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딸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
엘리자베스 노블 지음, 홍성영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8년 8월
평점 :
품절


딸의 엄마이고, 엄마의 딸인 관계를 뭐라 설명해야 할까? 아들의 아빠이고, 아빠의 아들인 관계와 같을까?

나또한 한 아이의 엄마이고 한 엄마의 딸이다. 그래서 소설은 보다 가깝고 현실감있게 다가왔다.

동성의 부모자식 관계에서만 느낄 수 있는 끈끈한 동질감을 떠올려보며, 가장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을 조심스럽게 짐작해 보며,

눈물 흘릴 준비와 함께 책을 펼쳐든다. 슬픔 보다는 감동에 더 많은 눈물을 흘렸으니 어둡고 무거운 소설은 아니다.

 

이야기는 엄마 바바라의 죽음으로 부터 시작된다. 눈물 흘리지 말고, 검은색의 옷이 아닌 화려한 색의 옷을 차려입고, 경쾌한 음악을 들으며 장례식을 치뤄달라는 당부처럼 씩씩하고 강한 엄마였다. 네 명의 딸과 재혼한 연하의 남편을 두고 오랜 투병 끝에 바바라는 세상을 떠났다.

암과의 싸움으로 지쳐가는 자신을 느끼며 남겨진 아이들을 위해 일기를 쓰고 편지를 써두었다. 딸들은 엄마의 흔적과 함께 1년의 시간을 견뎌내며 지낸다.

 

너무 독립적인 성격이라 누군가를 사랑할 수 없어 힘들어하는 첫째 리사.

그녀는 앤디를 사랑하지만 온 마음을 다 주며 사랑을 지켜내지 못한다. 앤디의 청혼에 분위기에 휩쓸려 승낙은 했지만, 이내 후회하고는 자신없는 자신을 책망하며 힘들어한다. 변함없고 온화한 사랑을 유지하는 앤디에게 왜 그녀는 그리 모진 행동들을 했을까? 나이만 먹었을뿐 아직은 상처받기 쉬운 여린 영혼의 리사이다.

 

자존심이 너무 강해서 남편 스티븐하고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둘째 제니퍼.

부부관계가 소원해진 것을 알지만 둘은 애써 내색하지도, 말을 꺼내지도 않는다. 아이는 생기지 않고, 아이를 원하는지도 몰라하는 제니퍼.

그런 그녀에게 엄마의 공백은 더욱 컸으리라. 조언과 잔소리로 그녀를 이끌어 주어야할 자리는 이제 남은 자매들과 의붓아버지뿐이다.

 

문제가 생기면 현실에서 도피하려고만 하는 겁쟁이 셋째 아만다.

엄마의 임종을 지키지 못한 자신의 비겁한 행동에 죄책감을 느끼다 엄마의 마지막 편지로 자신의 생부에 관한 비밀을 알게 되며 분노하고 혼란에 빠진다. 진정 그녀의 친부는 누구일까? 남편의 외도로 결혼 생활을 끝내야 했던 바바라 역시 똑같은 잘못을 했다니 아만다와 언니들도 놀라며 혼란스러워 하기는 마찬가지다. 아만다는 자신에게 대답해 줄 수 없는 상황에서야 사실을 털어놓은 엄마의 비겁함에 더욱 화가났다. 같은 엄마의 입장으로 본다해도 바바라의 고백은 무책임하고 잔인했다는 생각엔 지금도 변함이 없다.

 

재혼한 남편 마크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막내 한나.

겨우 열 다섯의 나이에 엄마 잃은 슬픔과 싸워야 한다니 바바라의 마음에 가장 커다란 짐이 한나가 아니였을까? 아직은 엄마가 필요한 나이이고, 아빠와 나누어야할 것 보다는 엄마와 나누어야할 이야기들이 더 많은, 어린 아이를 두고 떠나야하는 가혹한 현실에 바바라는 가슴이 찢어지는 고통을 눈을 감는 순간까지 겪었을 것이다. 부모의 마음은 내리 사랑이라 하듯이...

 

첫 남편과의 이혼 후 8년 만에 만난 남자 마크.

10년이라는 세월의 차이도 느끼지 못한 채 서로 첫 눈에 사랑에 빠지게 된다. 그런 사랑이 그 나이와 상황에 가능할까? 너무 낭만적인 모습이다.

마크는 만나던 여자와 이별을 하고 마침내 바바라와 결혼하게 된다. 둘 사이에 한나를 낳고 행복하게 살고있었던 것이다.

문득 마크를 생각하다 예전에 들었던 말이 떠올랐다.

'부모를 잃으면 가슴이 무너지는 것 같고, 자식을 잃으면 세상의 반을 잃은 것 같고, 배우자를 잃으면 세상 모든 것을 잃은 것과 같다'

마크도 세상의 모든 것을 잃은 듯한 상실감과 자신에게 남겨진 네 딸들에 대한 책임감에 무척 힘들었을 것이다. 자신의 슬픔을 추스리기도 전에 챙겨야할 자식이 넷이나 있음이 짐스러웠을까, 아니면 위안이 되었을까?

 

그렇게 엄마 없이 남은 가족은 아픔을 참으며, 때론 드러내며 1년의 시간을 보낸다.

앤디를 향한 마음을 정한 리사, 남편과의 관계에 새로운 단계를 만들어 갈 제니퍼, 자신을 사랑해주며 용기를 북돋워주는 근사한 남자를 만난 아만다, 사춘기의 방황을 아빠와 충돌하며 해결하며 커가는 한나, 새로운 사랑을 조심스레 시작해 보려는 마크!

 

그들은 바바라의 사랑을 제각기 가슴에 품고 자신의 삶을 이끌어간다.

표지 속 그림처럼 바바라의 일기는 사랑이라는 강력한 뿌리가 되어 튼튼한 나무로 자랄 것이다.

죽음으로 시작하지만 한없이 슬프고 무겁기만 한 이야기가 결코 아니다. [작은 아씨들]의 현대판을 읽고있는 착각이 들만큼 따뜻하고 훈훈한 이야기들이다.

 

나는 내 딸에게 어떤 이야기들을 들려 주어야할까? 준비없이 이별을 한다면 남은 사람의 고통이 더 클 것이라는 추측과 함께 아이들에게 들려줄 엄마의 이야기를 만드는 것도 의미있는 준비라는 생각을 해본다.

바바라가 미처 들려주지 못했던 이야기들에 생명을 불어넣어 가족들과 늘 머물 수 있도록 한 것 처럼...또다른 바바라, 바로 그녀의 일기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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