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 계
장아이링 지음, 김은신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8년 5월
평점 :
품절



드디어, 소문으로만 들었던 영화의 원작을 만나게 되었다. 도대체 얼마나 훌륭하기에 영화화되고 그 영화는 또 흥행했을까...넘치는 궁금증을 풀기 위해 얼른 책을 펼쳐 들었다.

원래 이 책은 <망연기>라는 제목이 붙은 단편 소설집이다.

<색, 계>, <못잊어>, <해후의 기쁨>, <머나먼 여정>, <재회>,<연애는 전쟁처럼>의 6편이 담겨있다.

 

장 아이링이라는 작가의 작품은 처음이라 우선 그녀가 누구인지 알고싶었다. 소설가는 자신의 인생을 소설 속에 담아 표현하기 마련이다. 스물넷에 결혼하여 일년 반 만에 이혼하고 서른 여섯에 뉴욕에서 예순 다섯의 남자와 재혼하지만 결국 11년 만에 홀로되어 외롭게 작품활동을 하다 1995년 홀로 사망한 그녀. 그래서 였을까? 작품 속에서 그려진 사랑은 어딘지 슬프고 힘겹다.

 

<색,계>

읽는 동안 '이렇게 어려울수가, 나만 이해하지 못하는걸까?'라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여러 등장 인물의 이름도 낯설고 과거와 현재를 경계없이 넘나드는 이야기의 전개 방식도 좀처럼 알아들을 수 없었다. 그런데, 그런데 신기하게도 결말까지 읽은 후에 모든것이 정리 정돈되며 상황과 인물에 대한 파악이 쉽게 되었다.

 

일제 강점기가 거의 끝나가는 시기에 대학생인 왕지아즈는 '맥'부인으로 위장하여 매국노 '이'선생을 암살하기 위해 2년 간 공을 들인다. '이'선생의 마음을 사로잡은 후에 정한 장소로 끌어 들이고 조직원들이 그를 살해하게끔 하는 것이 그녀의 임무였다. 거사 당일 그녀는 마작판에서 다른 부인들이 그토록 자랑하던 '다이아반지'를 이 선생으로부터 선물 받기위해 보석상으로 데리고간다. 이어지는 긴장감! 그녀의 심장 소리가 나에게도 들리는 듯 하다. 값비싼 6캐럿의 다이아를 선뜻 선물하는 이 선생의 눈빛에서 지아즈는 "사랑"임을 확신한다. 어리석은 여인~ 여자는 사랑에 모든 것을 바치고야 만 것이다. 하지만 남자의 사랑은 그저 사랑일뿐 자신을 송두리째 던지지 않았다. 결국엔..사랑은 아닌것이다.

 

'독하지 않으면 남자가 아니었다. 자신이 그런 남자가 아니었다면 그녀 역시 자신을 사랑하지 않았을 것이다'라며 그녀를 버린 비겁한 자신을 합리화 시킨다.

그저 사랑하는 여인 한 명 얻었으니 죽어도 여한은 없다고 한 것도 사랑이라면 사랑일까?

지아즈는 다이아 반지가 아니었다면 마음을 돌리지 않았을 것이다. 여자에게 사랑과 돈은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내게 들이는 돈 만큼이 그의 사랑의 크기라고 생각할 지도...

여운이 깊이 남는 이야기이다. 사실에 기초한 이야기를 작가적 감성으로 다듬은 것이라는데, 영화화될 만큼 매력적이다. 나는 짧지만 강한 이 소설을 다시 읽었다. 처음 읽을 때와는 그 이해와 느낌이 전혀 다르다.

이 소설은 반드시 두 번 이상 읽어야 할 것 같다. 그래야 그 진가를 알 수 있다.

 

<못잊어>

가난하지만 예쁜 외모를 갖춘 지아인이 친구의 소개로 가정교사 자리를 얻게된다. 부부 사이가 좋지 못한 그 가정의 주인 샤종위와는 이미 극장에서 우연히 만나 서로 안면이 있는지라 둘은 쉽게 가까워진다. 이혼한 후 한 동안 연락없던 지아인의 아버지의 등장으로 통속소설의 요건을 한껏 충족시킨 이 소설은 어디서 많이 봤음직한 내용이다. 장 아이링 그녀의 말처럼 허락없이 출판을 당했던 소설이라 그런가 그 끝이 짐작이 가는 편하고 애잔한 줄거리이다.

이혼을 결코 할 수 없는 아내와 딸을 내세워 한 몫을 챙기려는 아버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력한 자신.

결국, 지아인은 사랑을 놓아버린다.

가장 긴 작품이지만 가장 빨리 읽힌 작품이기도하다. 뭐라 형용하기 힘든 애정을 통속 소설에서 느낀다고 한 작가의 말이 이해된다.

 

<해후의 기쁨>

작가가 30년에 걸쳐 다듬은 작품이라한다. 사촌지간인 두 여인인 부유한 우부인과 가난한 쉰부인의 만남들을 통해 빈부격차와 외모의 차이는 있으나 결국 비슷한 삶을 살고있는 모습을 딸이며 조카인 위엔메이의 눈을 통해 보여준다. 전작에 비해 완만한 이야기 전개와 많은 등장 인물들로 집중하기 다소 어려웠던 작품이었다.

 

<머나먼 여정>

공간과 시간의 구분없이 오가는 이야기 구조로 역시나 쉽지 않았던 소설이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외국인 회사를 다니던 뤄쩐이 중국을 떠나 일본으로 가는 배를 타고 가는 여정이다. 중국 본토를 벗어나기 위해 뤄후에서 다리를 도망치듯 건너가는 모습은 마음 졸이며 읽어야했다. 그녀의 주변 인물들에 대한 회상이 이어진다. 니우부부, 언니부부, 은행의 상사등을 통해 해방 이후 지식층이 겪는 어려움을 보여주고있다.

 

<재회>

소설가 아이링을 찾아온 학창시절 선배 바이오엔과의 오랜만의 만남. 바이오엔은 개인지도를 받던 뤄교수의 사랑을 받으며 혼란스러워 했던 이야기를 아이링에게 들려준다. 뤄교수 부부 사이가 바이오엔 자신 때문에 멀어져 가는 상황에 죄책감을 느끼지만 신경질적인 뤄교수가 이혼을 한다해도 자신과는 결혼할수 없다는 속마음을 털어놓는다. 아이링은 바이오엔의 부탁으로 그 이야기를 소설로 쓰고 출판도 된다.

그러나 그 후, 바이오엔은 더이상 아이링을 찾아오지 않았다. 결국, 뤄교수에게 해명할 길 없었으리라 짐작이 가는 상황에서 바이오엔이 내륙으로 간 소식을 접한다.

 

"여러 가지를 비교해보면 결혼은 곧 자신을 헛된 소모전에 내모는 것과 같다"

마치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며 장 아이링의 결혼관을 말하는 듯한 대목이었다.

 

<연애는 전쟁처럼>

여러 작품 중 가장 트렌디한 소설로 읽는 내내 유쾌하고 경쾌했다. 나머지 작품과는 분위기나 배경이 아주 다른 장 아이링의 다양한 면을 읽을 수 있는 시나리오다. 브로드 웨이에서 공연하다 영화로 만들어진 것을 다시 개편했다는 말처럼 영화적 재미가 곳곳에 숨어있다.

아름답고 매력적이나 자신의 사랑을 알아주지 못하는 스룽셩 때문에 오히려 주변 남자들에게 관심을 보이는 예웨이팡의 사랑찾기. 그녀에게 구애하는 허치화교수와 타오원빙의 어리숙하며 순진한 모습도 재미잇다.

 

은근하고 은유적인 표현으로 혼자서 상상하며 자신만의 그림을 그려보는 마음의 여유를 얻게 될 것이라는 옮긴이의 말처럼, 그런 시간을 갖게 해준 소설들이었다.

이해되지 않아 몇 번을 반복해서 읽어야 할 만큼 집중하기 어려운 작품도 있었지만 충분히 매력적인 소설들이다.

특히 영화와는 마지막 장면이 다르다는 <색,계>는 오래토록 기억되고 회자될 작품임에 틀림없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