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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 살의 레시피 - 한여름의 프로방스, 사랑이 있어도 나는 늘 외로운 여행자였다
김순애 지음, 강미경 옮김 / 황금가지 / 2008년 5월
평점 :
품절
잘 만들어진 한 편의 영화를 보듯 읽는 내내 책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김순애, 그녀의 삶은 그야말로 영화와도 같은 굴곡진 모습이었다.
세 살 무렵, 그녀는 정말 버려졌던 것일까?
당시의 사회적 빈곤도를 고려해보면 가능성 있는 추측일 것이다.
부모와 가족을 잃은 어린 아이의 가슴에 얼마나 깊은 상처가 생겼을까?
맞벌이 부모님 사정으로 1년 이상을 외할머니와 지냈던 기억은 나에게도 아물지 않는 작은 상처와도 같다. 언제나 누군가가 그립고 친구를 잃게 될까 걱정하고, 그래서 혼자 남겨질 것을 미리부터 두려워했다. 그런 습성은 비록 짧긴 했지만 엄마와 떨어져 살았던 시기의 충격에서 기인한다고 생각했다.
그녀의 온 생을 송두리째 부인하게 만들었던 두려움이 버려진 아픔에서 시작된 것이다.
가엾고 안쓰러워 괜시리 안주하지 못하는 그녀에게 탓을 돌린다. 주어진 현실 안에서 행복을 찾으라고, 가족을 잃고 장애를 얻은 사람도 있지 않느냐고...더 큰 상처만 주겠지.
자신의 근원을 찾는 것은 본능이다. 본능을 뛰어넘을 순 없는 태생 탓에 그녀는 괴로운 것이다. 하지만, 보다 더 이성적으로 생각했더라면 , 그래서 어려서 받은 상처 깨끗이 치유하고 세상 누구보다 행복하게 살았으면, 그래야 공평하지 않은가?
스무 살 어린 나이에 찾아 온 넘치는 사랑. 모든 것을 갖춘 남자. 사랑만을 원하는 남자.
세상을 안겨주고싶어 했던 그를 그녀는 왜 떠나야했을까? 그녀의 그 이유를 이해하기에 난 너무 나이들었고 세상에 물들어 버렸나보다. 하지만 한 편으로는 인연이 아니었나싶다.
그 만큼의 인연에서 더 이상 진전하지 못할 운명이라면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다.
20대의 젊은 부부에게 입양되어 부모의 사랑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어린 시절을 보낸 순애씨.
열일곱 살에 스웨덴으로 떠나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려던 그녀는 실연의 아픔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찾은 번역일로 알게 된 대기업 사장 올리비에를 만나 열렬한 사랑에 빠진다.
이국적인 식재료와 향신료, 입에 침이 고이도록 만드는 색다른 별미들, 그림처럼 아름다운 유럽의 풍경들이 머릿 속 가득 그림을 그려내며 동경에 가득 차게 만든다.
행복할 것 같다. 그녀의 생활은 부러움이 넘친다. 인생이 즐거울 것 같다.
그러나 내면 깊이 그녀는 늘 외롭다. 글로도 자신을 오롯이 내보이지는 않은 듯하다.
그녀의 자아는 세 살 무렵 인천의 시장통에 버려졌던 그 순간, 성장이 멈춰버린 것 같다. 엄마 잃고 불안에 떨고 있는 어린아이가 그녀의 글 구석구석에서 엄마를 찾으며 목 놓아 울고있다.
누구도 풀어줄 수 없는 문제다. 그녀 스스로 헤매고 실패하며 치유의 해법을 찾아야 할 문제. 누구나 그 나름의 몫에 삶의 무게가 있다. 가장 슬프고 가장 행복하고는 절대적인 것이다.
자신 안에서 답을 찾아야하지 않을까?
다행히 그녀는 누워있는 병석에서 이제 자리털고 일어설 준비를 한 것 같다.
이미 지난 과거를 되돌릴 수 없다면, 남을 생을 그 과거로 채워선 안된다. 억울하다.
악착같이 행복해져야한다. 그녀는 아름답다. 그리고 인생은 그리 어렵지 않다. 그리 길지도 않다.
새로운 레시피로 요리하게 될 그녀의 메인 메뉴, 인생! 기대해 본다.
책에 소개된 많은 요리들이 나를 유럽으로 부른다. 프랑스로 부른다.
따라해 보고 싶어도 엄두가 나질 않는다. 정향열매, 카시스크림, 프로슈트나 캐나다 베이컨, 샬롯, 유라산 뱅 존, 그뤼예르, 콩테치즈등 재료가 생소하다.
그런데, 향긋한 음식 냄새가 코 끝을 자극하는 듯한 이 느낌은 뭘까?
어느새 순애씨의 삶 속에 들어가 있는가보다.