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더링
앤 엔라이트 지음, 민승남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8년 10월
평점 :
절판


인상깊은 구절

나는 지금의 나를 있게 한 운명과 다른 무엇을 원하지는 않는다. 그저 내 삶을 살 수 있기를 원할 뿐이다.









불행은 무섭게도 전염이 잘 된다고 한다.

유난히 불행한 사람의 곁에 있으면 어느새 나 또한 불행의 검은 그림자 속에 갇히게 되는 기분이다.

이 소설은 그런 불행을 내게 옮겨 주고는 혼자 벗어나 보라며 끝맺음하는 것 같았다.

 

주인공 베로니카와 자살로 생을 마감한 오빠 리엄의 삶이 읽는 내내 불편한 마음이도록 만들었다.

그들의 삶을 값지고 행복하게 만들어 주지 못한 부모를 보며 나의 엄마로써의 일상을 반성하게 되었다.

부모의 모습이 아이의 인생을 어떻게 만드느냐를 자세히 보여주었다 하겠다.

 

가족과 가정에 대한 베로니카의 묘사는 냉소적이며 비관적이다. 그런 생각의 틀에서 벗어나고 싶어하지만 그 역시 쉽지 않다.

어떻게 살아왔느냐, 어떠한 유아기를 보냈느냐에 따라 이미 만들어진 성향을 마음대로 바꾸기는 어려운 것이리라.

 

베로니카는 리엄의 죽음으로 과거를 추억하며 자신과 오빠 리엄을 비롯한 가족에 대한 생각들을 되짚어본다.

베로니카와 오빠 리엄은 열두 자녀를 키우느라 애정과 보살핌에 인색한 부모로 부터 잠시 떨어져 할머니의 손에서 자라게 된다.

그시간을 권태로워하며 불쾌하게 회상하도록 만든 운명 같은 과거에서 그녀는 성장이 멈춘듯하다. 결국 성숙하게 자라지 못한 것이다.

남편과의 관계에서도 조화롭지 못하며, 자식을 대하는 자신의 모습에도 만족할 수 없는 것이다.

 

아버지에 대한 회상에서도 부녀 사이의 단절은 여실히 드러난다.

"...창녀질을 한다...헌 물건이다, 걸레가 되어가고..." 아버지의 꾸짖음은 날카로운 칼과 같은 공격이다. 어디에도 자식을 위하는 올바른 표현은 없다.

당시 더블린의 시대상에서 그녀의 아버지에 대한 이해를 얻을 수 있다. 쫓겨나는 아이 천지에 어른이 되어가는 자식의 냄새만 맡아도 이성을 완전히 잃어버리는 부모들까지, 그런 보수와 개방의 과도기를 산 부모의 모습과 정확히 일치한다.

그렇다해도 자식을 존중하는 모습은 어디에도 없음이 이내 아쉽고 화가난다.

 

리엄은 9살 어린 나이에 할머니의 남편 친구인 너전트와 성적 유희를 겪으며 아마 비뚫어 나갔을 것이다.

그것이 온 인생을 좌우했으며 결국엔 안정된 삶을 살 수 없도록, 자살을 택하도록 만들었다.

그런 사실을 알면서도 오빠를 구하지 못한 베로니카는 무력감과 혐오감에 힘들어했을 것이다.

너전트의 이기적인 변태행위와 아이를 무심히 방치한 할머니와 엄마가 결국엔 두 아이의 인생을 망치고 말았다.

쌍둥이 같다고 느낀 끈끈한 두 남매는 그렇게 서로의 인생을 자신의 것이라 여기며 산 것이다.

 

결국 모든 과거를 운명으로 받아들이며 그녀는 자신이 오빠를 비웃었을 뿐만 아니라 오빠가 오빠 자신의 인생 전체를 비웃을 수 있게 해주었다며

작지만 몹시도 강렬했다고 회상하는 오빠 리엄과의 선정적인 대화에 대해 용서를 빌고 싶어한다. 죽음이 갈등을 해소하는 역할을 한 것일까?

 

할머니에서 어머니로 이어지는 무관심과 무책임이 자신의 가정을 붕괴시킨 원인이라 믿으며 용서하지 못하지만 그녀 또한 과거에 얽매여 같은 잘못을 되풀이 하고 살아간다. 마침내 자신을 억눌러온 과거와의 싸움에서 그녀는 승리할 수 있을까? 그녀의 선택에 마음을 담은 응원을 보내고싶다.

 

현실과 망상을 오가는 몽환적인 분위기의 이야기는 커다란 장치없이 밋밋한듯 하지만 세밀한 관찰과 정치한 묘사가 현실을 잘 드러내 색다른 매력으로 다가왔다. 누군가의 세월에 대해 함부로 말 할 수 없음을 베로니카의 삶을 통해 다시 되새겨본다.

 







불행은 무섭게도 전염이 잘 된다고 한다.

유난히 불행한 사람의 곁에 있으면 어느새 나 또한 불행의 검은 그림자 속에 갇히게 되는 기분이다.

이 소설은 그런 불행을 내게 옮겨 주고는 혼자 벗어나 보라며 끝맺음하는 것 같았다.

 

주인공 베로니카와 자살로 생을 마감한 오빠 리엄의 삶이 읽는 내내 불편한 마음이도록 만들었다.

그들의 삶을 값지고 행복하게 만들어 주지 못한 부모를 보며 나의 엄마로써의 일상을 반성하게 되었다.

부모의 모습이 아이의 인생을 어떻게 만드느냐를 자세히 보여주었다 하겠다.

 

가족과 가정에 대한 베로니카의 묘사는 냉소적이며 비관적이다. 그런 생각의 틀에서 벗어나고 싶어하지만 그 역시 쉽지 않다.

어떻게 살아왔느냐, 어떠한 유아기를 보냈느냐에 따라 이미 만들어진 성향을 마음대로 바꾸기는 어려운 것이리라.

 

베로니카는 리엄의 죽음으로 과거를 추억하며 자신과 오빠 리엄을 비롯한 가족에 대한 생각들을 되짚어본다.

베로니카와 오빠 리엄은 열두 자녀를 키우느라 애정과 보살핌에 인색한 부모로 부터 잠시 떨어져 할머니의 손에서 자라게 된다.

그시간을 권태로워하며 불쾌하게 회상하도록 만든 운명 같은 과거에서 그녀는 성장이 멈춘듯하다. 결국 성숙하게 자라지 못한 것이다.

남편과의 관계에서도 조화롭지 못하며, 자식을 대하는 자신의 모습에도 만족할 수 없는 것이다.

 

아버지에 대한 회상에서도 부녀 사이의 단절은 여실히 드러난다.

"...창녀질을 한다...헌 물건이다, 걸레가 되어가고..." 아버지의 꾸짖음은 날카로운 칼과 같은 공격이다. 어디에도 자식을 위하는 올바른 표현은 없다.

당시 더블린의 시대상에서 그녀의 아버지에 대한 이해를 얻을 수 있다. 쫓겨나는 아이 천지에 어른이 되어가는 자식의 냄새만 맡아도 이성을 완전히 잃어버리는 부모들까지, 그런 보수와 개방의 과도기를 산 부모의 모습과 정확히 일치한다.

그렇다해도 자식을 존중하는 모습은 어디에도 없음이 이내 아쉽고 화가난다.

 

리엄은 9살 어린 나이에 할머니의 남편 친구인 너전트와 성적 유희를 겪으며 아마 비뚫어 나갔을 것이다.

그것이 온 인생을 좌우했으며 결국엔 안정된 삶을 살 수 없도록, 자살을 택하도록 만들었다.

그런 사실을 알면서도 오빠를 구하지 못한 베로니카는 무력감과 혐오감에 힘들어했을 것이다.

너전트의 이기적인 변태행위와 아이를 무심히 방치한 할머니와 엄마가 결국엔 두 아이의 인생을 망치고 말았다.

쌍둥이 같다고 느낀 끈끈한 두 남매는 그렇게 서로의 인생을 자신의 것이라 여기며 산 것이다.

 

결국 모든 과거를 운명으로 받아들이며 그녀는 자신이 오빠를 비웃었을 뿐만 아니라 오빠가 오빠 자신의 인생 전체를 비웃을 수 있게 해주었다며

작지만 몹시도 강렬했다고 회상하는 오빠 리엄과의 선정적인 대화에 대해 용서를 빌고 싶어한다. 죽음이 갈등을 해소하는 역할을 한 것일까?

 

할머니에서 어머니로 이어지는 무관심과 무책임이 자신의 가정을 붕괴시킨 원인이라 믿으며 용서하지 못하지만 그녀 또한 과거에 얽매여 같은 잘못을 되풀이 하고 살아간다. 마침내 자신을 억눌러온 과거와의 싸움에서 그녀는 승리할 수 있을까? 그녀의 선택에 마음을 담은 응원을 보내고싶다.

 

현실과 망상을 오가는 몽환적인 분위기의 이야기는 커다란 장치없이 밋밋한듯 하지만 세밀한 관찰과 정치한 묘사가 현실을 잘 드러내 색다른 매력으로 다가왔다. 누군가의 세월에 대해 함부로 말 할 수 없음을 베로니카의 삶을 통해 다시 되새겨본다.

 

불행은 무섭게도 전염이 잘 된다고 한다.

유난히 불행한 사람의 곁에 있으면 어느새 나 또한 불행의 검은 그림자 속에 갇히게 되는 기분이다.

이 소설은 그런 불행을 내게 옮겨 주고는 혼자 벗어나 보라며 끝맺음하는 것 같았다.

 

주인공 베로니카와 자살로 생을 마감한 오빠 리엄의 삶이 읽는 내내 불편한 마음이도록 만들었다.

그들의 삶을 값지고 행복하게 만들어 주지 못한 부모를 보며 나의 엄마로써의 일상을 반성하게 되었다.

부모의 모습이 아이의 인생을 어떻게 만드느냐를 자세히 보여주었다 하겠다.

 

가족과 가정에 대한 베로니카의 묘사는 냉소적이며 비관적이다. 그런 생각의 틀에서 벗어나고 싶어하지만 그 역시 쉽지 않다.

어떻게 살아왔느냐, 어떠한 유아기를 보냈느냐에 따라 이미 만들어진 성향을 마음대로 바꾸기는 어려운 것이리라.

 

베로니카는 리엄의 죽음으로 과거를 추억하며 자신과 오빠 리엄을 비롯한 가족에 대한 생각들을 되짚어본다.

베로니카와 오빠 리엄은 열두 자녀를 키우느라 애정과 보살핌에 인색한 부모로 부터 잠시 떨어져 할머니의 손에서 자라게 된다.

그시간을 권태로워하며 불쾌하게 회상하도록 만든 운명 같은 과거에서 그녀는 성장이 멈춘듯하다. 결국 성숙하게 자라지 못한 것이다.

남편과의 관계에서도 조화롭지 못하며, 자식을 대하는 자신의 모습에도 만족할 수 없는 것이다.

 

아버지에 대한 회상에서도 부녀 사이의 단절은 여실히 드러난다.

"...창녀질을 한다...헌 물건이다, 걸레가 되어가고..." 아버지의 꾸짖음은 날카로운 칼과 같은 공격이다. 어디에도 자식을 위하는 올바른 표현은 없다.

당시 더블린의 시대상에서 그녀의 아버지에 대한 이해를 얻을 수 있다. 쫓겨나는 아이 천지에 어른이 되어가는 자식의 냄새만 맡아도 이성을 완전히 잃어버리는 부모들까지, 그런 보수와 개방의 과도기를 산 부모의 모습과 정확히 일치한다.

그렇다해도 자식을 존중하는 모습은 어디에도 없음이 이내 아쉽고 화가난다.

 

리엄은 9살 어린 나이에 할머니의 남편 친구인 너전트와 성적 유희를 겪으며 아마 비뚫어 나갔을 것이다.

그것이 온 인생을 좌우했으며 결국엔 안정된 삶을 살 수 없도록, 자살을 택하도록 만들었다.

그런 사실을 알면서도 오빠를 구하지 못한 베로니카는 무력감과 혐오감에 힘들어했을 것이다.

너전트의 이기적인 변태행위와 아이를 무심히 방치한 할머니와 엄마가 결국엔 두 아이의 인생을 망치고 말았다.

쌍둥이 같다고 느낀 끈끈한 두 남매는 그렇게 서로의 인생을 자신의 것이라 여기며 산 것이다.

 

결국 모든 과거를 운명으로 받아들이며 그녀는 자신이 오빠를 비웃었을 뿐만 아니라 오빠가 오빠 자신의 인생 전체를 비웃을 수 있게 해주었다며

작지만 몹시도 강렬했다고 회상하는 오빠 리엄과의 선정적인 대화에 대해 용서를 빌고 싶어한다. 죽음이 갈등을 해소하는 역할을 한 것일까?

 

할머니에서 어머니로 이어지는 무관심과 무책임이 자신의 가정을 붕괴시킨 원인이라 믿으며 용서하지 못하지만 그녀 또한 과거에 얽매여 같은 잘못을 되풀이 하고 살아간다. 마침내 자신을 억눌러온 과거와의 싸움에서 그녀는 승리할 수 있을까? 그녀의 선택에 마음을 담은 응원을 보내고싶다.

 

현실과 망상을 오가는 몽환적인 분위기의 이야기는 커다란 장치없이 밋밋한듯 하지만 세밀한 관찰과 정치한 묘사가 현실을 잘 드러내 색다른 매력으로 다가왔다. 누군가의 세월에 대해 함부로 말 할 수 없음을 베로니카의 삶을 통해 다시 되새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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