 속아 책을 읽으면서 실존인물이라고 생각했던-의심은 끊임없이 들었으나 손석춘의 귀신같은 솜씨에 의해 그런 의심은 사라지고, 솔직히 그런 의심이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고...-나의 어리석음이 한탄스럽긴 하지만 아무렴 어떠랴. 어떤 차이가 있든 쉽게 보기 힘든 이진선이라는 북의 혁명가의 평생의 기록을 읽는 것은 너무나 인상적이고 누구나 한번쯤 경험해볼만한 일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