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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처드 예이츠 지음, 유정화 옮김 / 노블마인 / 2009년 2월
평점 :
절판


 
온종일 엄마를 찾아대는 아이들을 뒤로하고 제대로 책을 읽는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아줌마의 일상은 대부분 그렇다. 누군가 "오늘은 어땠어?"라고 물으면, "어제와 같았어"라고 대답한다. 매일 그렇게 말해도 틀린 답이 아니다. 반복적인 패턴에 상대는 말도 제대로 통하지 않는 아이와의 일상이라면 이미 이상이나 자아실현과는 멀어졌다고 봐야하지 않을까?

정체한 시간, 멈춰버린 존재가 되어감을 느낀다. 그런 공허함이 우울하게 만들고 현실을 절망적으로 바라보게 만든다. 고독해진다. 그리고, '애초에 결혼을 왜 했을까?'라는 질문으로 답을 찾으려 한다. 난...사랑해서. 사랑해서 결혼했다고 말한다. 그런 지금의 나에게 사랑이 없었다면 지루하고 무기력한 일상을 어떻게 이겨낼 수 있었을까?

소설 속 주인공 에이프릴도 가사와 육아에 얽매여 답답한 일상을 보내는 가정주부다. 그러다 어느 날 문득, 다르게 살고 싶다는 열망으로 파리로의 이주를 결심하게 된다. 남편 프랭크는 아무 일 하지 않아도 되는 회사를 다니며  권태롭게 살아간다. 그도 파리로의 이주에 동의는하지만 자신의 오랜 습관을 떨쳐낼 의지도 새로운 환경에 뛰어들 용기도 없다. 그러다 뜻밖의 에이프릴의 임신으로 이주 계획은 무산될 위기에 처하며 독설과 비난을 일삼는 부부의 싸움이 시작된다.

아내와의 다툼 이후 프랭크는 같은 직장의 모린과 외도를 하지만, 사실 에이프릴의 격려 한 마디로 그가 그 동안의 삶을 승리로 느낄 수 있게 해줄만큼 그녀를 사랑한다. 반면, 아내 에이프릴은 이웃남자 셰프와의 외도 이후 자신이 남편을 한 번도 사랑한 적이 없음을 깨닫는다. 
 

이렇듯 두 부부는 사랑과 존중을 기초로 하는 결혼이라는 동업자 관계에서 어긋나있다. 사랑만으로는 안되는 것이 결혼이라지만 사랑이 없으면 더 안되는 것이 결혼이라고 생각한다. 살며 부딪치는 수많은 역경을 이겨내고 다시 희망을 꿈꿀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바로 그 사랑의 힘이다. 하지만, 프랭크와 에이프릴은 이미 약한 기반을 토대로 위태로워지는 기업을 운영하는 두 동업자에 지나지 않았다. 

또한 이웃들의 모습도 썩 건강하지는 않다. 청춘시절과는 전혀 다른 삶의 자리에 와 있는 셰프와 남의 불행에서 자신의 행복을 찾는 밀리 부부. 결혼과 부모 노릇에 실패한 부동산 중개업자 헬렌과 은퇴 이후 아내의 끝없는 수다를 피해 보청기 스위치를 꺼놓고 온종일 신문과 잡지를 뒤적이며 사는 하워드 부부. 이들 이웃과의 만남도 소통은 없고 번지르르한 말만 무성한 껍질뿐이다. 오히려 정신병을 앓고 있는 헬렌의 아들 존이 어떤 인물보다 시대와 사회의 병폐를 명확하고 신랄하게 진단한다. 

"모든 생각과 모든 감성을 지속적으로 집요하게 통속화, 대중화해서 잘 넘어가는 이유식같이 만들어 버리는 것, 이 낙관적인 태도, 매사를 웃음으로 때우고 쉽게 해결하려는 감상주의가 모든 사람의 인생관 아니야?"

                                                                                         ---P.190

존의 이 대사로 작가는 1950년대 미국사회의 꿈과 이상 그리고 정신이 물질주의와 자본주의에 밀려가는 상황을 비판하고있다. 1950년대의 모습이라지만 50년도 더 지난 지금에 비추어도 크게 달라지지 않은 현실이기에 시대감없이 동감하게 된다. 

하지만, 에이프릴과 프랭크의 비극적 결말이 온전히 이런 사회적 병폐로 인한 것이라는데엔 동감하지 않는다.
그녀가  "난 당신을 사랑하지 않고 한 번도 정말로 사랑한 적이 없어요."라고 말하며 결단을 내린 것처럼 가정과 결혼을 지탱해줄 가장 중요한 사랑이 없기 때문이었지 않았을까. 그래서 인간의 숙명인 고독을 이겨내지 못한 것이리라.
 
지루하다 할만큼 세세한 묘사와 우회적인 표현으로 읽는 속도가 제대로 붙지 않았던 200페이지를 넘으면 비로소 긴장감이 느껴지며 이 소설의 매력을 발견하게 된다. 등장인물들의 심리와 모습이 생생하고도 사실적이다.  너무나 사실적이라 잔인하게 느껴질만큼.

읽다보니  2000년에 상영되었던 영화 [아메리칸 뷰티]가 떠올랐다. 삶의 표면 아래 가려진 좌절감을 통해 현대인의 기본적인 안식처가 되어야 할 가족이라는 제도가 기능적이지 못하게 될 때 발생하는 결과가 어떤 것인지를 잘 보여주는 영화였다. 이 소설도 같은 제목으로 영화화 되었다. 50여 년의 시간만큼의 다름과 시간을 초월하는 같음을 비교해보면 더 재미있을 것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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