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예보의 첼리스트
스티븐 갤러웨이 지음, 우달임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12월
평점 :
품절


인상깊은 구절

음악은 아직도 선한 것이 들어올 자리가 있었다는 사실을 그녀가 확실히 깨닫기를 요구했다. 선율이 그 증거였다.









광기에 사로잡힌 메마른 영혼을 적시는 빗줄기 같은 첼로 선율이 책을 통해 들리는듯 하다.

여전히 지구 어딘가에선 총알과 포탄이 도시를 피로 물들이고, 소중한 가족을 처참하게 잃어야 하는 현실에 울부짖는 사람들이 있다.

전쟁의 그 잔인한 속성은 역사를 거듭해도 변하지 않는다.

인간이 벌이는 전쟁. 그러나 그 안에 진정한 인간은 없다.

인간이길 스스로 포기한 악마와 인간의 존엄을 철저히 짖밟힌 생명체만이 있을뿐이다.

 

이야기는 1992년 보스니아 내전 당시 점령당한 사라예보를 무대로 죽음의 공포 앞에서 삶의 의미와 품위, 그리고 인간애를 지키려 했던 이들의 투쟁의 드라마다.

절망적인 현재를 살고 있는 네 사람의 모습에서 전쟁의 야만성과 함께 인간 존엄의 중요한 교훈을 얻게 된다.

작가는 생생한 인물과 현실감으로 먼 나라의 사건을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일이라고 믿도록 만든다.

 

가족과 (내키진 않지만) 이웃 할머니의 생명을 유지해줄 물을 얻기 위해 포탄이 쏟아지는 거리로 나선 케난.

사격선수였던 28세의, 이젠 저격수가 된 고뇌하는 애로.

남을 돌아볼 겨를없이 자신을 위해 하루하루를 살았던 드라간.

빵을 얻기 위해 줄을 섰다 목숨을 잃은 22명의 친구와 이웃들을 위해 죽을지도 모르른 길 한 복판에서 22일 동안 매일 연주하는 첼리스트.

네 명의 등장인물을 통해 행복했던 일상이 전쟁으로 인하여 어떻게 달라지고 암담해졌는지를 사실감있게 전달한다.

 

언덕 위, 전쟁을 일으킨 저들을 증오하며 자신의 저격에 정당성을 찾으려했던 애로는 이제 의문을 품는다.

"나는 내가 나쁜 사람들을 죽이므로 선하다고 생각하는가? 과연 저들을 죽이는 이유가 내게 중요한가? .....그녀는 저들을 증오하기 때문에 죽인다. 그렇다면 저들을 미워할 만한 타당한 이유가 있다는 사실이 나에게 면죄부를 주는가?..."

이유는 사라지고 악만남은 살육. 그 속에서 애로는 인간애를 찾으려 하고 있다.

 

전쟁이 시작되고 자신의 안위만을 생각하고 주위엔 무관심했던 드라간은 죽음에 직면한 순간 깨닫는다.

"그는 자신이 저 개였다는 것을 알고있다. 그는 전쟁이 터진 뒤로 줄곧 거리를 돌아다녔고, 가급적 주위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려고 애썼다."

기억 속 사라예보에서의 인간다운 삶의 모습을 잃지 않으려 한다.

"이 도시가 사라진다면, 그건 언덕 위의 저들 때문이 아니라 이 골짜기 안에 있는 사람들 때문일 것이다. 그들이 죽음과 함께 사는 데 만족하고, 언덕 위의 저들이 원하는 모습대로 될 때, 그때 사라예보는 사라질 것이다."

드라간은 이제 더이상 방관하는 도시의 유령이 아니다. 그는 자신과 이웃의 존엄을 찾기 위해 살아갈 것이다.

 

이웃 할머니의 물을 힘겹게 얻어다 주며 왜 그래야 하는지 불만을 느꼈던 케난은 산 자를 유령으로 만들어 놓은 이 전쟁에 더이상 동조하지 않기로 한다.

"...산 자 가운데 죽은 자가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이 광기가 끝난 뒤에도 오랫동안 이곳에 머무를 것이다....우리에 대한 기억조차 사라질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유령이 아닌 때가 있고, 우리는 그 차이를 알아야 한다. 일단 그 차이를 잊으면, 그때는 유령이 되는 것이다."

전쟁 이전의 자신과 이웃들의 모습, 인간다웠던 모습을 지키기 위해 그는 오늘도 포탄이 떨어지는 거리로 가족과 이웃 할머니의 물을 얻기 위해 나선다.

 

첼리스트는 마지막 22일째의 공연을 마친 후, 죽은 이를 기리는 꽃 더미에 첼로 활을 던지고 자신의 공간으로 들어갔다. 그의 연주는 삶에 대한 희망의 끈을 서서히 놓고 있던 순간, 파괴된 도시를 제건하고, 상처입은 영혼을 치유할 수 있는 희망의 시작이었다.

 

반세기 전, 같은 아픔을 겪었던 우리에게 이 소설은 큰 공감을 줄 것이다.

역사의 산 증인들인 부모로부터 자라오며 들었던 생생한 증언들은 전쟁의 참혹함을 낱낱이 알려주었다.

무참히 짖밟혔던 수많은 무고한 생명들에게 우리는 열심히 살아야 할 책임이 있음을 다시 한 번 깨닫는다.

 

"그가 살길 바란다면, 그가 살고 싶은 세계가 사라지는 걸 막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

 전쟁이 있는 한, 삶은 그것을 막는 하나의 예방책인 것이다."



광기에 사로잡힌 메마른 영혼을 적시는 빗줄기 같은 첼로 선율이 책을 통해 들리는듯 하다.
여전히 지구 어딘가에선 총알과 포탄이 도시를 피로 물들이고, 소중한 가족을 처참하게 잃어야 하는 현실에 울부짖는 사람들이 있다.
전쟁의 그 잔인한 속성은 역사를 거듭해도 변하지 않는다.
인간이 벌이는 전쟁. 그러나 그 안에 진정한 인간은 없다.
인간이길 스스로 포기한 악마와 인간의 존엄을 철저히 짖밟힌 생명체만이 있을뿐이다.

이야기는 1992년 보스니아 내전 당시 점령당한 사라예보를 무대로 죽음의 공포 앞에서 삶의 의미와 품위, 그리고 인간애를 지키려 했던 이들의 투쟁의 드라마다.절망적인 현재를 살고 있는 네 사람의 모습에서 전쟁의 야만성과 함께 인간 존엄의 중요한 교훈을 얻게 된다.
작가는 생생한 인물과 현실감으로 먼 나라의 사건을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일이라고 믿도록 만든다.

 가족과 (내키진 않지만) 이웃 할머니의 생명을 유지해줄 물을 얻기 위해 포탄이 쏟아지는 거리로 나선 케난.
사격선수였던 28세의, 이젠 저격수가 된 고뇌하는 애로.
남을 돌아볼 겨를없이 자신을 위해 하루하루를 살았던 드라간.
빵을 얻기 위해 줄을 섰다 목숨을 잃은 22명의 친구와 이웃들을 위해 죽을지도 모르른 길 한 복판에서 22일 동안 매일 연주하는 첼리스트.
네 명의 등장인물을 통해 행복했던 일상이 전쟁으로 인하여 어떻게 달라지고 암담해졌는지를 사실감있게 전달한다.

 언덕 위, 전쟁을 일으킨 저들을 증오하며 자신의 저격에 정당성을 찾으려했던 애로는 이제 의문을 품는다.
"나는 내가 나쁜 사람들을 죽이므로 선하다고 생각하는가? 과연 저들을 죽이는 이유가 내게 중요한가? .....그녀는 저들을 증오하기 때문에 죽인다. 그렇다면 저들을 미워할 만한 타당한 이유가 있다는 사실이 나에게 면죄부를 주는가?..."
이유는 사라지고 악만남은 살육. 그 속에서 애로는 인간애를 찾으려 하고 있다.

 전쟁이 시작되고 자신의 안위만을 생각하고 주위엔 무관심했던 드라간은 죽음에 직면한 순간 깨닫는다.
"그는 자신이 저 개였다는 것을 알고있다. 그는 전쟁이 터진 뒤로 줄곧 거리를 돌아다녔고, 가급적 주위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려고 애썼다."
기억 속 사라예보에서의 인간다운 삶의 모습을 잃지 않으려 한다.

"이 도시가 사라진다면, 그건 언덕 위의 저들 때문이 아니라 이 골짜기 안에 있는 사람들 때문일 것이다. 그들이 죽음과 함께 사는 데 만족하고, 언덕 위의 저들이 원하는 모습대로 될 때, 그때 사라예보는 사라질 것이다."
드라간은 이제 더이상 방관하는 도시의 유령이 아니다. 그는 자신과 이웃의 존엄을 찾기 위해 살아갈 것이다.

이웃 할머니의 물을 힘겹게 얻어다 주며 왜 그래야 하는지 불만을 느꼈던 케난은 산 자를 유령으로 만들어 놓은 이 전쟁에 더이상 동조하지 않기로 한다.
"...산 자 가운데 죽은 자가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이 광기가 끝난 뒤에도 오랫동안 이곳에 머무를 것이다....우리에 대한 기억조차 사라질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유령이 아닌 때가 있고, 우리는 그 차이를 알아야 한다. 일단 그 차이를 잊으면, 그때는 유령이 되는 것이다."
전쟁 이전의 자신과 이웃들의 모습, 인간다웠던 모습을 지키기 위해 그는 오늘도 포탄이 떨어지는 거리로 가족과 이웃 할머니의 물을 얻기 위해 나선다. 

첼리스트는 마지막 22일째의 공연을 마친 후, 죽은 이를 기리는 꽃 더미에 첼로 활을 던지고 자신의 공간으로 들어갔다. 그의 연주는 삶에 대한 희망의 끈을 서서히 놓고 있던 순간, 파괴된 도시를 제건하고, 상처입은 영혼을 치유할 수 있는 희망의 시작이었다. 

반세기 전, 같은 아픔을 겪었던 우리에게 이 소설은 큰 공감을 줄 것이다.
역사의 산 증인들인 부모로부터 자라오며 들었던 생생한 증언들은 전쟁의 참혹함을 낱낱이 알려주었다.
무참히 짖밟혔던 수많은 무고한 생명들에게 우리는 열심히 살아야 할 책임이 있음을 다시 한 번 깨닫는다. 

"그가 살길 바란다면, 그가 살고 싶은 세계가 사라지는 걸 막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  전쟁이 있는 한, 삶은 그것을 막는 하나의 예방책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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