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파화가들은 필법과 묵법에 자신의 감정을 실었다. 절벽을 그릴 때면 붓질을 비비듯 하는 부벽준을 사용하고, 나뭇가지에서 늘어진 넝쿨이 바람에 휘날리는 듯한 모습은 단숨에 내려 긋는 필선으로 표현하였다. 화면 전체에 동감이넘쳐, 초기에 유행한 안견 화풍의 꼼꼼한 선묘와는 전혀 다르다. 그림의 내용도소상팔경이가 아니라 산수 속의 인간이 큰 비중을 차지하는 산수인물화이다.
절파화풍의 유행은 단지 명나라의 최신 화풍이 들어왔다는 것을 의미하지않는다. 산수화의 중심이 자연에 대한 관념적인 표현에서 벗어나 그 속에 살고있는 인간으로 이동했음을 의미한다. 인간을 중심에 두는 변화는 국초부터 조선사회 전반에 서서히 일어난 문화 변동의 한 반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